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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2021 년의 햇살

낮이 급격히 짧아지고 어둠이 어둠 그 이상으로 어두워져서 이 시각 이 계단에 내리쬐던 이 햇살을 보려면 해를 넘겨서도 더 많이 기다려야한다. 그 순간을 계절과 시간으로 특정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 이 느낌이었지!' 하고 어떤 기억이 온 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순간에 도달하려면 사실상 딱 저 자리에 위치하는 순간과 함께 아주 까다롭고 미세한 조건들이 충족 되어야한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전선들 아래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을 따라 오래된 먼지와 담배 꽁초가 나뒹구는 계단이지만 층계참에 남쪽 건물 마당을 향해 내어진 창은 여지없이 이 햇살을 끌어와선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이와 비슷한 풍경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살아갔을법한 사람들이 등장했던 많은 이야기들. 오래 전 그들로부터도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의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간다. 위층에서부터 술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일군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벽을 향해 몸을 당기면 옷 자락이 스치며 벗겨진 페인트 칠이 떨어져나간다. 다양한 인간들의 제각각의 사정으로 의견 일치를 보기 힘든 이런 곳은 변화도 방치도 부식조차 모두 더디다. 모든것이 아주 천천히 이따금 변하다보면 역설적으로 그 변화의 울림이 너무 거대하여 서서히 파괴되는 것들엔 오히려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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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라줌마 2022.01.22 20:17 신고

    잠시들러 새해 안부를 전하려 들어온 날 이 포스팅의 글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 남기려 했던 안부는 남기지도 못하고 돌아 갔어요.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 포스팅의 글이 제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다가 더 복잡하게 했다……… 그랬답니다.
    저는 민스크를 떠나 이태리 시댁에 머물며 암스테르담행 준비를 하고 있어요. 3-4월쯤 초기 정착을 다질 수 있으려나 걱정이 많습니다……
    영원한 휴가님을 만날 수 있는 물리적 거리는 민스크보다 조금 멀어졌으나 마음 먹으면 만남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적 거리는 가까워 졌어요.😊
    올 해 역시 우리 인연의 끈 꼭 잡고 있길 희망해요!!
    새해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세요.!!

    • 영원한 휴가 2022.01.23 02:10 신고

      정말 그렇네요. 민스크는 정말 가까운곳인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졌던걸까요. 아담한 암스테르담이 훨씬 더 이웃도시 같은 느낌이 드는게 정말 이네요. 암스테르담은 심심할틈없는 활기찬 도시였던걸로 기억해요. 가을날씨는 빌니우스와 너무 비슷해서 항상 떠올립니다. 암스테르담에 리알토 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아직 있는지 모르겠어요.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두리번만 거리다 왔는데 아무영화나 보고 올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곳이었죠. 가족 모두 잘 적응하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