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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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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29_한 조각의 건물 Berlin_2017 뭐라고 쓰지 하고 한참을 쳐다보다 생각난 것은 결국 케익 한 조각. 밤이 되면 저 렌조 피아노의 케익은 어떤 광채를 뿜어낼까. 베를린에서 확실하게 느꼈지만 현대 건축물에 대해서라면 회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건물보다 확실하게 각이 잡혀서 딱 떨어지는 건물들이 좀 더 와닿는다.
Berlin 28_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Berlin_2017 춤추자는 사람, 갈 길 가는 사람
Vilnius 65_어떤 석양 왜 더 사랑해주지 않아 라고 말하는 순간 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더 사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한없이 부족해진다. 어느 도시에 관한 애착과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즈음에 이렇게 아슬아슬 황급하게 사라져가는 석양이 어느 건물의 어느 모서리쯤에 걸쳐져 있을 것을 알고 그 고인 따스함을 마주하러 일부러 그 골목길로 들어설 수 있을만큼 다 알고 싶은 것, 빗물이 흥건하게 채워지는 거리를 걸어나갈때 속도를 늦추지 않는 무심한 자동차가 내 곁으로 다가오기 전에 미리 조금 비껴 설 수 있을 만큼 발바닥 아래 콘크리트의 굴곡을 기억하는 것, 여기서 멈춰 뒤돌아섰을때 손가락 한마디 정도만 고개를 내민 성당의 종탑이 내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가슴 속에 차오르는 무언가, 항..
로베르토의 둘체데레체 Chinese Take-out_Sebastian Borensztein_2011 한국에서는 이라고 번역된 이 영화.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는 중국인 쥔이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찾으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다. 그가 가진 유일한 정보는 팔목에 새긴 동네 이름과 백부의 이름.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아르헨티나인 로베르트는 오갈데 없는 그를 돕게 된다. 하지만 쥔은 백부를 찾을 수 없고 그 동네까지만 데려다주면 될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그의 작은 선행은 결국 기약없는 동거로 이어진다. 로베르토라는 지푸라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중국인 쥔은 눈치껏 행동한다. 영화는 국적이 다른 낯선 이방인과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의 시공간에서 맞물린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헬싱키의 마파두부 Helsinki_2006 그 시기 여행에서는 스마트 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디지털 카메라가 있긴 했어도 그다지 많은 사진을 남겨오지 않았는데 나름 시시콜콜한 몇 장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자니 사진과 사진 사이의 기록되지 않은 순간들까지 속속들이 떠오르며 긴 회상에 잠기게 된다. 새벽에 호스텔에 들어서서 도미토리의 침대를 할당 받자마자 길고 달콤한 잠에 빠져 들었다. 허허벌판 16인실 도미토리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속을 파헤치고 부스럭거리며 들어가는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반응하는 다른이가 없다는 것은 일인용 침실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는 안락함과는 다른 종류의 쾌감이 있다. 문을 열자마자 탁자에 내동댕이쳐지는 열쇠가 뿜어내는 짤랑거림에 누군가를 깨울까 싶어 움츠러들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 ..
리투아니아어 48_역사 Istorija 2018년 2월 16이면 리투아니아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 독립 공화국임을 선포한지 100년째 되는 날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짧게나마 독일의 지배를 받았고 긴 시간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된 역사가 있지만 현재의 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서의 역사는 1918년 2월 16일부터 시작된다. 일년 후 리투아니아의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고 일주일 남짓 후에 상해에서 임시 정부가 성립된 역사를 보고 있으면 그 시기의 약소국들의 운명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느낀다.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에 와서 살게 된 첫 해 처음 맞이했던 공휴일이었고 한달 후 3월 11일의 공휴일도 독립 기념일이라 처음 이삼년간은 어떤 날이 어떤 날인지 줄곧 헷갈렸다. 1991년 3월 11일은 당연히 소비에트 해체와 관련된 독립 기념일이다..
리투아니아어 47_계속하기 Tęsti 리투아니아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하거나 물건 구매를 할때처럼 다음 절차로 넘어 가야 하는 상황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단어. Tęsti. 계속하다. 연장하다의 동사 원형이다. 오늘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는데 직원이 자리를 비운 옆 계산대의 모니터 속에 남아 있던 풍경이다. 괜히 눌러주고 싶다. 마우스 커서만이라도 좀 옮겨주고 싶다. 버스 앞자리에 앉은 모르는 이의 코트에 붙은 머리카락을 무의식중에 떼어주려다 멈칫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늦은 시간 마트에 가면 일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채 장을 보며 아직 근무중인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직원들을 마주칠 수 있다. 구시가지에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마트는 이곳이 유일한데 아마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거나 물건을 채워넣는 직원들이..
Dead man_Neil Young 벌써 20년이 흘렀다. 종로 연강홀에서 열린 난장 영화제에서 보았던 두 편의 영화. 짐 자무쉬의 데드맨과 페도로 알모도바르의 키카. 나로썬 동숭 아트홀의 개관작이었던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한을 나름 풀어줬던 날. 하지만 그때는 흑백 영상과 조니 뎁의 표정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음악에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했다는 닐 영의 기타 연주도 나중에 오아시스가 리메이크한 닐 영의 노래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좀 주의깊게 듣게 되었는데 선물 받을 USB 턴테이블을 기다리며 처음 장만했던 LP는 결국 데드맨의 사운드 트랙. 바깥이 유난히 조용한 날, 기차 소리가 듣고 싶은 날, 인디언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 꺼내 듣는다. 추억속의 영화의 장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