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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몇 권의 책

2년 전쯤인가. 문득 올해 이즈음에 뻬쩨르에 가게 된다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구시가에 헌책방이 많은데 러시아어 책들이 꽤 많아서 돔끄니기 간다는 느낌으로 가끔 찾아간다. 고양이 한 마리가 온 사방 책을 누비며 기어 다니는 어떤 책방에서 지난달에 발견한 몇 권의 책들. 마치 어린이 도서관에 제일 찾기 쉽게 생긴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 동화 모음집처럼 두껍고 큰 판형의 책은 '죄와 벌'과 '가난한 사람들', '아저씨의 꿈'이 함께 수록되어있는 독특한 조합의 책이고 두 번째는 그가 보낸 서신의 일부를 모아놓은 책. 그리고 마지막은 겉표지의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왔던 '멸시받고 모욕당한 사람들'. 이 책은 오래전 리투아니아어로 꾸역꾸역 날림으로 읽고 비교적 최근에 한글로 다시 읽어서 느낌이 남달랐다. 나타샤와 이흐메네프가 다시 조우하면서 포옹하는 장면, 이반이 먼 곳에서 목도하는 다리 위에서 구걸하는 넬리의 모습이 앞표지와 뒤표지에 나란히 그려져 있다. 이 책방에는 유난히 러시아어 책들이 많고 특히 서점 가장 깊숙한 곳의 책장에는 주요 작가들의 다양한 판본의 작품들이 거의 전집처럼 모여있는데 최대한 생김새가 다른 책들을 골라왔다. 이 책들을 한글 읽듯 술술 읽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눈감고 펼쳐보는 어떤 페이지에서 그럭저럭 해석되는 몇 문장을 바탕으로 어림짐작하여 한글 버전이나 리투아니아어 버전의 같은 부분들을 찾아 하루에 몇 페이지씩만이라도 비교하며 읽어보곤 한다. 아주 짧고 일상적인 문장들이라도 그가 손수 써나간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독특한 일체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가 정말 언젠가 존재했다는 것이 실감 나기도 한다. 영원히 알 수 없을것 같은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용기를 필요로하는 존재를 소개받았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지나친 행운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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