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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화이트 갓 (2014)

 

 
 
헝가리 감독 코르넬 문드루초의 최신작 <At the Sea>가 어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됐단다. 나중에 베를린에 가면 반드시 영화제 기간에 한번 가봐야겠다. <화이트 갓>은 <그녀의 조각들>https://ashland.tistory.com/559062 의 감독 코르넬 문드루초의 더 이전 작품. 널찍널찍한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와 넘사벽 헝가리어를 듣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비영어권 감독들이 조금 알려지기 시작하면 아예 미국에 가서 영화를 찍는다는 게 좀 아쉽다.  

트럼펫을 부는 이혼 가정의 열두 살 소녀 릴리(Zsófia Psotta)와 그녀의 개 하겐이 주인공이다. 영화의 배경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잡종견에게 특별세가 부과되는 이상한 정책이 시행되는 곳이다. 사람들은 잡종견은 물론 견주조차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우스꽝스러운 설정이다. 지금 세상에 순수혈통의 개가 과연 얼마나 남아 있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 우스꽝스러움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극단적인 정책이 영화 속에서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동물 문제로만 보면 과장처럼 느껴지지만 인간 사회의 은유로 읽으면 아주 낯선 상황은 아니다. 특정 민족들이 조직적으로 제거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고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릴리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엄마는 새 남자친구와 호주로 떠나고 릴리는 오랫동안 함께 살지 않아 서먹서먹한 아빠 다니엘( Sándor Zsótér)의 집으로 옮겨온다. 사춘기 딸과의 생활은 물론 릴리의 개 하겐도 아빠 다니엘에게는 버겁다. 잡종견 하겐을 집에 두는것은 불법이고 세금을 내야 한다. 이미 하겐의 존재를 알고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항의하기 시작하고 개가 밤마다 짖는 것도 딸이 개 때문에 아빠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도 다니엘은 못마땅하다. 그래서 결국 부다페스트 근교 도로에 하겐을 버린다. 하겐은 얼마간 열심히 달려 자동차를 따라가지만 결국 길에 혼자 남는다. 하겐은 노숙자와 투견시장을 거쳐 광적인 투견꾼에게 팔리고 그의 모진 학대와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분노를 학습하고 개싸움에서 상대개를 물어뜯어 죽이며 다크호스로 부상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탈출해서 잡종견 보호소에 들어갔다가 투견꾼만큼 그들을 모질게 대하는 사람을 물어 죽이고 다른 개들을 해방시키며 도시로 질주한다. 

 

 
 
 주인에게서 버려져 낯선 도시를 떠돌다 다시 돌아오는 개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오래된 동물 영화의 계보를 분명히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서사는 헝가리라는 특정한 장소와 역사, 그리고 감독이 선택한 음악속에서 기묘하게 뒤틀리며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혼종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개들은 한 국가 안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한 이방인들, 혹은 불분명한 혈통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유럽 어떤 나라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특히나 지리적 위치로 인해 유난히 여러 민족들이 섞이는 나라들이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같은 나라가 특히나 그런곳인데 이곳은 오랜 시간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겹쳐온 장소였고, 동시에 그 나라내부에서 이미 그 민족주의로 인한 갈등들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잡종견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이 국가가 정의하는 ‘순수함’ 바깥에 놓인 존재들이다.
 
문드루초가 이전 작품들에서 유대인이라는 소재를 지속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영화가 헝가리에서 말살된 유대인의 기억을 개라는 존재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했을거라 짐작하게 한다.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내부 결혼을 이어가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 애쓴 공동체가 오히려 열등한 유전자를 보존한 존재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제거된 역사. 그리고 헝가리 지역의 떠돌이 민족 집시의 존재와 그 밖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차별의 대상이 되며 수용소로 향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국가적 경험이 토대가 된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버려진 개들이 수용소 같은 보호소에 갇히고, 번호가 매겨지고, 집단으로 통제되는 장면들은 그런 예상에 힘을 실어주지만 그들이 결국 분노를 품고 도시로 돌아와 인간 사회를 공격하는 전개는 억압된 기억이 폭력으로 되돌아오는 불필요한 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겐이 릴리의 아버지에게 버려지고, 노숙자를 거쳐 투견 시장으로 팔려가며 점점 더 공격적인 존재로 길러지는 과정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본래 폭력적인 존재가 아니라, 차별과 유기를 통해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개들의 반란은 단순한 공포나 판타지라기보다는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의 댓가처럼 느껴진다. 다만 그 분노가 다시 타자를 향한 공격으로 되돌아오는 구조 때문에 그들이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억압의 기억을 분노로 전환하는 서사는 강력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기때문이다.
 
하겐이 흥분하고 자기통제에 실패할 때마다 릴리는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트럼펫으로 연주한다. 릴리의 연습으로 오랜 시간 그 음악을 들어온 하겐에겐 광시곡은 익숙한 향기처럼 그를 안정시킨다. 영화는 리스트의 음악 아래에서 인간을 공격하던 개들이 완전히 항복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트럼펫을 부는 릴리와 그 앞 광장에 누워버리는 개들이 채운 라스트씬은 솔직히 멋있다. 오래되고 장중한 건물들이 사이에 널찍하게 뚫린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수십마리의 개가 달리는 장면들도 사실 정말 명장면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어쩌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장면이었다. 하겐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갈수록 그가 인간을 해치고 다른 동물들을 독려할수록 빨리 이쯤에서 헝가리 광시곡이 나와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아마 영화를 본 누구나 하게 될 거다. 그런 면에서 민족주의적인 음악 아래에서 모든 존재가 잠시 평온을 되찾는다는 결말은 나에겐 좀 불편했다. 로만 폴란스키가 자기 영화에 쇼팽을 끌어 들어와 유대인의 기억과 유럽의 상처를 불러낸 것처럼 어쩌면 헝가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초기의 코르넬 문드루초도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를 포기할 수 없었겠단 생각도 든다. 두 감독 모두 음악을 통해 특정한 역사적 상처와 정체성을 호출한다.하지만 그 음악들은 서정적인 만큼 어딘가 불안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전인류적이라기보다는 특정 지역의 음악으로 더 각인된다. 프란츠 리스트의 음악이 등장하는 순간, 영화는 소외받고 핍박받는 존재에 대한 보편적인 은유에서 특정 민족의 영역으로 미묘하게 이동한다. 바로 그 지점쯤에서 약간의 거리감을 느꼈다. 특정 민족의 고통을 부정하고 싶다기보다는 세계의 고통이 불균등하게 기억되고 재현되는게 싫기때문이다. 어떤 집단은 자신들의 비극을 지속적으로 담론화 할 수 있지만 어떤 집단은 몇세기가 지나도 그런 자원을 갖지 못한다. 비극을 겪는 것과 그 비극을 세상에 말할 수 있는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모든 집단의 비극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비극이 독점적인 서사로 자리 잡을 때 다른 수많은 비극이 보이지 않게 된다. 세계가 점점 더 연결되면서 생겨난 윤리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만 그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는지도 분명히 해두고 싶은 태도이다. 특정 민족의 비극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비극을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려고할때 이런 영화는 살짝 방해가 된다. 코르넬 문드루초는 아니 헝가리 광시곡 한번 쓴거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지도 모르고 유대인 생각은 1도 안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잡종견들은 범인종적인 차원에서 세상이 품으로 돌아가는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 결말에 완전히 몰입하긴 힘들다. 민족과 혈통에 관계없이 같은 땅 위에 존재했던 모든 존재는 결국 그 자체로 차별 없이 수용되어야 한다는 소망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이라기보다 어떤 상상처럼 보인다. 그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이고 감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영화가 결말로 갈수록 나에게는 조금 간지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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