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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그린카드 (1990) - 조지의 모카포트와 커피

 



뭔가를 많이 기억해야 할 때, 외워도 유독 잘 안외워지는 것이 있을때, 그렇게 기억하려고 했던 그게 결국 기억나지 않을것 같은 불길한 순간을 상상할 때 생각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그린카드>에서 이민국 직원과 분리 면담을 하는 조지 (제라르 드 파르디유)와 브론테(앤디 맥도웰)의 모습이다. 식물원이 딸린 집에서 살고 싶은 미국인 브론테(앤디 맥도웰)는 남편이 필요했고 미국 영주권이 필요한 조지는 아내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들은 위장결혼을 하고 각각 원하는 것을 얻고 남남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이민국에서 단속을 나오면서 개별 인터뷰가 잡히고 서로에 관한 자잘한 사항들을 외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 서로의 인생에 관한 디테일들을 암기하며 서로를 알아가지만 인터뷰 끝무렵에 조지는 브론테가 쓰는 크림 이름을 잘못 말한다. 몬티첼로를 모나코로 헷갈렸나 뭐 그렇다. 결정적으로 그걸 틀리게 말하고서 '아 매번 이걸 기억 못 한단 말이야'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된다. 그래서 조지는 영주권을 빼앗기고 추방된다. 내가 살면서 단어하나 문장하나 제대로 못 말해서 영주권을 빼앗기고 추방될 일은 없을 테니 조지에 비하면 사정이 좋지만 기억해야 할걸 기억 못 하고 헛소리를 하는 순간을 상상하면 분명 눈앞이 캄캄해진다.   
 
조지와 브론테는 인터뷰를 앞두고 근사한 정원이 딸린 브론테의 아파트에서 진짜 부부처럼 얼마간 함께 살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은 사사껀껀 부딪힌다. 자유분방한 조지는 까다로운 브론테가 갑갑하고 섬세하고 신중한 브론테는 투박하고 거침없는 조지가 불쾌하다. 아무리 위장결혼이라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을까. 
 
프랑스를 떠나기 전 조지는 미국인들은 아주 맛없는 커피를 마신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거다. 때는 아직 90년대였으니. 뉴욕의 허드슨 강물을 절반은 쏟아부은 듯한 묽디 묽은 아메리카노도 조지는 예상했을 거다. 하지만 디카페인이라는 강적을 만날 줄이야. 장바구니에 선홍색 다짐육을 벽돌처럼 쌓는 조지와 온갖 씨앗이 박힌 거무스름한 유기농 빵 코너를 기웃거리는 브론테의 상반된 취향은 모카포트와 디카페인 커피에서 정점을 찍는다. 
 
실제로 이 둘은 자신들의 커피를 퍽이나 닮았다. 조지는 대충 닦은 알루미늄 포트 어딘가에 남아 있을 커피의 흔적을 감내할 수 있으며 가스레인지 불길을 타고 그윽하게 올라오는 가스냄새와 불길이 조금만 세도 야속하게 녹아들어 가는 플라스틱 손잡이까지 모크포트가 제공하는 모든 변수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는 섣부른 희망의 노예가 되기보단 현재의 슬픔에 충실한 사람이며 극단적으로 비관적이기에 삶을 죄책감 없이 냉소할 수 있다. 
 
반면 브론테는 인생을 즐겁게 하는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하나 둘 제거한 상태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 커피는 마시지만 카페인은 굳이 벗겨내고 싶고 햄버거는 먹지만 베지 패티가 더 양심적인 것 같다. 여러 가지 이념에 둘러싸인 브론테에게 세상은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그녀는 거대한 도시 꼭대기의 온실 속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지만 빈민가에 꽃을 심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도 정답은 아니다. 둘은 그저 다를 뿐이고 그래서 다른 커피를 마실 뿐이다. 
 
브론테의 집을 처음 찾아간 날 브론테가 끓여준 디카페인 커피를 끝까지 마시길 포기하고 조지는 여행 가방에서 주섬주섬 모카포트와 커피봉지를 꺼낸다. 커다란 손으로 포트 상단과 하단을 분리해서 물을 채우고 커피 가루를 바스켓에 소복이 담아서 잠근다. 모카포트를 가스레인지 위에 안착시키고 성냥을 긁어서 불을 붙이기 직전의 조지의 표정에서 프랑스의 부엌에서 느긋한 아침을 준비하던  과거의 자신과 랑데부하기 직전의 설렘을 읽었다면 과장일까. 
 
떠돌이 같은 행색으로 짐꾸러미 하나를 들고 브론테 앞에 나타난 그가 손수 커피 기계를 짊어 지고 다니다니 아직 모카포트란 것을 몰랐던 십 대의 나에게 이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커피 기계가 있다니 언젠가 나도 저런 귀여운 커피 포트를 들고 여행 가고 싶다고 꿈꾸던 시절.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유럽을 여행했을 땐 어느 호스텔에 가도 보일러 부분이 시커멓게 탄 모카포트가 싱크대 근처에 놓여있었다.
 
 



 
여행가방을 꾸릴 때 우리는 쉼 없이 미래의 결핍을 예측하며 추리고 추린 일상을 거북이 등껍질처럼 이고 길을 떠난다. 조지도 가벼운 알루미늄 덩어리의 커피 기계가 만들어내는 자신의 '아는 커피'를 포기할 수 없었을 거다. '제대로 된 커피'의 정의란 상대적이지만 난 조지의 표현을 대체로 이해한다. 푹푹 꺼지는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하는 모카포트 곁으로 허겁지겁 다가가서 보일러의 남은 물들이 다 빠져나오기 직전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포트 뚜껑을 열 때의 두근거림, 분출하는 커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작은 잔에 옮겨 담는 찰나의 정성. 아직 사라지지 않은 크레마를 간절히 붙들고 절반의 성공을 자축하는 순간, 두 모금 정도에 불과한 이 검은 커피가 낯선 미국 땅에 도착한 조지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알 것 같다. 
 
뉴욕에 도착한 처음 얼마간 그는 건너 건너 지인들의 집을 전전했을지도 모른다. 뒤돌아서면 기억하지도 못할 거면서 세상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을 장착하고 예의상 던지는 집주인들의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고 또 하며 주인이 침구를 내어주고 자기 방으로 사라지는 순간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불이 필요한 모카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부엌이 있는 곳이라면 헝겊이 감긴 야전 병원의 침대일지언정 그는 좋았을 것 같다. 아직 거처도 미래도 불분명하고 위장 결혼이라는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낯선 땅에 안착하고 싶었던 그에게 여행 가방 속에 자리 잡은 모카포트는 일종의 작은 안식이지 않았을까.
 
브론테의 집에 초대받았을때에도 조지는 내심 너무 즐거웠을 것 같다. 초록 식물들로 우거진 옥상 정원에선 응접실 문을 지나 넉넉한 바람이 불어왔다. 급조된 룸메이트인 브론테가 좀 까다롭게 굴긴 했어도 그는 그 순간은 혼자가 아니었다. 따뜻한 카우치에서 잠들 수 있었고 고향에서 데려온 모카포트를 꺼내 쓸 수 있었던 그 며칠 그는 정말 행복하지 않았을까. 머리 한 구석에는 위장 결혼이란 것이 들통나고 영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간혹 펼쳐지고 있었겠지만 모처럼 마주한 안락함에 모든 걱정을 유예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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