Helsinki_2006
이틀 삼일 짧게 여행하면서 별로 찍어 온 사진도 많지 않은 어떤 도시들에 숫자를 붙이는 것이 조금은 망설여지지만 지난 옛 기억에 덧붙여질지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에 대한 환상으로 그러니깐 언젠가 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짧은 도시들에게도 결국 번호를 매기고 만다. 3주간의 러시아 여행을 끝내고 뻬쩨르부르그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헬싱키. 나로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육로로 국경을 넘는 꽤나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컴컴한 야간 버스 안에서 버스가 전복되는 악몽까지 꾸었다. 뻬쩨르에서 헬싱키로의 여정은 지갑 속의 루블과 카페이카를 탈탈 털어내고 빳빳한 유로를 채워 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리투아니아에도 유로가 도입된지 3년째 접어들어 마치 오래 전 부터 써왔던 화폐처럼 익숙하지만 한때 유로는 참으로 생소하고도 멀게만 느껴지던 비싼 돈의 이미지로 가득했다. 게다가 유럽이라는 울타리 속의 첫 도시가, 북유럽이라니. (후에 코펜하겐이나 베르겐을 하루 이틀 여행하면서 헬싱키의 물가는 참으로 관대했구나 깨달았지만) 헬싱키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지도를 펴고 걷기 시작했던 새벽. 새벽의 고요에 질세라 소리없이 내린 눈이 오랜 추위에 제멋대로 압축되어 도톰해진 눈을 한꺼풀 남짓 뒤덮고 있던 헬싱키를 우적우적 밟으며 결벽에 가까운 알바 알토의 건축물을 지나 가까스로 도착했던 헬싱키의 호스텔. 체크인 시간이 되려면 멀었어서 문이 잠겨 있었지만 운 좋게도 조금만 기다린 끝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근처에 올림픽 관련 시설물들이 많았던 규모가 꽤 컸던 호스텔. 내국인 단체들로 꽉꽉 채워지는 다른 유럽 강대국들의 호스텔처럼 부엌에 있다보면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학생들을 다독이고 냉장고는 주인을 잃은 듯한 음식으로 샤워실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깔깔대는 여학생들의 농담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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