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무르익던 유니텔 영퀴방이 한산해지는 새벽녘이 되면 보통 늘 보이는 사람들만 남고 비몽사몽한 기운에 나오는 문제도 비슷해진다. 마치 가장 마지막까지 술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며 이미 오래전에 바닥을 보인 어묵탕 뚝배기를 습관적으로 휘젓는것처럼. 그 중 유난히 자주 등장해서 기억나는 영화들이 몇 편 있는데 리포맨, 감각의 제국, 틴토 브라스의 영화들, 피셔킹, 피터 그리너웨이의 필로우 북 등등 어쩌면 전혀 접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영화들이지만 모뎀 너머로 자신과 비슷한 영화광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최대한 현학적이고 비겁한 힌트를 내밀다 결국에 초성 힌트를 주며 마무리되는 공통점이 있는 영화들이다. 그중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도 출제자들이 좋아하는 영화였다. 아무도 못 맞출거라 작정하고 낸 힌트들에 예상대로 반응이 없자 정말 이것만큼 쉬울 수 없다는 듯한 체념의 말줄임표를 곁들이며 도도하게 건네는 마지막 힌트는 영화 원제 힌트였다.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그리곤 또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이 영화는 이것이 기출문제라는 것을 알고 오답노트를 지닌 자들만이 맞출 수 있었다. 30년이 지나도록 결국 보지 못했지만 그 제목은 일상에서 자주 떠올린다. 이 성당 벤치에서 자주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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