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에 나타난 모차르트를 보고 이 동전이 그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적도 없고 있다고 들어본 적도 없는 동전인데 마치 기다려낸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아마 동전을 본 그 짧은 순간에 모차르트의 탄생이든 죽음이든 그것을 기리는 기념주화는 충분히 주조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기념주화는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그들의 신동을 진작에 1유로에 새겼다. 유럽연합 가입때와는 달리 유로화 도입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도 오스트리아인들은 유로화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동전 디자인에도 여론 조사가 동원되었다.
동전 속의 모짜르트가 딱히 어색하진 않지만 모차르트 그 자신의 음악가적 카리스마보다는 마치 넬슨 제독 같은 인상을 풍긴다. 1유로 표시 아래에 피아노 건반 같아 보이는 것은 오스트리아 국기를 묘사했다. 문장이면 모를까 국기가 그려진 동전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보면 이 동전엔 오스트리아를 연상시키는 두 가지 붉은 빛깔이 빠진 상태이다.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의 초상화 속의 붉은 옷과 오스트리아 국기를 이루는 위아래의 붉은 선이다. 모차르트를 정말 모차르트 같아 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헤어 스타일도 눈빛도 미소도 아닌 붉은 옷이었나 보다. 옷자락에 새겨진 그의 친필 사인은 18세기의 요절한 천재 음악가의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롱보드를 타고 다니는 젊은 캘리그래프 아티스트가 새겨 놓은 것처럼 현대적이다. 그것은 아마 여전히 모차르트가 실존했다고 믿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음악들을 누군가가 실제로 만들긴 했을 텐데 악보에 음표를 그리고 있는 모차르트를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오래전에 삼익 피아노 광고에 나오던 음악이 모짜르트 소나타 5번이었다. 어디서든 건반 악기만 보이면 여자아이들이 달려들어 두들기던 젓가락 행진곡이나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울려 퍼지던 행진곡을 제외하면 아마 가장 처음 자연스레 접했던 피아노 연주곡. 천안에 가서 모차르트 소나타 1권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연습했던 작품도 5번이었다. 서울에서 학원을 다닐 때에는 체르니나 하농 같은 책들을 1번부터 순서대로 치고 검사받고 끝까지 지루하게 다 치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는데 천안에서는 작품집의 번호 순서와 상관없이 선생님이 정해주는 곡들을 연습하고 전곡을 배우지 않아도 아예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 모차르트의 소나타 1권은 5번 1번 6번 10번 8번 그리고 2 번순으로 넘어갔는데 난 8번을 제일 좋아했다. 그것이 아마 그 작품집의 거의 유일한 단조 작품이었던 것 같다.
모차르트가 내게 가장 유의미하게 다가왔던 때는 아마 5학년때 갔던 피아노 콩쿠르에서였다. 그때 대상을 탔던 아이가 연주했던 곡이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었다. 사실 그 변주곡은 정말 별것이 없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클라이맥스도 없고 휘어잡는 도입부도 없고 장엄한 대단원은 더더욱 없다. 플랫이나 샵이 하나도 붙지 않는 정말 정직하고 아장거리는 다장조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변주로 진입할 때마다 화성이 쌓여가고 현란해질 때 그것에 집중하며 박자를 놓치지 않고 연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재심에 올라갔을 때의 연주를 듣고 대상을 타고난 후의 연주를 또 들었는데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연주를 듣고는 이 단순해 보이는 곡을 잘 치는 것이 어쩌면 비창 1악장보다 즉흥 환상곡을 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 음악은 영화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장면들에 많이 쓰였을 테고 영화 속의 클래식을 언급할 때 늘 등장하는 레퍼토리도 있지만 내가 가장 감동적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내가 팀 로빈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단연 쇼생크 탈출에서 팀 로빈스가 스피커를 통해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를 내보내는 장면이다. 감옥 마당에서 산책을 하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어리둥절해진 죄수들의 모습과 음악을 멈추게하려고 몽둥이를 들고 등장한 간수와 감옥 소장의 독촉에도 오히려 볼륨을 키우던 온화한 표정의 앤디가 떠오른다.
오스트리아 10센트 동전 - 성 슈테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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