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엘 헬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2.09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2. 2020.01.14 Can you ever forgive me (2018)
Film2020. 2. 9. 07:26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의 12월과 1월은 그해에 개봉된 따끈따끈한 수작들을 의식적으로 챙겨볼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시기이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 영화가 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후보작들을 구경하다보니 딱 한군데 남우 조연상에 후보를 올린 이 영화가 눈에 띈다. 사실 그냥 '미국인 톰 행크스'가 나오는 휴먼 드라마이겠거니 두시간 멍때리고 보는데 문제 없겠지 싶어서 보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조연상은 브래드 피트가 10번을 타고도 11번을 탈 것이다. 오스카를 이미 두 번이나 거머쥔 톰 행크스이지만 이번엔 그래도 좀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톰 행크스가 하는 연기가 어떤 느낌인지 보통 우리가 알지만 톰 행크스는 사실 어디로 가버렸고 미국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나는 전혀 몰랐던 프레드 로저스라는 인물이 보였다. 톰 행크스의 연기가 그다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프레드 로저스라는 인물이 쉽지 않은 연기를 필요로하는 독특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그냥 톰 행크스의 연기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라면 포레스트 검프처럼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무슨 전기 영화 같지만 사실 결코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흡입력이다. 아픈 엄마와 자신과 여동생을 놔두고 떠난 아버지로 인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잡지 기자 로이드.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증오로 평생을 살아 온 그는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고 나서도 쉽게 주변에 따뜻한 눈길 하나 줄 수 없이 메말라있다. 직장에서도 그는 날이 선 인터뷰 기사를 쓰는 문제 직원이다. 그런 그에게 편집장이 던져 준 미션 하나가 유명한 방송인 프레드 로저스를 취재하는 것이다. 만인이 존경하는 유명인,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우라를 지닌 최불암 같은 인상의 그에 대해 그는 이전처럼 어떤 날카롭고 비판적인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로저스의 방송으로 시작해서 그의 방송 촬영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그 방송인 로저스를 취재하는 와중에 스스로를 치유하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잡지 기자 로이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프레드 로저스 라는 인물이 그 시기의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선하고 값진 영향을 주었는지를 잡지 기자 로이드를 대표로 삼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로저스는 유능하고 인기있는 방송인이다. 그는 유명한 아동 프로그램을 30년 가까이 진행했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화면에 잡히는 그의 눈빛은 화면 밖의 모든 이들이 마치 나만을 보고 내 이야기도 들어줄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진실하다. 과연 저런 사람도 화를 내거나 분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낮이 없고 조곤조곤한 말투, 조금의 나쁜 먼지도 이상한 냄새도 풍길 것 같지 않은 정갈한 움직임, 그는 나를 질투하거나 나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타자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로이드는 늘상 사람을 만나고 그를 경청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하는 잡지 기자이지만 동생의 결혼식에 찾아 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할말이 있다는 아버지와 결국 몸싸움을 벌이고 만다. 그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를 끝끝내 거부한다. 그렇다고 로저스가 완벽한 인격을 지닌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선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에서 그의 인생도 자유롭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조명이 꺼진 촬영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몇 번 쾅쾅 내려치는 방식으로 그는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신의 어떤 부분을 게워낸다. 그것은 어쩌면 화가 나서라기 보다는 화를 다루려는 노력 자체에 지쳤을때 그가 사용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로이드가 마냥 부족하기만한 성격 파탄자인 것도 아니다.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주변의 가족 나아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신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그들에게 건강한 영향을 주고 스스로도 성장하기 위해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한 명은 현재의 삶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쓰여야 할 에너지를 줄곧 지나가버린 것들을 분노하는데에 쓴다는 것이다.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누구나 정말로 화가 날때가 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때로는 상대가 능동적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올때조차도 언젠가 나를 화나게 했던 그 과거의 순간을 일부러 상기시키며 감정을 버퍼링 상태로 놓아두며 마음을 꼭꼭 닫아두면서 어떤 승리감에 젖는다. 우리의 말 한 마디, 내가 고르는 단어 하나, 표정 하나가 매사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아직 어린 아이라면 역시나 때로는 이해받아야 할 존재일뿐인 어른인 우리도 항상 상냥하고 따뜻한 말과 표정으로만 그들을 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린 우리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은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으면 그 미숙함은 더해진다. 영화 속에서 로이드와 로저스가 식당에서 얼마간의 침묵을 유지하며 온 주변이 마치 진공상태가 되는 듯한 순간이 있다. 화가 나는 순간에 그 촛점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돌려 완벽한 침묵의 경지에 이르러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내 인생 곳곳에 자리잡은 짧지만 부정적인 어떤 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의 영향력 안에 가두고 지배하고말겠다는 자유 의지. 나도 매순간 기억하고 싶다. 화를 내야겠다는 욕망이행복에의 의지를 압도하려는 순간의 스위치는 결국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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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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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1. 14. 07:00

 

 

 

많은 좋은 영화들을 보지만 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친구가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이나 천국보다 낯선의 에바, 칼리토 같은 내가 두고두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영화 캐릭터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너무나 행복했다. 누군가가 생각나면 그의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어떤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을 뺏어간 인물의 습관, 그의 유머, 말투, 그의 생활공간들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허구의 인물에 어떤 추억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나에겐 그것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매일의 일상으로 채워진 우리의 삶 자체가 내일이라는 명백한 허구를 향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영화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영화를 두 번째 보는데 첫 번째 볼 때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친 문구가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한 줄. 순간 너무나 슬펐다. 아 저렇게 반짝이는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었다니 출처를 알 수 없는 질투심이 일었다. 그녀가 허구의 인물이었다면, 이것이 모두 만들어낸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 자체는 더욱 빛났을 거라 생각하니 역설적으로 이것이 꾸며낸 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이상야릇한 배반감을 느낀 것이다.

 

 

영화 속의 리 이즈라엘은 슬럼프에 빠져든 전기 작가이다. 장난 전화 걸기를 즐기고 설거지를 할때조차 술잔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아파트 임대료를 낼 돈도 병든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갈 돈도 없는 그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어떤 작가의 편지를 서점의 수집상에게 팔고 돈이 된 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유명 인물들이 교환했을 법한 편지들을 제조하는 나름의 창작을 시작한다. 고양이 약값을 마련하려고 시작한 일은 오히려 작가로서의 그의 본능에 불을 지피며 걷잡을 수 없이 규모가 커진다. 그녀는 여러 타입의 타자기를 집에 구비해놓고 작가들의 사인을 위조하고 심지어 오래된 편지처럼 만들려고 편지를 오븐에 굽기도 하며 스스로의 재능에 빠져든다. 이보다 더 매력적이고 스마트한 지능범이 없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결국 그녀의 행위는 발각되며 처벌을 받는다. 그녀는 결국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그러니 있지도 않는 작가들의 편지를 창작해서 벌 받은 사람의 자전적 소설을 다시 각색해서 만들어진 이 영화의 탄생 배경 자체가 신선하다.  

 

 

배경은 90년대의 뉴욕이다. 2년전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신기하게도 나 홀로 집에 2탄에서 케빈이 성탄절을 보내던 그 90년대의 뉴욕의 느낌이 너무 진하게 묻어났다. 아마도 그렇게 내가 영화를 통해 접한 뉴욕의 첫인상이 그 도시에 대한 추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이라는 도시 특유의 심상을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내려고 애를 쓰던 우디 앨런의 영화를 필두로 한 많은 영화들에서 때로는 배타적인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이 영화는 세련되지도 잘 나가지도 않는 어떤 개인의 추억과 애상이 아기자기하게 묘사돼서 귀엽다는 느낌을 가지고 봤다. 마치 특선 대작들 사이에 끼워서 방영되는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오후에 해주는 그런 영화의 느낌 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 것이었으면 하는 인물의 일상들 습관들 같은 것이 있다. 지금도 고스란히 저런 장소들이 남아있을까 싶은 뉴욕의 오래된 서점들, 늦은 밤 승객이 드문 허름한 지하철 안에서 미국인들이 손에 쥐고 읽곤 하던 두껍지만 가벼운 그런 책들을 팔 법한. 리 이즈라엘이 낮술을 하기 위해 습관처럼 드나들던 동네 술집, 레즈비언인 그녀의 나이 든 게이 친구, 그들이 걷는 거리와 그들의 자유분방한 대화, 여러 영화들을 통해 등장하던 비슷한 구조의 뉴욕의 아파트 등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도 발랄하게 그려진다. 90년대의 뉴욕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젖어드는 아련함은 아마도 내가 접속이나 초록 물고기 같은 영화를 보며 빠져드는 그것과 비슷할 것 같다.  

 

 

리 이즈라엘의 이 아파트 구조는 익숙하다. 저 정도의 삶은 우리 눈으로 보면 경제적으로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보통 좀 뭐가 잘 안 풀리는 주인공들이 사는 집으로 나오는 거 보면 미국의 생활 수준이 확실히 나은 건가.라고 생각하다가도 엄청 큰 집에 살고 두세넷의 아이들을 키우며 3리터는 족히 될 것 같은 오렌지 주스를 아침에 꺼내어 먹는 주인공들도 보통 모기지론으로 집 산 처지일 테고 저런 아파트도 우리의 주인공들을 임대료에 허덕이게 만들곤 했겠지. 그 와중에 저 케맥스 드립 포트 옆의 커피 잔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극 중 그녀의 생활 습관으로 보건대 저 필터는 아마 한 달 넘게 치우지 않아 커피 찌꺼기 위에 곰팡이가 생겼을 것이다. 그런 그녀도 절대 잊지 않는 것이 있으니 고양이 밥 주기. 고양이 약 사려고 시작한 범죄 행위는 사실 고양이의 죽음과 함께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그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리 이즈라엘의 범죄를 가능하게 했던것은 유명 인물들이 교환한 서신이나 물건들을 되팔고 수집하는, 책 속에 굳어진 케첩 자국조차 상업화하고 소비할 수 있을 것 같은 미국 특유의 문화이다. 게다가 작가들의 삶과 그들 특유의 필치를 잡아내는 그녀의 능력까지 더해져서 편지 위조 행위는 꽤나 그럴듯한 창작 행위가 되어간다. 그것은 결국 범죄 행위였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삶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그의 용기이자 재능이라 느껴졌다. 그녀는 그 능력을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할애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극 중 출판사 사장의 말처럼 상품 가치도 없는 다른 인물의 전기문을 쓰는데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그녀는 게으르고 타성에 젖은 작가일 뿐이다. 그녀에게서 몇 통의 위조된 편지를 사들인 서점의 여주인은 오히려 작가로서의 리 이즈라엘을 동경하며 그녀가 쓴 짧은 소설의 원고를 읽어 봐 달라고 건넨다. 리 이즈라엘은 그 원고를 쉽사리 읽지 못한다. 자기의 것을 시작할 수 없는 용기.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며 그녀는 점점 더 위조 행위에 매달린다. 

 

 

영화는 한편으로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 휘황찬란하고 격동적인 그 도시의 한편을 배회하는 외로운 인물들의 삶을 무심한 듯 진실하게 묘사한다. 갈 곳이 없는 나이 든 게이를 연기한 리처드 E. 그랜트의 연기는 내가 본 동성 연애자 연기 중 최고였다.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운 베를린을 배회하던 파니 핑크와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던 동성 연애자인 아프리카 주술사의 모습도 떠올랐다. 미움받고 손가락질당해도 생긴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어떤 인물들, 그들이 만나서 오직 자기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선물 받았을 때의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편집장 친구의 삶에서 넓은 아파트를 상속받은 행운만을 부각시키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매너리즘에 빠진 리 이즈라엘이 남의 삶을 위조하며 쾌감에 젖는 것을 보며 아슬아슬한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의 행위에 빠져든다. 타자기를 앞에 두고 미친 듯이 위조에 몰두하는 그녀를 보고 범죄자를 향한 비난 대신 우리가 느끼는 이 카타르시스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것에 치이고 저것에 치여서 제대로 나 답게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삶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만이라도 나 자신의 삶에 완전하게 취하게 하는 그 섬광 같은 자기 긍정과 확신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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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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