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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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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28_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Berlin_2017 춤추자는 사람, 갈 길 가는 사람
빌니우스의 원형 만두피 빌니우스의 마트에 원형의 만두피가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Mindaugo 거리의 Maxima. 다양한 국적의 식재료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빌니우스에서 그리고 리투아니아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영업을 하는 마트이다. 마트 이층에는 24시간 영업하는 약국도 있다. 이 상점은 리투아니아 생활 초창기의 나에게 살아있는 리투아니아어 교과서였다는. 리투아니아산 냉동 만두도 한국식으로 끓일 수 있지만 만두소도 그렇고 밀가루 반죽도 그렇고 피가 얇고 소가 실한 한국의 만두와는 좀 차이가 있다. 한국식 만두소에 필요한 재료들을 거의 살 수 있지만 만두피 자체가 없어서 일일이 반죽해서 밀대로 밀어 만들던 시절이 있었는데 원형 만두피가 나와서 기분이 좋다. 사실 이전까지 내가 간혹 사용하던 만두피는 노란 반죽의 ..
Vilnius 65_어떤 석양 왜 더 사랑해주지 않아 라고 말하는 순간 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더 사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한없이 부족해진다. 어느 도시에 관한 애착과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즈음에 이렇게 아슬아슬 황급하게 사라져가는 석양이 어느 건물의 어느 모서리쯤에 걸쳐져 있을 것을 알고 그 고인 따스함을 마주하러 일부러 그 골목길로 들어설 수 있을만큼 다 알고 싶은 것, 빗물이 흥건하게 채워지는 거리를 걸어나갈때 속도를 늦추지 않는 무심한 자동차가 내 곁으로 다가오기 전에 미리 조금 비껴 설 수 있을 만큼 발바닥 아래 콘크리트의 굴곡을 기억하는 것, 여기서 멈춰 뒤돌아섰을때 손가락 한마디 정도만 고개를 내민 성당의 종탑이 내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가슴 속에 차오르는 무언가, 항..
로베르토의 둘체데레체 Chinese Take-out_Sebastian Borensztein_2011 한국에서는 이라고 번역된 이 영화.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는 중국인 쥔이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찾으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다. 그가 가진 유일한 정보는 팔목에 새긴 동네 이름과 백부의 이름.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아르헨티나인 로베르트는 오갈데 없는 그를 돕게 된다. 하지만 쥔은 백부를 찾을 수 없고 그 동네까지만 데려다주면 될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그의 작은 선행은 결국 기약없는 동거로 이어진다. 로베르토라는 지푸라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중국인 쥔은 눈치껏 행동한다. 영화는 국적이 다른 낯선 이방인과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의 시공간에서 맞물린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헬싱키의 마파두부 Helsinki_2006 그 시기 여행에서는 스마트 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디지털 카메라가 있긴 했어도 그다지 많은 사진을 남겨오지 않았는데 나름 시시콜콜한 몇 장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자니 사진과 사진 사이의 기록되지 않은 순간들까지 속속들이 떠오르며 긴 회상에 잠기게 된다. 새벽에 호스텔에 들어서서 도미토리의 침대를 할당 받자마자 길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허허벌판 16인실 도미토리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속을 파헤치고 부스럭거리며 들어가는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반응하는 다른이가 없다는 것은 일인용 침실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는 안락함과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 있다. 문을 열자마자 탁자에 내동댕이쳐지는 열쇠가 뿜어내는 짤랑거림에 누군가를 깨울까 싶어 움츠러들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 ..
리투아니아의 크리스마스 음식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을 가장 큰 전통으로 여기는 리투아니아. 카톨릭이 주된 종교인 나라라고 해도 모든 나라들이 이브 저녁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리투아니아인들이 이브 저녁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이브 저녁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전통대로라면 12가지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는게 맞는데 그래서 보통은 헤링과 같은 생선이 주된 메뉴이다. 오랜 시간 피나는 노력을 했어도 헤링의 맛있음을 아직 깨닫지 못 한 불쌍한 나를 위해 달걀물을 입힌 생선전이 한 접시 올라온다. 다른 음식들은 보통 식탁 중간에 놓여져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는 자정까지 이야기를 하며 각자의 접시에 조금씩 덜어 먹는 식이고 모두가 한 접시씩 받는 메인 메뉴는 고기소 대신 버섯을 넣은 만두이다. 여름에 채집해서 ..
리투아니아어 48_역사 Istorija 2018년 2월 16이면 리투아니아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 독립 공화국임을 선포한지 100년째 되는 날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짧게나마 독일의 지배를 받았고 긴 시간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된 역사가 있지만 현재의 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서의 역사는 1918년 2월 16일부터 시작된다. 일년 후 리투아니아의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고 일주일 남짓 후에 상해에서 임시 정부가 성립된 역사를 보고 있으면 그 시기의 약소국들의 운명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느낀다.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에 와서 살게 된 첫 해 처음 맞이했던 공휴일이었고 한달 후 3월 11일의 공휴일도 독립 기념일이라 처음 이삼년간은 어떤 날이 어떤 날인지 줄곧 헷갈렸다. 1991년 3월 11일은 당연히 소비에트 해체와 관련된 독립 기념일이다..
리투아니아어 47_계속하기 Tęsti 리투아니아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하거나 물건 구매를 할때처럼 다음 절차로 넘어 가야 하는 상황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단어. Tęsti. 계속하다. 연장하다의 동사 원형이다. 오늘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는데 직원이 자리를 비운 옆 계산대의 모니터 속에 남아 있던 풍경이다. 괜히 눌러주고 싶다. 마우스 커서만이라도 좀 옮겨주고 싶다. 버스 앞자리에 앉은 모르는 이의 코트에 붙은 머리카락을 무의식중에 떼어주려다 멈칫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늦은 시간 마트에 가면 일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채 장을 보며 아직 근무중인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직원들을 마주칠 수 있다. 구시가지에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마트는 이곳이 유일한데 아마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거나 물건을 채워넣는 직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