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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Graduation (2016)

 

Beyond the hills 을 보고 난 후 운좋게 바로 찾아서 볼 수 있었던 Cristian mungiu 의 2016년도 영화.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그냥 영어로 쓴다. 뭉규? 멍쥬?.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이 편애하는 감독들이 확실히 있는것 같다. 이 영화도 발매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오히려 마치 유명해지기 전 데뷔작처럼 훨씬 젊고 용감하고 거칠다. 무거운 주제를 초반에 휙 던져놓고 영화가 엄격하게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게 하면서 막상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미지근한 자세와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대화를 배치하는 이 감독 특유의 형식은 여전하다. 사람이 죽어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전화를 쓰려고 돌돌말린 충전기를 느긋하게 펴는 의사와 강간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잎담배를 마는 경찰, 얼떨결에 살인을 한 수녀들을 태우고 경찰서를 향하는 자동차의 앞창을 뒤덮는 구정물처럼 리얼한 디테일들이 그렇다.

구멍난 상처를 기우고 또 기운 후에 더 이상 실로도 바늘로도 치유 불가능한 너덜너덜한 천조각이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떤 사회적 현안들.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안을 찾고 혁신에 돌입하는 낡은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일순간 또 잠잠해지며 좋은게 좋은거라며 훈훈하게 끝나는 일일연속극 같은 세상에 대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시선도 함께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국의 내부 문제로도 벅찬 작은 국가들이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흔히 직면하는 고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세상에 보여주려는 예술가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동네의 영화를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 리투아니아의 모습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이기도하다.

독립한지 30년이 지났고 유럽적 가치를 최우선시하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소련적 체취가 곳곳에 있다. 머리에 꽃무늬 수건을 두른 할머니와 마트 비닐 봉지를 손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할아버지, 세금 용지를 네등분으로 잘라 뒷면을 이면지로 활용하는 등의 절약이 몸에 밴 노년층과 대화의 절반을 리투아니아어화한 영어 단어로 채워쓰는 10대 사이에 분명히 채울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특정 과거가 정말 그렇게나 하찮고 빨리 지워버려야하는 치부이기만 한것인지 새로운 흐름에 대한 맹신이 오히려 모든것을 그르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된다.

이른 아침 갑자기 누군가가 내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진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단순히 아침부터 재수없다 라며 화가 날 수도 있을거고 평소에 뭔가 양심에 찔린 행동을 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해코지일지 몰라 불안에 휩싸일거다. 이러나 저러나 그것은 일종의 각성작용을 한다. 균열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하고 최소한 그랬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소리다. 이 영화도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는 누가 이 주인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주인공 자신의 양심에 난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것인지도 모른다.

공공 병원 의사인 주인공에겐 졸업 시험을 앞둔 외동딸이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부인과는 각방을 쓰고 그 관계는 거의 단절된 상태이며 해체직전의 이 가정에서 부부의 유일한 대화주제는 딸의 미래이다. 그는 딸을 등교시키고는 애인의 집으로 가서 밀회를 즐긴다. 영국의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딸에게 졸업 시험 성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험 성적으로 취종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을 코앞에두고 딸은 대낮에 강간을 당한다. 미수로 그치긴 했지만 그것은 아빠의 계획에 큰 걸림돌이 된다.

딸에게 몹쓸짓을 한 범인을 찾기위해 경찰서를 드나들고 딸이 순조롭게 시험를 치룰수 있도록 교사와 시험 관계자들도 만나봐야하는 눈코뜰새없는 남자에게 내연녀는 보다 정확한 관계를 요구하고 부인은 집에서 나가달라고 통보하며 노모는 지병으로 쓰러지는등 정신이 없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깨진 창문 조각이 익명의 경고 메세지처럼 아른거린다.

의사인 남자에게 수술을 앞두고 돈봉투를 건네는 환자, 다 큰 아들에게 잼이며 채소절임등이 담겼을 유리병을 가방에 넣어주는 연금생활자인 노모, 중고 옷가게에서 샀음직한 후줄근한 니트를 입고 낡은 책을 정리하는 도서관 직원인 아내, 이곳은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희망이라곤 안보이는 나라이지만 그들 전부는 그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이들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뇌물이 유효하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지녔지만 철망을 쳐야 그나마 발뻗고 잘수있는 우범지역의 5층짜리 대단위 연립에서 살 수 있는 생활 수준. 적은 월급을 쥐어짜서 시킨 자식의 고급 과외에 희망을 걸어야하는 삶. 이 모든 모습이 낯설지 않다.

80, 90년대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혈기왕성한 20대를 보냈을 남자. 굳건했던 체제의 붕괴를 목도하며 혼란을 경험하고 올바르고 살기 좋은 세상에 관한 희망으로 30대를 지나왔을 거다. 하지만 자유를 얻자마자 급변할거라 믿었던 세상은 생각만큼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완숙인줄알고 깨뜨렸는데 줄줄 흘러나오는 덜익은 노른자처럼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도 구성원의 멘탈도 설익었다. 더 나은 삶은 여전히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어보인다. 하지만 본인의 삶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무너진다. 내 자식만은 이 나라가 아닌 다른곳에서 꿈을 펼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자식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그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선 이미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자식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부모의 말에 결코 감동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그곳에서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보장된 것은 절망뿐이다. 이른 아침 창을 뚫고 날라오는 돌멩이는 변화를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을 향한 경고이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 해야할 사람은 결국 여전히 그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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