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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참새들의 노래 (2008)

 

 
 
<천국의 아이들> http://ashland.tistory.com/559070  에서 알리의 아버지로 나왔던 레자 나지가 이 영화에서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 카림으로 등장한다. 그가 일하는 타조 농장에서 타조 한 마리가 도망치자 그는 해고된다. 직업을 잃은 남자는 타조알 하나를 퇴직금처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기대에 찬 아이들에 둘러싸여 망치로 타조알을 깨는 모습이 모스크에서 가져온 설탕을 깨던 알리의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는 샥슈카를 만들어 이웃과 나눈다. 타조알이 얼마나 큰지 열 접시는 넘게 나온다. 해고당한 가장의 막막함이 전해지면서도 풍성한 샥슈카 한 접시를 보는 순간 마음이 놓인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큰 딸은 동네 아이들과 버려진 수조에서 놀다가 보청기를 빠뜨린다. 카림은 딸의 보청기를 고치러 시내에 갔다가 비싼 수리비에 절망한다. 하지만 잠깐 세워놓은 그의 오토바이에 누군가가 올라타면서 얼떨결에 오토바이 기사가 된다. 그렇게 그는 오토바이를 끌고 도시로 출근한다. 손님을 태워주다 이삿짐을 나르기도 하고 전자제품 배달꾼 무리에서 실수로 이탈하여 집까지 남의 물건을 끌고 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인심 좋은 손님을 만날 때도 있고 돈을 안 내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다. 돈을 벌 수 있어 그는 어쨌든 안심한다. 
 
운이 좋아서 평소보다 돈을 조금 더 번 날, 그는 올리브인지 대추야자인지를 넉넉히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는 길에 봉지가 터져 열매들이 하나둘 달아난다. 남은 것은 생각보다 적지만 아내와 웃으면서 맛있게 먹는다. 애써 움켜쥔 행운은 늘 그렇게 조금씩 새어 나가지만 남은 것으로도 충만하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와는 별개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동네에 버려진 더럽고 음침한 수조를 청소해 금붕어를 키우는 꿈을 꾼다. 발을 담그면 병에 걸릴 것 같은 그 더러운 곳을 아이들은 이미 금붕어가 헤엄치는 깨끗한 연못으로 상상한다. 
 

 
 
영화는 한국의 전자제품이 유행할 만큼 여유로워진 이란에서 여전히 카림처럼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알리와 아빠가 부유한 동네 집들의 벨을 눌러 정원사 일을 알아보거나 카림이 오토바이로 태워준 사람의 이층 집에서 이삿짐을 나르는 장면들은 카림과 알리가 처한 상대적 빈곤을 드러내기보다는 서로의 빈틈을 채우는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마지드 마지디는 가난을 미화하거나 연민하지도 않고 부자들에게도 완만한 시선을 취한다.

하지만 카림은 조금씩 돈에 집착하게 된다. 그가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돈이 벌린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돌아오는 길엔 온갖 잡동사니를 싣고 와서 집을 손본다. 아내가 상의도 없이 친척에게 줘버린 헌 문짝을 고집스럽게 다시 집에 가져다 놓으면서 자기 것을 지키기 시작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그 성실함은 흠이 되지 않지만 그 자신의 마음은 점점 좁아진다. 샥슈카를 나눠먹던 카림이 빼앗겼던 자기 문짝을 꾸역꾸역 다시 가져오는 날, 그는 크게 다쳐서 몸져눕는다. 그가 일도 못하고 누워있는 그 순간 가족과 이웃의 도움을 받는다.  

가족을 먹여살려야한다는 현실이 어쩌면 카림의 시야를 좁힌다. 반대로 아이들은 카림과는 다르게 세상을 본다. 금붕어가 살아가는 연못을 상상하며 만들어가는 태도는 카림이 살아가는 세상과 비교하면 훨씬 자유롭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 대비는 흥미롭다. 어른이 되면 늘 현실과 책임 때문에 당장에 집중하게 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심지어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드 마지디는 카림에게서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아이들이 출연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카림이라는 어른에 좀 더 헌정된 영화이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윽박도 지르고 무섭게 굴지만 카림이 가진 아버지로서의 본심과 따뜻함을 보여준다.
 

 

 
 
 

마지드 마지디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사람이 내뱉는 안도가 느껴진다. 해결해야 할 일들은 끝없이 쌓여있고 어떤 일은 필요 이상으로 꼬여버린다. 그 사이사이 작은 우연과 뜻밖의 행운들이 끼어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 속의 하루는 단 한 번도 단조롭게 흘러가지 않는다. 반복되는 실패들 때문에 하루를 견디는 일조차 버거워 보이지만, 정작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 지루해진다. 반대로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닥쳐오면, 차라리 해결할 수 있었던 사소한 불편으로 채워졌던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진다. 
 
〈참새들의 노래〉에서 카림이 몸져 누워서 비로소 돌아보게 되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그의 곁에 있었던 것들이다. 가족의 얼굴, 이웃의 손길, 영화는 그것들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의 삶을 지탱해 왔다고 말한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가지만, 정작 가장 힘든 순간에 그를 붙잡아주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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