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구시가의 좁고 한산했던 골목. 검고 둥근 것을 보면 엘피판이 먼저 생각나는지라 먼발치에서 봤을 때 저것은 화장실이 아닐 것이다, 저것은 예전에 화장실이었던 곳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쓰는, 이상한 명칭을 가져다 붙인다면 조금은 더 힙해보일거라는 강박이 있는 세상의 많은 클럽 중 하나일 것이다. 생각하며 다가갔다. 하지만 이곳은 마블 영웅들이 화장실에 앉아있는 컬러 포스터들과 모나리자가 거짓말처럼 두루마지 휴지에 둘러싸인 그림들로 장식된 진짜 유료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건물 색감과 번듯했던 문 때문이었는지 이 장면에선 베를린에서 지나쳤던 한자 스튜디오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이 화장실은 순전히 나의 억지로 아주 음악적인 화장실로 뇌리에 남는다.
바르샤바에서 간혹 음악을 들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90년대의 엠티비 클립들,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던 록시트와 조지 마이클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까지. 뒤섞이기 힘든 조합의 많은 음악들이 '20대에 들었던' 이란 조건을 충족시키며 바르샤바 폴더에 담겨졌다.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보위의 모던 러브. 모던 러브의 인트로에 맞춰 열심히 질주하던 나쁜 피의 드니 라방과 뉴욕을 발레 동작으로 질주하던 그레타 거윅, 무대 위에서의 보위의 실루엣까지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여전히 같은 음악을 듣고 그들의 하나뿐인 인트로와 함께 늘 같은 추억과 인상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지만 갖은 첨삭으로 빽빽한 그 악보 위에 새로운 추억이 첨가될 여백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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