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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라 코치나 (La Cocina, 2024)

La cocina (2024)



노천 테이블들이 놓이는 여름 시즌, 빌니우스 구시가를 걷다 보면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기름 냄새가 있다. 튀김기에서 갓 건져진 냉동 너겟, 오징어링, 버펄로 윙, 감자튀김 같은 것들이 기름을 떨쳐내며 퍼뜨리는 냄새,  햄버거에도 스테이크에도 아동 메뉴에도 립에도 어디에도 곁들이는 것들, 어떤 인종도 어떤 성격의 손님도 전부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평균적이고 광범위한 메뉴, 고급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더없이 저렴하지만 패스트푸드나 일반 식당보다 월등이 맛있지도 않으면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음식들, 분주하게 걸어 다니는 능숙한 서빙 스탭들로 가득한 그런 식당들이 있다.    
 
 

기회의 땅, 2024년의 미국이지만 <브루탈리스트>의 1940년대 미국이 겹쳐지는 장면.



영화는 뉴욕 타임 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딱 그런 분위기의 거대한 레스토랑이 배경이다. 주고객은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식당 지배인부터 셰프, 보조셰프, 웨이트리스, 청소부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매일매일 채용 인터뷰에 사람이 몰리고 여직원 락커룸은 패션쇼 백스테이지만큼이나 현란하다. 식당 주방은 작은 미국이다. 분명 누군가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누구의 나라도 아닌 것 같은 나라 아닌 나라. 이곳은 그린카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취업비자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고 그것을 버텨내는 사람과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뜨거운 기름과 칼과 불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곳이다.
 
 

La cocina (2024)

 
 
'바닷가재는 100년전만해도 어부들이 노숙자한테 나눠주고 낚시 미끼로 쓰는 바다의 치킨 같은 존재였지. 이걸 어떤 부자 놈이 산해진미로 둔갑시켰어. 시골 촌뜨기 백인들이 뉴욕에 와서 타임 스퀘어에서 사진 한 장을 박고 40달러를 내고선 바닷 가재를 먹지. 그리고 랍스터 한 마리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삶이라며 남은 평생 자랑스러워하지. '
 
매일 아침 말끔하게 닦은 수족관 안에 바닷가재를 집어 넣으면서 그날의 영업을 시작하는 식당. 멕시코 이민자 페드로는 그만한 가치도 없는 음식을 비싼 돈 주고 먹으며 기만당하는 사람들이라며 신랄하게 비꼬지만 몇 년 동안 비자문제도 해결해주지 않고 질질 끄는 사장 밑에서 정해진 요리를 해야 하는 요리사이다. 그는 이제 모든 상황이 지긋지긋하다. 뒷문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온 부랑자에게 랍스터 요리를 손에 쥐어주며 백 년 전 어부처럼 통쾌하게 행동한다. 그걸 본 지배인은 원가 타령을 하며 노발대발, 매일 지배인한테 욕을 얻어먹고 주방 동료들에게 시비를 걸고 낙태를 하겠다는 미국 여자친구를 말릴 명분도 없다. 
 

La cocina (2024)

 
 
컴퓨터에 앉아서 경영진처럼 거드름을 피우지만 밥먹을때가 되면 결국 주방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주방으로 스멀스멀 내려올 뿐인 사무직 직원 미국인(이 된 이민자), 월급보다 더 짭짤한 팁 수입에 신경 쓰며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웨이트리스들, 금고에 현금이 모자란다며 급발진하는 가게 주인, 가게 주인 비위를 맞추며 주방 군기를 잡는 지배인.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식당도 그렇다. 이런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별로 쿨하지 않고 꼴 보기 싫은 면모들을 그 개인의 삶과 개인적인 감정에서 완전히 분리한 채 타인에게 거침없이 발휘할 때 그나마 굴러간다. 식당 주방이 배경인 영화가 참 많지만 주인공 셰프들은 늘 자기만의 식당을 꿈꾼다. 잠깐 머물다가는 곳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남의 식당에서의 그들은 한순간도 행복하지가 않다. 일 년 365일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식당에는 사실 충분히 쉬면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늘 같은 실수와 문제가 반복되지만 그 원인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있다. 힘든 피크 타임이 지나가고 잠깐 바깥으로 나와 들이마시는 매캐한 담배 연기와 함께 다시 모든 고통들이 리셋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매니저들은 또 그런대로 자기 입장이 있다. 직원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는 잘 안다. 적어도 주방안에서는 그렇다. 
 
 
 

가로든 새로든 유니폼에 줄무늬 디자인은 좀 안썼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스탭 모두 창의력을 발휘하며 메뉴 개발에 뛰어드는 자율적인 분위기, 폐업 직전에 갑자기 발견되는 돈뭉치, 계몽적인 식당 주인, 열정적인 직원들이 함께했던 이상적인 식당'  <더 베어> 의 지옥 버전이고 <슬픔의 삼각형>속 호화 크루즈에서 가장 하위 크루들이 일하던 선박의 밑바닥을 따로 떼어내어 뉴욕 레스토랑 주방으로 옮겨놓은 스핀오프에 가깝다. 흑백처리된 화면을 뚫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주방 속의 찌든 기름 냄새가 흘러나온다. 뒤뚱거리는 선박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모두가 안감힘을 쓴다. 주방 바닥은 물로 차오르고 주문은 늘 엉킨다. 그곳엔 극복할 수 없는 계급이란 것이 존재하고 불만에 찬 사람들이 어떤 되바라지고 폐부를 찌르는 어록을 쏟아내도 그런 옳은 말 따위는 귓등으로 듣는 상위 포식자가있을뿐이다. 직원 대다수가 이민자이지만 물론 미국인들도 있다. 낙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줄리아는 거의 모든 항목에 체크를 한다. 기를 수 없어서. 원치 않는 아이여서.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배우자가 원치 않아서. 모두들 미국인이 되고 싶어 버티고 또 버티지만 미국인의 삶이라고 해서 꿈같진 않다.  
 
 

La cocina (2024)

 
 
식당이 배경인 영화는 어쨌든 하는 일과도 관련이 있으니 좀 더 재밌게 보게된다. 한편으론 셰프를 연기한 멕시코 배우 라울 브리오네즈의 원맨쇼이다. 좀 받쳐주는 배우들이 더 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루니 마라 조차도 별로 대사가 없다. 주방 난동씬이 클라이맥스인데 뜨거운 기름 빼고는 전부 뒤집어쓴다. 이 장면을 한 번에 찍고 오케이사인을 받은 거라면 대단하다 싶다. 마지막에 주문 용지가 나오는 기계를 가차 없이 부서서 망가뜨리는 광기에 찬 그를 보며 하루 장사를 망친 누군가는 분노하지만 대다수는 통쾌했을 거다. 이것은 마치 망가진 그리스 트랩 탓에 하수가 역류할 때 매상 걱정을 하며 '기술적 문제로 문 닫습니다'문구를 폴더 깊숙한 곳에서 찾아 출력하는 가게 주인과 기름때가 들어찬 바닥을 닦을지언정 시간표에 적힌 대로 근무시간을 적을 수 있음에 만족하는 사람과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언저리엔 식당 입구에 붙여진 익숙한 공고를 무심하게 읽고 다른 식당으로 향하는 무수한 고객과 또 그를 버선발로 맞이하는 다른 수많은 식당들이 있을 뿐이다. 대체 인력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네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 될 수 있는 위치를 지키고 있는 느낌은 분명 안락하지 않을거다.  
 
 

페드로가 하얗게 불태운 주방 난동씬

 
 
영화를 보는 내내 <파스타>의 최현욱 솊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칼과 불과 기름이 있는 주방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기름이다'. 그래도 한국솊은 모국어를 쓰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어갔으니 그나마 덜 힘들었을 거다. 뉴욕 식당의 주방이야말로 뜨거운 기름과 함께 온갖 인종과 언어, 각기 다른 모국어의 사고방식이 기저에 깔린 뒤틀린 영어와 똑같은 식재료를 봐도 전혀 다른 음식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동상이몽으로 가득 찬 용광로이다. 때로는 경멸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살아남는 것으로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하게 하는 곳, 그것이 아마 도시의 습성일거다. 
 

Hoja santa 라는 잎사귀를 바삭하게 구운후 부숴서 드레싱과 비빈다. 깻잎 같음.

 

이 영화에 사실 요리 장면은 별로 없다. 주방에 들어온 배고픈 사람에게 버터를 녹여 정성스럽게 랍스터를 굽고 사촌이 멕시코에서 손수건에 고이 싸서 가져다 준 고추 잎사귀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 정도가 클로즈업된다. 페드로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정성스레 도마를 셋팅한 후 멕시코인들에겐 소울 푸드 같아보이는 신기한 고추 잎사귀를 달군 팬에 올려놓는다. 빵을 반으로 자르고 햄을 올리고 구운 고춧잎을 부셔넣은 드레싱을 뿌려서 줄리아를 찾아간다. 이제 이런 샌드위치 씬들은 음식 영화의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것 같다. 오믈렛이나 간단한 파스타처럼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고 언제든 냉장고를 열면 만들 수 있을것 같은 간단한 요리들. 평소에 먹기 힘든 뭔가 신기한 요리들을 구경할까 싶어 영화를 보지만 결국 군침을 삼키게 하는 것들,  영화가 끝나면 부엌을 향하게 하는 것들, 매일 같은걸 먹을때마다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그런 음식들이다. 드레싱에 부숴셔 넣을 만한 풀떼기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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