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9. 4. 19. 19:02

지상의 밤... 영어 제목보다 한국어 제목이 조금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지상... 어떻게 들어도 참 멜랑꼴리 하고 센티멘탈하다. 2년이 지나면 이 영화도 30년 전 영화가 되니 지금 이런 영화들을 고전처럼 찾아보고 있을지 모를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겐 어쩌면 90년대 후반의 내가 70년대의 스콜세지 영화를 보았을 때와 같은 그런 기분일까. 그런데 80년도에 영원한 휴가를 만든 짐 자무쉬를 스콜세지와 거의 동시대의 감독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텐데 이 두 감독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임권택과 홍상수 사이에서 감지되는 세대차이가 느껴진다. 짐 자무쉬가 도시 뒷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파편처럼 부유하는 인물들을 최대한 날 것으로 표현해낸다면 스콜세지는 그런 인물들에 묵직한 표정과 목소리를 부여하며 아주 드라마틱한 원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를 떠올린다.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가 만들어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택시 운전수, 트래비스. 세상 모든 영화 속의 택시 운전기사들을 볼 때마다 반사적으로 트래비스를 떠올리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거다.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들도 트래비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고. 그런데 실제 택시를 타면 오히려 지상의 밤 속의 택시 운전기사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생활 속에서 내가 일미터 반경 내에서 마주치는 인물들은 오히려 좀 더 평범하고 무덤덤한 표정일 거다. 세상을 이루는 나와 같은 한 조각, 작은 입자 같은 인물들 말이다.지상의 밤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파리, 로마 그리고 헬싱키 에피소드로 나뉘어져있고 그들의 밤을 운전하는 5명의 택시기사들의 이야기이다. 매번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마지막 도시는 헬싱키가 아닌 도쿄였다고 착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쿄 에피소드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헬싱키를 겨우 생각해내곤 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아마 헬싱키가 생뚱맞은 배경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영화에서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호텔 로비에 매달려있는 시계들을 떠올리면 상식적으로 그런 시계들이 보통 런던 파리 뉴욕 홍콩 도쿄 뭐 이런 곳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도 였을 거다. 새해에 헬싱키에서 보낸 짧은 하루 탓에도 연초부터 이 영화 생각을 유독 많이 했다. 번화한 헬싱키의 중심가를 향하는 공항철도가 거리 낙서로 가득한 평범하고도 무뚝뚝한 주거 단지들을 휙휙 스쳐 지나쳤다. 직장에서 해고된 동료를 대신해 신세 한탄을 하던 남자들이 택시에서 내려 비틀대며 걸어가던 것과 꼭 같은 그 눈 덮인 거리를 하루 상간에 왔다 갔다 지나치며 결국 헬싱키 그 특유의 암울한 어둠이 기억났고 택시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일상적인 대사로만 채워진 그 짧은 에피소드들에서 자무쉬는 참 풍부한 느낌을 담아냈구나 다시 감탄했다. 

로스앤젤레스 에피소드에서는 가위손의 긴 머리 소녀에서 리얼리티 바이츠의 숏커트 여인으로 성장하는 중의 보물 같은 위노나 라이더를 만날 수 있다. 운전 내내 담배를 꼬나물고 되바라진 톤의 대사를 토해내는 그녀는 뒷좌석의 지나 롤랜드의 카리스마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혹시 영화를 해보지 않을래요. 얼굴도 예쁘고 택시 운전수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라며 마치 '내가 너의 구세주이다, 너는 분명 지금의 인생이 싫다'라는 확신에 찬 영화배우님의 말에 위노나 라이더는 '전 그냥 택시 운전할래요. 모든 게 내가 계획한 대로 되고 있어요'라고 쿨하게 말하며 트렁크를 닫으며 이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이들이 각자 집으로 호텔방으로 돌아가 다리를 뻗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의 뻔한 엔딩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흥겨운 리듬으로 시작하는 짧은 영화를 저런 단순한 대화로 임팩트 있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자무쉬의 힘일 거다. 각자 잘하는 것이 분명 있다. 단편을 찍는 스콜세지는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좀 긴 서사를 가진 자무쉬의 장편 영화들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뉴욕 편에는 드레스덴에서 온 독일 이민자가 택시기사이다. 말도 운전도 버벅된다. 뉴욕의 밤거리를 제대로 알리 없다. 결국 그보다 뉴욕 길을 훨씬 잘 아는 급한 승객이 운전대를 잡는다. 택시 여행의 절반이 뒷좌석의 여성과의 욕설로 이루어진 이 거친 택시는 낮처럼 밝은 뉴욕의 밤을 종회무진 질주한다. 그리고 택시에 가득 들어찬 감성은 오히려 옆좌석에 앉은 독일 이민자가 느끼는 평화로움이다. 무엇 때문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오롯이 마주하는 역설적 고요함 같은 것, 길 모르는 택시 운전사를 탓할 만큼 한가하지 않은 성질 급한 승객이 가끔은 조급했을 이민자에게 선사한 선물 같은 밤이다. 뉴욕이라는 배경 때문에 특히 트래비스를 자주 떠올렸다. 

이 흑인 배우는 짐 자무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결국 이름은 항상 모르겠다. 파리 에피소드에서는 어쨌든 앞을 못보는 베아트리체 달의 연기를 보는 재미. 앞을 못 보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택시기사와 당당하게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여인, 어두운 센 강변에 내려 아무런 문제 없이 제 갈길을 걸어가는 여인과 곧 자동차를 들이받는 택시 운전기사 뭐 그런 에피소드이다. 그는 아마 그녀가 안전하게 잘 걸어가는지 살펴보다 사고를 냈을 거다. 

헬싱키에서는 술에 잔뜩 취한 남자 승객 3명이 탄다. 새차를 뽑자마자 직장에서 해고당해 절망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셔준 친구들이 친구의 하소연을 늘어놓자 운전기사가 그보다 더 슬픈 자기 얘기를 들려주며 모두를 울음바다에 빠뜨리는 뭔가 교과서적인 흐름이다. 사실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지속적으로 묘사하는 어둡고 침침한 핀란드의 느낌도 그렇지만 난 이렇듯 조금은 절망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의 영화 속 북유럽이 오히려 실제의 그곳과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미디어에서 보여주며 모범사례로 삼으려는 밝고 긍정적인 전형적인 북유럽의 모습은 어쩌면 허상이라는 반사적인 반발감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기후와 원초적 자연이 만들어내는 어둡고 비관적 감성들을 보완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완벽한 사회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들이 바라보는 자신도 외부세계의 그것만큼 긍정적일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나왔으니 예상할 수 있겠지만 로마편은 가장 정신없는 동시에 생기 넘친다. 이 도시에 대한 사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도시 그 자체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노력한 에피소드이다. 그는 다섯 중 가장 능숙한 운전사이자 가장 밤의 도시를 즐긴다. 그는 몇 달간 말 한마디 못해 본 사람처럼 떠든다. 어린 시절 첫 자위 경험부터 시작해서 처형과 나눈 금기된 원나잇에 대한 이야기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깜깜한 로마 시내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새벽의 도시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뒷좌석의 신부에게 다가와 살가운 인사를 건네는 성전환자들, 택시기사의 듣기 민망한 고해성사까지 신부는 버겁기만 하다. 그는 지병이 있었는지 손에 겨우 덜어낸 알약이 흔들리는 택시 속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베니니의 폭풍 수다 속에서 급사한다. 급사한 신부를 거리 벤치에 앉혀놓고 그는 성급히 택시에 올라탄다. 로베르토 베니니급의 수다를 털어낼 택시기사를 만날 가능성은 로버트 드 니로의 헤어스타일과 표정을 가진 택시기사를 만날 가능성만큼 희박할 거다. 근데 있을법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내용의 수위만 다를 뿐이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신기하게도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들이 세상엔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특히나 택시처럼 아주 밀폐된 공간에서라면 조금 민망하고 불안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낀 상대를 오히려 연민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경청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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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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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stage2018. 1. 8. 08:00


벌써 20년이 흘렀다. 종로 연강홀에서 열린 난장 영화제에서 보았던 두 편의 영화. 짐 자무쉬의 데드맨과 페도로 알모도바르의 키카. 나로썬 동숭 아트홀의 개관작이었던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한을 나름 풀어줬던 날. 하지만 그때는 흑백 영상과 조니 뎁의 표정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음악에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했다는 닐 영의 기타 연주도 나중에 오아시스가 리메이크한 닐 영의 노래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좀 주의깊게 듣게 되었는데 선물 받을 USB 턴테이블을 기다리며 처음 장만했던 LP는 결국 데드맨의 사운드 트랙. 바깥이 유난히 조용한 날, 기차 소리가 듣고 싶은 날, 인디언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 꺼내 듣는다. 



추억속의 영화의 장면들이 있어서 유튜브까지 안가고 내가 보려고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어서 



닐 영에게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부탁 하기까지의 과정과 에피소드에 대한 짐 자무쉬의 인터뷰. 예전에 유투브에 스튜디오에서 닐 영이 기타 연주하는 클립도 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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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6. 3. 19. 08:16


올리비아 아사야스의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목록  (올리비아 아사야스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을 통해 알게 된 영화.  2013년 영화인데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 되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무엇보다도 흑백과 핑크가 절묘하게 조화된 음악적인 영화 포스터가 Smith 의 베스트 앨범 자켓을 떠올리게 했다. (포스터 속의 프랜시스가 지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춤을 추고 있는것이었음) 오아시스가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스미스와 스톤 로지즈를 언급한 적이 있기에 수집하기 시작했던 스미스의 앨범들. 이 뜬금없는 흑백 영화가 영화를 채 보기도 전에 나로 하여금 어떤 회상에 젖게 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예감, 어쩌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추억도 아낌없이 녹아 있을것 같은 느낌. 요즘이 배경인 영화인데 굳이 흑백 필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제목에 등장 인물의 이름을 내세운 영화라면 여주인공은 아주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닐까. 



뉴욕 브룩클린에서 친구와 함께 집을 빌려서 살아가는 무용수 프랜시스. 함께 살자는 남자 친구의 제안도 거절하고 그녀가 택한것은 그녀들 스스로도 섹스만 없을 뿐 레즈비언 커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짝 친구 소피와의 생활이다. 하지만 믿었던 소피는 꿈꾸던 동네에서 (당연히 방세가 비싼) 살 기회가 생겼다며 프란시스를 남겨두고 미련없이 떠난다. 소피는 아마도 더 비싼 집값을 분담할 능력이 되는 룸메이트를 구한것일거다. 혼자서 집세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란시스는 소피를 통해 알게 된 남자들이 살고 있는 집의 하우스 메이트로 들어가고 방세를 내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의 무용 공연이 절실하지만 공연에 설 수 없게 되었다고 통보 받는다. 무용수로서의 일 대신 행정 업무를 보며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 받지만 거절하고 무용단을 나와 이런 저런 파트 타임을 뛰며 돈을 모으는 프랜시스. 한 저녁 모임에서는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 취한 프랜시스는 즉흥적인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적자와 더 깊은 공허함에 빠진다. 파리의 카페에 앉아 케잌 부스러기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 프랜시스에게 소피가 전화를 걸어오고 남자 친구의 일 문제로 도쿄로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더욱 상실감에 빠진다.



마냥 부러워 할 수 만은 없는 프랜시스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짤막하게 나열되는 소피와 프랜시스의 일상들은 여유롭고 경쾌하기 그지없다. 공원에서 탭 댄스를 추고 모은 돈을 버스킹하는 밴드에게 넘겨주고 줄행랑치고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상대에게 책의 인상적인 구절을 읊어 준다거나, 좁은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하고 창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대화를 주고 받고 계단에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는 특별할것 없지만 걱정과 근심이라는 단어가 자리잡을 곳도 없어 보이는 자의 일상.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을것 같은 영원할것만 같은 우정이 있고 가볍고 장난스러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일상 뒤에 따라오는것도 역시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남자 친구와의 문제일자리 그리고 돈에 관한 것들그리고 잠들기 전 그들이 나누는 대화 역시 그러한 질척한 고충을 맞닥뜨린 자들의 전형적인 미래 일기이다. '프랜시스 넌 정말 유명한 현대 무용가가 될거야난 너에 관한 엄청난 책을 출판할거고 우리는 파리의 비싼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낼거고 정말 멋진 연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아이는 가지지 않을거야'. 모두가 비슷한 것들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똑같이 절망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누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를 여행하며 무엇을 먹는지가 우리가 낭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지 오래이다. '저거 임스체어 아니야??' 프랜시스가 새로 살기 시작한 아파트에 방문해서 방 구석구석을 훑어 본 후 소피가 내뱉는 첫 대사이다. '난 일자리도 필요없고 차도 필요없고 세금도 내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영원한 휴가>속의 앨리는 요즘 세상에 없다. 낭만의 정의는 바뀐지 오래이고 젊음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그래서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소피와 프랜시스이지만 소피는 결국 프랜시스를 남겨두고 떠난다. 심지어 커피물 끓일 주전자 마저 가지고 떠나버린 소피,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절망적인 프랜시스는 급한대로 냄비에 커피물을 끓이다 손을 데이고 소피에게 전화를 걸어 주전자를 내놓으라고 욕설을 퍼붓지만 다음 장면은 세금 환급에 관한 편지를 받고 천진하게 기뻐 날 뛰는 프랜시스의 모습이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게 집인데 정작 자신이 설 조그마한 자리, 방 하나 찾기가 마땅치 않음에 조급해지고 절망하는 프랜시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를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프랑스 흑백 영화도 마음 편하게 보고 싶겠지만 모든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며 중국 음식을 먹는 프랜시스는 체할 것 만 같아 보인다. 낭만의 도시 파리를 여행 하고 있지만 시간을 떼우려고 케잌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는 프랜시스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가진것 없는 세대에게 더 이상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 현실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것이라 다독이며 감내하던 여유도 삼켜버린지 오래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이 인생에 뜻하지 않은 기회와 우연과 운명을 제공할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것은 더 큰 절망, 현실은 더 날것이 되어 소화되지 못하고 배탈을 일으킨다. 



매사에 즐거워보이고 장난끼 넘치는 긍정적인 프랜시스이지만 함께 살기 시작한 레프와 벤지 사이에서도 박탈감을 느낀다. 정신적인 교감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오토바이 헬맷을 들고 유유자적 집을 나서는 레프를 보며 벤지와 프랜시스가 나누는 대화는 이렇다. '레프는 오토바이도 있고 심지어 차도 있어.' '좋겠다. 난 심지어 이 집을 나설 다리도 없는데.'  재치 넘치는 대사, 과장된 몸짓과 디테일한 연기들이 흑백 필름속에서 빛이 난다. 흑백 필름속의 트렌디하고 풍족한 뉴욕을 보며 이 영화가 마치 아무렇게나 찍은 컬러 사진을 수십가지의 필터를 통해 흑백으로도 로모 카메라로도 손쉽게 변환 시킬 수 있는 인스턴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은 기우였다. 내가 언젠가 동경했고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어떤 흑백 영화속의 삶의 원형들을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렸다.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소년,소녀를 만나다 리뷰 보러가기) <나쁜 피>, 짐 자무쉬의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 구스 반 산트의 <말라노체> (말라노체 리뷰 보럭가기)그리고 누벨바그 하면 항상 거론되는 어떤 프랑스 고전 영화들. 이 영화 <프랜시스 하>를 보려는 사람이라면 재미 삼아 보면 좋을것 같은 영화들이다. 왜 굳이 흑백으로 촬영했을까 라는 물음표로 시작된 내 기대감도 아낌없이 충족됐다. 만든이들의 추억과 그들의 옛 영화에 대한 동경이 영화속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2013년의 젊음들은 흉내내기 힘든 삶의 애티튜드. 무원칙이라는 원칙속에서 자유로웠던 인물들. 영화는 한편으로는 2013년의 좌절한 프랜시스가 꾸는 흑백의 백일몽처럼 느껴진다. 30년전의 흑백 영화속에서 사랑에 고통받지만 지독히도 냉소적이었으며 대책없이 허무했고 별다른 삶의 모토없이 (혹은 그런척하며) 하루라는 최소한의 삶에 조차도 얽매이지 않으려 애썼던 많은 인물들이 프랜시스에게 레프에게 벤지에게 소피에게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 갑자기 흘러 나오는 음악. 1월에 세상을 뜬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이다. 정말 가슴이 펑하고 터지는 장면이었다. 30년이 훨씬 지난 노래인데도 그 인트로는 뭉클하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퇴폐적인 목소리와 감성, 시대를 앞서갔다라는 구태의연한 수식도 아깝지 않은 뮤지션이다. 프랜시스의 달리기 장면 그 자체가 짜릿했는지는는 모르겠다. 단지 같은 음악에 맞춰서 담배를 꼬나 물고 어둡고 조야한 밤거리를 미친듯이 뛰던 30년전 영화 <나쁜 피>의 드니 라방이 떠올랐을때 가슴이 턱하고 막혔던것이다.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고 상기된 표정으로 뉴욕 한복판을 달리고 또 달리는 프랜시스의 이 장면은 분명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향한 오마쥬이다. 줄리엣 비노쉬를 향한 가슴속의 벅차 오르는 사랑을 주체 못하고 정신 나간듯 달리던 드니 라방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울에 잠겨 있는 안나가 있는곳으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사랑이 이토록 별안간 갑자기 시작되어서 영원히 지속된다는것을 믿느냐고.' 우리가 늘상 꿈꾸는 감정을 그토록 솔직하고 순수하고 비현실적으로 담아내던 그들. 그래서 낭만적이다. 긴 달리기 끝에 프랜시스는 새롭게 둥지를 튼 벤지와 레프의 집에 골인한다. 프랜시스의 표정은 가까스로 다시 발 붙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가득하다. 결국은 그 안도감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절망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절망의 원인이 확실할때.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을때. 프랜시스가 느끼는 좌절은 한편으로는 드니 라방의 그것보다는 정당하고 명백해보인다. 팍팍한 현실. 이유있는 좌절. 하지만 모든것이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된 우울일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곳에 낭만이 설 자리는 없다.



레프가 쓰고 있는 페도라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 폴 벨몽도가 쓰고 있는것과 너무 비슷하고, 그의 전체적인 외모는 <천국보다 낯선>속의 에디와 윌리의 겉모습을 섞어 놓은듯 하다. 물론 그는 무늬만 보헤미안스럽지 선배들의 애티튜드와 감성을 전혀 물려 받지 못했다. 그의 아름답고 모던한 아파트속의 (하지만 역시 임대료를 내야하는) 벽속에 걸린 추억돋는 액자속 사진들은 그의 가족 사진도 아니고 여자들을 데려오면 으례 내 방 구경 시켜줄까 하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가는 그렇다고 여피도 아닌 시쳇말로 그냥 있어 보이는 인물이다. 프랜시스는 소피의 블로그를 통해 그녀의 도쿄 생활을 엿보고 모르긴해도 그로 인해 더 조급해진다. 함께 미래일기를 쓰던 친구인데 누구는 지구 반대편의 삶을 만끽하고 누구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컴퓨터실에서 행복 돋는 친구 블로그나 클릭하고 있고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소피는 하지만 도쿄 생활의 불만을 토로한다. 프랜시스는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은 소피의 모습에 다시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너 블로그에서는 행복해보이던데 왜'. 왜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환호 할 수 없는걸까. 왜 있어보이는 삶에 집착할까. 전보다 더 많은것을 가졌음에도 왜 없어보이는것에 불안해할까.  



임대료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랜시스는 결국 벤지와 레프와 함께 살고 있던 아늑한 집을 떠나서 도미토리에서 지내게 된다. 깔끔하기 그지 없는 장소이다. '난 돈이 없어서 직장에서 짤려서 임대료가 턱없이 비싼 요즘 같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도미토리에 묶는 불쌍한 세대' 라고 불행한 단어와 문장으로 목조르기에는 탤런트도 있고 건강한 신체를 지닌 아직도 낭만이 가능한 삶 아닌가. 이것은 내가 밀린 임대료 때문에 밥을 굶어 본 적이 없기때문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일까?  이전의 가난과 불행이 절대적이었다면 요즈음의 그것은 내 삶을 나보다 더 나은 타인의 삶 (이란것이 있다고 세뇌하는 사회속의)과 비교하는데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의 수준도 상향 조정되었으니깐. 옛날 영화였으면 프란시스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트레인 스포팅>에서 나오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더러운 화장실의 변기만도 못한 변기가 놓인 도미토리의 화장실에서 이를 닦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 호스텔 도미토리를 사용했을때 이렇게 잠들기 전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공동 샤워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수많은 침대가 놓인 침실로 돌아가야 할때가 있었다. 땀 냄새 풍기며 코고는 남자 아이들, 구석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여행자들, 새벽에 들이닥쳐 소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푸는 여행자들. 모든것이 지극히 낭만적이었다. 돈이 많으면 조식이 나오는 깔끔한 호텔에서 지내며 가이드가 붙어 있는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겠지만 왜 굳이 '돈이 없어서'  라는 조건을 붙여서 내 소중한 삶의 낭만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걸까.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프랜시스는 충분히 긍정적이고 밝고 꿋꿋했다는것. 비록 기대했던 우정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재능있는 발레리나 대신 안무가의 길을 택하면서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룸메이트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꼼꼼하게 우체통에 꽂을 이름을 적는다. 비록 글씨 크기를 조절을 못해서 이름의 절반은 접어야 했지만 그녀 자신의 인생과의 사랑을 시작한 그녀. 지금부터 시작되는 프랜시스의 인생을 다루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그녀가 내가 동경했던 영화 주인공들의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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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5. 3. 19. 00:23






가끔 기웃거리는 아이스크림 코너. 리투아니아에는 한국만큼 과즙을 사용한 맛있는 빙과류가 적어서 새 하드를 보면 한번쯤은 먹어 본다.  그런데 어제 사먹은 이 라즈베리맛 하드는 영화 속 아담과 이브가 먹던 오 마이너스 혈액형 하드와 정말 너무 닮지 않았는가. 모로코의 탕헤르에 머물던 이브(틸다 스윈튼)와 디트로이트에 사는 아담(톰 히들스턴)이 오랜만에 만나 온갖 악기들로 가득찬 지저분하고도 로맨틱한 아담의 거실 소파에 앉아 나눠먹는 O형 피 맛 하드말이다. 이렇게 단순히 과일맛 하드를 먹으며 떠올릴 영화가 있다는것도 참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걸어놓고 작년에 본 영화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담의 디트로이트와 이브의 탕헤르. 언젠가 가볼 수 있을까? 골목골목을 누비는 많은 여행자들덕에 아프리카 특유의 햇살과 그 태양 아래의 각양각색의 건물 외벽들. 그 건물들과 자갈길이 만들어낸 꼬불꼬불한 골목사이를 거니는 사람들과 그들의 무지개빛 옷차림에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 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최소한의 조명에 기대어 있는 밤의 아프리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내 스스로 여행하지 않는다면, 여행을 하더라도 마음 급한 여행자의 카메라로는 쉽게 담기 힘든 밤의 풍경. 저녁 무렵 가까스로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숙소를 나왔을때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 길을 걸을때의 그 기분. 그런 기분을 이브도 공감할 수 있을까? 다시 와보지 못 할 장소라는 생각에 골목의 자갈조차 가슴에 품고싶은 그 느낌말이다.  영원한 시간을 보장받은 뱀파이어의 삶은 진정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종류일까. 삶을 통해 느끼는 희열과 아름다움은 역설적이게도 한정된 시간과 제약된 장소에서 오는 소중함에 기반할때가 많다.  그토록 돈과 시간에서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우리들이지만 알고보면 좌절과 갈망 사이의 좁다란 틈을 메우고 있는  잘디 잔 기쁨의 언저리를 디딛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지속하려는 노력으로 살고 있는것이다. 훨씬 짧고 역동적인 우리의 일생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추억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기록의 수단은 다양해지고 제때 소화해내지 못하는 책과 음악과 영화 그리고 장소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영화속에서 묘사하는 뱀파이어의 삶은 대부분의 우리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삶과는 달리 적적하고 폐쇄적일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항상 그렇게 일분일초에 충실하고 간절하기만 한것도 아니다. 우리가 멍한 눈, 축 늘어진 어깨로 흘려보내는 시간을 우리에게 주어진 수명에서 백분율로 따져본다면  그 명상을 가장한 게으름과 탐닉으로 둔갑한 허무의 시간은 뱀파이어들이 여가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단지 사회에서 학습되어진 우리의 양심이 그러한 시간들을 고귀하게 여기길 허락치 않는것일뿐.  








몹시 다른 이브와 아담.  마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차가운 밀라노와 따스한 피렌체의 아오이와 준세이처럼 탕헤르와 디트로이트도 그들의 다른 온도를 표현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처럼 보인다.  아담은 이브보다 기록과 창작에 능숙하며 옛것에 심취하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명성을 대단치 여기지 않는다. 새것을 동경할 수 있고 누군가의 창작물에 매료될 수 있는 이브는 냉소적인 아담에 비해 한없이 따뜻하다. 그들이 오랜기간 함께 일 수 있었던 것. 그들의 감정이 적정 체온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브가 자신의 트렁크에 각종 언어로 쓰여진 동서고금을 가득 채워 담으며 여행을 준비하는동안  아담은 오래된 기타를 수집하고 음악을 만들며 변질된 세상에 허무함을 느낀다.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의 여러 현상들에 지닌 서로 다른 방식의 애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니깐 좋은 의미에서 가끔 짐 자무쉬가 딜레탕트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늘어놓는 수많은 작가들과 위인들 그리고 이미지들.  그들의 많은 작품들과 세상에 미친 영향 따위를 이해하고 영화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감독의 방대한 지식이 부럽다가도  어쩌면 자무쉬 자신도 내가 자무쉬를 안다고 착각하고 좋아하며 만족하듯 

그들을 어떤 의미에서 그저 선망하고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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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3. 6. 24. 23:37

 

 

<열혈남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 뉴욕에 머물던 에바가 숙모가 사는 클리블랜드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장면이 있다.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보낸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미 그녀가 익숙해지고 그리워하게 된것들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데 

바로 체스터필드 한 보루를 트렁크에 집어넣으면서 '이 담배, 딴 도시에 가도 있을까?'라고 윌리에게 묻는 장면이다.

낯선 곳으로 떠날때 우리는 늘 우리가 나중에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르는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갑자기 그 음악이 듣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씨디를 굽고

'그래도 머리맡에 놓고 두고두고 읽을 책 한권쯤은 챙겨야지' 하는 생각에 헌책방을 향하고

적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계산해보고는 삼분카레 세네봉지를 구겨넣는다.

갑자기 보고싶어졌는데 아무곳에서도 다운을 받을 수 없다거나 아마존에서는 몇십달러나 내야 주문이 가능하면 어쩌지? 

 서울을 떠나기전 부랴부랴 주문한 왕가위 영화들은 나에겐 에바의 체스터필드와 비슷한 의미였던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열혈남아>로 번안이 되었지만 영어제목은 As tears go by,  원제의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왕각가문>.

왕각가문이란 제목도 광동어로 발음하면 왕각은 '몽콕'으로 침샤추이와 같은 홍콩의 번화가 이름이고

가문은 외국어 발음과 비슷한 병음을 끼워맞추는 중국어의 특성상 '카먼', 고유명사로 '카르멘'을 뜻한다.

사실 엉뚱한것은 원제가 아니라 한국어 번안 제목인 <열혈남아>이지만 <지존무상>이나 <영웅본색>같은 홍콩액션영화가

유행하던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몽콕의 카르멘>이라는 원제가 더 뜬금없는 제목이었을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인구밀도의 도시 홍콩을 다시 작은 성냥갑속에 구겨넣은듯한 몽콕의 거리.

빽빽하게 들어찬 상가와 현란하게 깜빡이는 네온싸인만큼이나 번잡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인파들.

그들모두 어느정도는 좁고 숨막히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구역을 확보하려 신경과민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갖 범죄조직이 도시의 뼛속깊이 침투해있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첨밀밀>에서처럼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인들과 

<중경삼림>에서의 가난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로 가득한 이 좁은 도시에서

유덕화와 장학우 그리고 장만옥이 연기하는 젊은이들도 결코 이곳에 쉽게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긴 마찬가지.

몽콕의 카르멘. 왕가위는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담배공장에서 담배를 마는 떠돌이 집시여인 카르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것일까? 

 

 

장만옥이 살고 있는 란터우섬은 홍콩의 서쪽에 위치한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한다.

병 치료차 사촌오빠인 유덕화가 살고있는 홍콩에 잠시 머물지만 그의 불안정한 일상만 잔뜩 구경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잠자고 있는 유덕화가 숙모의 전화를 받을때 짐가방과 함께 배위에 서있는 장만옥을 잠시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에바가 트랜지스터를 들고 걷기 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장면과 흐름상 크게 다르지 않다.

80년대 뉴욕에 모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고 절제적으로 그려낸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과

80년대말 홍콩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선배 감독에게서 받은 영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왕가위.  

"Loving movie is enough to make a good movie"

좋은말들은 항상 당연한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들의 적합한 예가 되려면 그 loving의 정도는 상상 이상의 것이어야할거다.

타란티노가 자기자신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수도 있고 왕가위나 류승완같은 감독들도 동의할 만한 말.

    

 

윌리는 경마나 카드놀이로 소일하며 공장으로 일하러가는 노동자를 보고는 힘들거라고 동정하는 백수 이민자일뿐이고

유덕화는 사촌동생한테 밥사먹으라고 용돈도 줄 수 있는 한때는 잘나갔던 현직 폭력배.

유덕화가 사는 아파트도 윌리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보다 두배는 넓어 보인다.

에바는 윌리와 한방에 누워서 날이 새도록 어색하게 티비를 봐야했지만

장만옥은 최소한 자신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낯선곳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유덕화가 자는 동안 유덕화의 전화를 받는 설정도

 

 

티비디너까지는 아니어도 장만옥이 지어 준 맛있는 밥을 먹는 장면도 <천국보다 낯선>에 대한 철저한 오마쥬인걸까.

 

 

게다가 이 장면은 짐 자무쉬의 데뷔작인 <영원한 휴가>에서 밤새고 방황하다 돌아온 앨리를

여자친구가 침대 매트리스만 달랑 놓여있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면과 비슷하다.

사실 이후의 왕가위 영화에서는 이 정도로 절제된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비정전>이나 <중경삼림>같은곳에 등장하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방도 정말 산만하기 그지없었으니깐.

집도 직업도 세금 내기도 싫다는 앨리처럼 유덕화도 누군가에게 얽매여서 책임져야하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낙태한 여자친구에게 '내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하고 미련없이 사라져줄 뿐. 

 

 

정은임이 진행하던 FM 영화 음악에서 장만옥을 이렇게 표현한적이 있다.

마치 달을 씻어서 쟁반에 얹어 놓은 듯한 얼굴이라고.

25년전의 장만옥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그때의 표현이 얼마나 적합했는지 싶다.

 

 

성한 유리컵이 하나도 없다며 유리컵을 잔뜩 사놓고 떠나는 장만옥.

'한꺼번에 다 깨버릴까봐 일부는 숨겨놓았으니 못찾을때 전화하면 어디있는지 알려줄게요'

열혈남아 이후로 왕가위의 영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들 하지만 왕가위식의 감각적인 대사는 이때부터 어김없이 등장했다.

작고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서 인물간의 감정을 교감시키려는 시도.

한 공간에서 온전히 자신들에게만 허용된 순간을 누리는데 서투른 이들은

자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 한두개쯤은 슬며시 남겨두고 떠난다.

 

 

사실 홍콩 면적이 그렇게 넓은것도 아니고 구룡에서 란터우섬까지 거리가 먼것도 아닐텐데

영화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이 느끼는 거리감은 거대해 보인다.

더이상 날지 못하고 어항속에 떠있는 모형비행기나 젖어버린 비행기 티켓처럼

실제로 가까운곳에 있지만 서로간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

그리고 왕가위는 그 거리감을 마치 숙명인듯 표현해내는데 소질이 있다. 

 

 

광동어 번안곡이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Take my breath away가 흘러 나오고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신시사이저 사운드 충만한 음악들은 탑건이나 플래쉬 댄스 같은 80년대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왕가위 영화에 사용되는 적합한 음악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다음에는 이명세의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가진 비슷한 정서같은것이 있으니깐.

 

 

유덕화가 장만옥이 있는 란터우로 한걸음에 달려가 공중전화박스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재성과 채시라의 철조망 키스만큼이나 애절한데 네명의 배우들이 조금씩 서로를 닮은것도 같다.

사실 장만옥이 초반에 마스크를 끼고 마른기침을 하며 등장할때는 불치병에 걸린 사촌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깡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신파인가 해서 좀 긴장을 했지만

따지고보면 근친상간인데 먼 친척이라고만 나올뿐 구체적인 관계를 보여주지도 않고 영화도 그 부분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들이 짧은 시간 공유하는 그 감정과 그리움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뿐이다.

 

 

어릴때는 홍콩의 액션영화가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성우들의 목소리톤때문에 영화들이 다 비슷비슷해보였으니깐.

   강시 영화에 나오는 유한도사 목소리나 부하를 위해 목숨을 잃는 두목의 목소리, 나쁜 악당의 목소리는

전부 정형화되어서는 홍콩 영화 특유의 배경음악과 함께 섞여서 촌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합회나 흑사회같은 범죄조직들이 홍콩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주먹세계에서의 의리나 정의를 미화하기위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던 액션 영화들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르겠다.

 

 

왕가위도 자신의 데뷔작에서 어느정도의 비장한 액션씬은 보여줘야했지만

조직간의 세력다툼이나 배반, 하극상의 거창한 액션은 아니었고 

남의 비위나 건드리면서 대책없이 일을 벌이고 다니는 고향 동생 장학우의 뒤치닥꺼리나 하는 '우리 형'의 액션정도.

하지만 장학우와 함께 죽음직전의 상황에 몰려서는 우는 장학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 장면은

설마 <살인의추억>에서의 '밥은 먹고 다니냐'같은 애드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사고 치고 다니는 동생은 '점쟁이 말로는 서른이 되면 운이 트인데'라고 하지만

14살에 청부살인으로 처음 돈을 만졌다는 형에게 인간의 목숨은 정말 파리 목숨보다 가벼운것.

'정신차려. 너가 서른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초크묻인 손가락으로 당구공을 밀어내듯 그냥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는걸까.

우리가 운명이라고 단정짓는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한 평생도 아니고 한 시간만이라도 영웅으로 살고싶다며 절절하게 얘기하는 동생을 더이상 한심하듯 쳐다보지 못하는 형.

몽콕을 떠나 란터우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유덕화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에 순응한다.

행동의 본질은 그렇다.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닌 이겨낼 수 없는 슬픔에 맞물려서 흘러가는 인생.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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