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급격히 짧아지고 어둠이 어둠 그 이상으로 어두워져서 이 시각 이 계단에 내리쬐던 이 햇살을 보려면 해를 넘겨서도 더 많이 기다려야한다. 그 순간을 계절과 시간으로 특정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 이 느낌이었지!' 하고 어떤 기억이 온 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순간에 도달하려면 사실상 딱 저 자리에 위치하는 순간과 함께 아주 까다롭고 미세한 조건들이 충족 되어야한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전선들 아래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을 따라 오래된 먼지와 담배 꽁초가 나뒹구는 계단이지만 층계참에 남쪽 건물 마당을 향해 내어진 창은 여지없이 이 햇살을 끌어와선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이와 비슷한 풍경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살아갔을법한 사람들이 등장했던 많은 이야기들. 오래 전 그들로부터도 어쩌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의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간다. 위층에서부터 술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일군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벽을 향해 몸을 당기면 옷 자락이 스치며 벗겨진 페인트 칠이 떨어져나간다. 다양한 인간들의 제각각의 사정으로 의견 일치를 보기 힘든 이런 곳은 변화도 방치도 부식조차 모두 더디다. 모든것이 아주 천천히 이따금 변하다보면 역설적으로 그 변화의 울림이 너무 거대하여 서서히 파괴되는 것들엔 오히려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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