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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가솔린 레인보우 (2023)

 

 

 
로스 브라더스의 <가솔린 레인보우>는 여러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아메리칸 허니>https://ashland.tistory.com/559005와 <인투 더 와일드> 그리고 <천국보다 낯선>, 바다를 보러 간다는 데에서 어쩌면 <노킹 온 헤븐스 도어>까지. 외형이 닮지 않아도 왠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내밀함이 이들 사이에는 있다. 정서적인 염기서열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여정들은 다른 듯 비슷하게 대체로 허무하고 쓸쓸하다. <천국보다 낯선>의 윌리와 에디가 황량한 기차선로 위에서 나누는 클래식한 대화를 보자. "이상하지 않아? 새로운 곳에 왔는데도 어딜 가나 똑같잖아."."닥쳐". 뉴욕을 떠나 클리블랜드를 거쳐 플로리다를 향하는 그들의 여정이 그랬다. 여행은 늘 그 길에 발을 들여놔야 그제야 무엇을 꿈꾸며 떠나왔는지를 다시 되묻게 하는 아주 고약한 버릇을 가진 놈이니깐. 
 
오레곤주의 와일리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다섯명의 십 대가 밴을 끌고 513마일이나 떨어진 바다를 보러 가기로 한다. <아메리칸 허니>에서 스타가 만난 장거리 트레일러 운전기사는  바다를 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태어난 곳도 사는 곳도 몇 시간만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는 작은 나라이다 보니 그 말은 내게 꽤나 생소했다. 물론 미국은 광활하고 미국 자체를 그냥 하나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지만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바다를 꿈꿀 만큼 그들이 얽매여있는 삶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면적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좀 먹먹했다. 이 아이들도 오레곤의 와일리라는 시골 마을이 좀 지긋지긋하다. 컬리지나 대학에 들어갈게 아니면 이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하기 싫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벌게 되면 왠지 다시는 그 시골바닥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그들은 긴 여행을 떠난다.
 
한밤중에 길가에 밴을 세워두고 야외 파티에서 놀다가 밴의 바퀴를 전부 도난당하면서 안락할 수 있었던 이들의 여행은 일종의 모험이 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이상의 위험하거나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여행 도중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따스하다. 드라마틱하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거나 배불리 먹게 해주지도 않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음 목적지를 향하는 그들과 감동적으로 포옹하고 작별한다.
 
집을 나와 방황하는 또래들에게선 화물기차에 몰래 올라타는 법을 전수받고 (다행히 <인투 더 와일드>의 에밀 허쉬처럼 올라타다가 작살나게 얻어터지고 내동댕이쳐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선상 가옥에 사는 히피들을 만나 좀 지루한 조언을 듣고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부모에게서 도망쳐 나온 스케이트보드 청년을 만나 공감받고 많은 한밤중의 파티를 경험하고 그 순간만큼은 자유를 느낀다. 그리고 조금씩 자기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멕시코로 강제추방당한 아빠, 부모가 둘 다 약물재활소에 들어가서 친구와 함께 사는 아이, 두 동생을 돌보는 게 너무 버거운 아이 등등. 저마다가 털어놓는 답답한 이야기들은 떠나온 그들을 좀 더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 바다에 다다른다. 바다 위에 떠오른 달을 보며 모래사장 위를 걷는 그들 위로 드뷔시의 달빛이 팡하고 울려 퍼진다. 그리고 어쩌면 이 여행의 마지막 파티일지 모를 해변의 파티에서 사람들은 달빛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듯이 피아노를 태운다. 해가 뜨고 피아노 현과 철골이 덩그러니 남은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둘러앉은 아이들은 우울함과 막막함에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한다. 모두가 그 침묵의 의미를 안다. 이제 보고자 했던 바다를 봤고 돌아가야 할 일만 남았다. 
 
 

 
 
이 영화는 미국 독립 영화 감독 로스 브라더스의 첫 정식 극영화이다. MZ세대 감독이 만든 Z세대에 관한 영화라고 보면 된다. 어떤 세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했던것들을 이들은 집요하게 왜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해야하는지 묻는다. 일몰을 보며 밥로스의 그림 같다고 한다든가 건즈 앤 로지즈나 비틀즈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은 걸쳐있는 세대로써의 감독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비전문배우들이 나오고 미국의 소도시를 자유분방하게 여행한다는데에서 <아메리칸 허니>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딱히 플롯이라고 할 게 없어 허구과 기록영화의 경계를 넘나든다는데에서 또 다르다. 다섯 아이들 모두 이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스타와도 다르다. 돌아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들은 오히려 남은 삶을 견딜 힘을 갖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듯 보이지만 어린 그들이 결국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제법 밝은 기분으로 끝난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부모세대와 단절되어 있다. 모든 세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텐데 시대가 바뀌고 삶의 조건이 달라졌음에도 계속해서 같은 가치를 중요시하도록 강요받으니 이들은 자발적인 단절을 택한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물질적인 안정과 소유를 강조하고 미디어에서는 전보다 훨씬 과격하게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의 삶을 보여주지만 이들은 뭔가를 가지는것 자체가 너무 힘든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도 너무 싫은 세대이다. 
 
누군가가 그 자신의 삶을 답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전달받는 일종의 압박감이 있다. 하지만 그 압력들이 항상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탈출 욕망을 공유하는 순간 조금 숨통이 트이면서 자유로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떠나는 동안만큼은 자신이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길 위에서는 모든 것이 유예된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낯선 도시의 밤,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누는 대화. 그 순간만큼은 삶이 열려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돈도 떨어지고 더 이상 멀리 떠나는 것의 명분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돌아온다. 그 경험은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진 않지만 완전히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남겨두지도 않는다.
 
우리는 종종 어딘가에 도착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어디를 가도 자신을 놔두고 가기란 불가능하다. 떠남과 도착과는 상관없이 이동 자체가 하나의 의미였고 변화보다는 그 여정에서 공유된 시간과 감각이 결국 삶을 견디게 한다. 함께 차를 타고 달렸던 밤, 처음 본 바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춤추고 웃던 순간들을 계속 함께 추억할 수 있다는데에서 이들은 삶을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여행했다는 경험과 그들이 공유한 감정도 아마 영원히 남을 거다.
 
수많은 로드무비에서 모두가 떠나온 곳과 떠나갈 곳 사이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영화에서도 명확한 해답을 가져가는 주인공은 없다. 해답을 얻고 너무나 분명한 표정으로 여행을 끝맺는것은 로드무비의 결격사유가 아니려나. 영화에서 아이들은 많은 풍경들에 감동받는다. 눈물흘리게 하는 풍경을 봤다는 그 자체가 감동이라고 말한다. 그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없이도 어딘가에 계속 존재할 거라는 사실과 잠시라도 그 풍경에 내 자신이 포함되었었다는 사실이 아마도 위로의 본질일 거다. 
 
 

 
 
난 사실 이 영화를 클래식 연주곡을 잘 쓴 사례로 생각하고 그러지 못한 사례(https://ashland.tistory.com/559078)에서 억지로라도 연결하고 싶었다. 헝가리 감독이 쓰는 프란츠 리스트와 미국감독이 삽입한 프랑스인 드뷔시의 곡 선정은 사실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 영화에서는 어떤 클래식을 써도 민족주의 서사와 결부시키기가  애매하고 오히려 시각적인 장면들이 보다 더 미학적으로 남는다. 비록 피아노를 불태우는 광란의 파티 장면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어두운 해변에서 울려퍼지는 드뷔시의 달빛은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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