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이웃님이 주셔서 가지고 있는 쏜살문고 책이 두 권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책의 키와 몸무게가 좋다. 그 책들을 체급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아마도 슈퍼 플라이급정도 되려나. 양장이 아니어도 분량 때문에 최소 웰터급 이상이 되어버리는 책들과 비교하면 이 문고의 책들은 체급심사장까지 겨우 기어 들어갈 듯 왜소하다.
혹시 이 시리즈에서 가지고 싶을 법한 책이 더 있을까 검색하다 좋아하는 단편이 담겨있는 오웰의 <책 대 담배>를 발견하고 작년 가을 주문했다. 108g. 초콜릿 한 블록 정도의 무게. 1g/한 페이지.

친구는 그 책을 들고 바르샤바로 오고 있다. 오전 기차를 눈앞에서 놓치고 예정보다 8시간 늦게. 나는 거의 텅 비었다고 해도 좋을 가방을 들고 반대편에서 바르샤바로 왔다.
오웰의 묵직한 두 장편보다는, 짧은 산문들이 개인적으론 더 재밌는데. 이 <책 대 담배>의 경우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식의 향정신성 물질에 대한 장난꾸러기들의 나른한 톤은 아니다.
책 구입에 쓴 대략의 비용을 다 더해서 365일로 나눠서는 따지고 보면 담배나 맥주값보다 책값이 비싸진 않다는 것을 도표까지 그려가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책값 비싸서 책 안 읽는 단 소리 하지 말라며 영국 사람들한테 섭섭해하는 내용인데 각 잡힌 영국인 이미지, 오웰의 진지한 어감으로 인해 한없이 유머러스해진 책이다. 책이 재미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이라며 작가로서 성찰과 채찍질을 하는가 예상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대영제국민 오웰도 미처 알지 못했던 게 설령 책값이 담뱃값보다 싸고 책 읽기가 흡연의 즐거움을 거뜬히 능가하더라도 그 책을 마음껏 사서 읽을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재외국민이다. 내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식민지로 발령 나온 제국의 공무원이기라도 했다면 나도 오웰처럼 낮에는 미친 코끼리를 제압하고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한국어책을 읽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한국을 떠나오자마자 발을 들여놓았던 전자책 시장을 생각하면 이제는 전자책 발간 비율은 월등해졌고 전자책 구독 서비스의 질도 좋아졌지만 넘기면서 읽는 한글 종이책이 그냥 그리울 때가 있다. 이럴 땐 한글을 읽어서 습득되는 비교적 분명한 내용과 모국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서가 그리운 건지 그냥 종이책을 넘기는 손가락 끝의 감각 추구 행위 자체가 그리운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어디서든 그 나라말로 된 책을 읽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외서인 경우 한국어로 번역되는 책이 훨씬 많고 현지어 번역서가 없을 때 가장 경제적인 것은 어쩌면 인터넷에 떠도는 영어 파일들을 찾아 읽는 것이겠지만 내 영어가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그리하여 외국에서 책 읽는 방법들을 가성비 순으로 나열하자면
1. 현지 도서관에서 현지어로 된 책 읽기.
2. 없으면 한국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 찾기
3. 없으면 한글 전자책
4. 없으면 영어 파일
5. 없어도 있어도 한국에 다녀오는 지인들 통하기.
사실상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1번이고 4번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과 그런대로 타협해 가는 와중에. 전화기 액정 밝기를 변덕스럽게 조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스크롤과 함께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는듯한 화면 속의 활자들을 빳빳한 종이 위에 세워 둘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갑자기 저 책 자체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생물을 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양양 남대천의 여울목처럼 휘몰아치는 지점이 있으니 바로 5번이다.

그럴 땐 우선 읽고 싶은 책 위주로 새 책 중고책을 막론하고 전부 장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그리고 겹치는 책들이 생기는 중고 셀러를 골라서 책을 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체급심의에 돌입한다. 그 무게를 계산기를 두드려 덧셈하고 그 쌓아진 책들의 높이와 폭을 벽돌공처럼 가늠하며 타인의 여행 트렁크 속의 네모진 빈자리를 탐하는 것이다.
그러니 책은 한 손으로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 좋다. 가령 카고 바지 주머니를 발목뼈까지 늘어뜨리지 않을 만큼 가볍고 재킷 주머니에 쏙 들어가고 이것저것 붙이고 젖어서 불어난 작은 다이어리 하나를 겨우 품을 정도의 작은 가방에 들어가고,

기차 복도로 삐져나온 여행객들의 발바닥을 야멸차게 밀고 지나가는 군것질 카트 속으로 전복되는 시선과 함께 가차 없이 손바닥에서 퇴출당해도 굉음을 내지 않고, 책을 쥔 상태에서 가장 마지막 줄 활자의 지근거리에서 고요히 팔딱거리는 동맥의 파동이 올곧이 곁눈질한 시야 안으로 함께 비집고 들어오는 그런 책,
예를 들면 바라나시에서 푸리로 가는 18시간짜리 3등 칸 기차 안에서 인도인들의 수다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백팩을 베개 삼아 꾀죄죄한 프랑스인이 손에 쥐고 읽던 딱 그런 책,

모스크바에서 뻬쩨르를 향하는 열차 속에서 찰스 다윈과 마르크스의 그것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수염을 달고 에르미타쥐가 적힌 포르트펠을 가슴팍으로 당겨 안은채 위태롭게 이층 칸으로 올라가던 러시아 아저씨가 들고 있던 책,
어쩌면 버려진 버스 속에서 들숨 날숨 사이로 비쳐들던 알래스카의 태양을 인지하며 스러져가던 에밀 허쉬가 쥐고 있을 법한 허름한 책. 이것이 가벼운 책 한 권에 행복해질 거라 망상하는 소시민의 로망이라면 로망이다.
한국책을 넘겨가며 읽는 즐거움이 최대치가 되는 순간은 사실 긴 시간 진득하게 앉아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보다는 짧게 분절된 시간 속에서이다.

가스레인지 바로 앞에 앉아서 돌솥의 밥물이 넘치지 않을까 주시하고 파스타 소스가 주물솥바닥에 붙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휘저어야 할 때, 분화구처럼 부글거리다 이제는 넘칠 채비를 마친 우유수프를 끓이는 사이사이.
고작 한 두 문단을 읽어도 추억에 잠기고 과거의 웃음이 무음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가장 강렬한 기억들은 언제나 그렇듯 세탁 종료음이 울리고 밥이 눌어붙는 냄새가 호령하는 현실에서 가장 극명하게 포착되기에.
계속 읽어도 재밌어야 할 테고 여러 번 읽어도 늘 새로워야 할 거고, 새롭지 않아도 늘 같은 장면에서 웃음과 울음이 나오고 그 순간들이 계속 기억나서 '반가운' 그런 '아는' 책들이어야 할 거다.

베를린발 기차는 140분 연착되었지만 짐작했던 180분이 아니어서 반가웠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잃을 것도 없는 상황에 놓이는것도 그런대로 안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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