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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The Color of Paradise (1999)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 모하메드(Mohsen Ramezani)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맹인 기숙학교에서 생활한다. 그곳은 다른 이란 영화 속의 일반학교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은 훨씬 따뜻하고 사려 깊다. 그들은 쉽게 속도를 낼 수도 없고 아이들을 다그칠 수도 없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정상인들과는 다른 출발선을 가지게 된 아이들은 시험을 위해 배운다기보단 언젠가 그들이 내던져질 세상을 보다 예민하게 인지하기 위한 감각을 키우는데 열중한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친구들이 모두 부모와 만나 학교를 떠나고 모하메드는 여전히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둥지에서 떨어져 울고 있는 새를 감지하고선 주머니에 넣고 나무 위에 올라가 둥지에 올려준다.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 있고 땅 위를 헤매고 있는 새소리에서 어미새를 그리워하는 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을 떠난 엄마, 아직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는 아빠를 생각하며 모하메드는 어쩌면 자신이 둥지에서 떨어진 새와 같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하셈(Hossein Mahjoub)은 재혼을 준비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은 그가 꿈꾸는 새로운 삶의 장애물이다. 그는 모하메드를 학교에 영구적으로 놔둘 방법을 찾지만 결국 시골집으로 데려온다. 꽃이 만발한 언덕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그곳은 천국이 있다면 정말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할머니와 여동생들에게 소년은 너무나 사랑받는 존재이다. 소년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순수한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모하메드가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은 볼 수 있는 자들의 괜한 걱정이다. 모하메드는 그 감정을 전부 느낀다. 볼 수 없는 그는 그를 둘러싼 침묵의 의미도 구별할 줄 안다.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머뭇거림인지 그와 함께 온전히 존재하려는 사람들의 말없는 수용인지 그는 느낄 수 있다.
 
 

 
 
모하메드는 고향집에 머무는 동안 여동생들이 가는 일반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모하메드는 특별한 아이다. 그는 시인이자 성실한 관찰자이며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고 이해력도 특별하다. 하셈은 새장가를 가기 위해 열심히 집을 수리한다. 신부집에 돈을 줘야 하니 돈도 열심히 번다. 그는 희망에 차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존재는 그의 가장 큰 약점이다.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한 명은 장애를 가졌으니 신부집에서 알게 되면 결혼을 허락할리가 없다. 앞을 보지 못하는 모하메드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부인을 생각하면 야속하다. 제대로 정돈하며 살기에 주어진 생은 너무 버겁다. 그러니 새 출발을 하고 싶다. 하셈은 모하메드를 맹인 목수가 있는 곳에 보내려고 한다. 방학이면 데려와야 하는 맹인 학교도 그에겐 충분치 않다. 맹인 목수집에 보내놓으면 기술을 배워서 모하메드가 결국 스스로 자기 생을 짊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셈은 아들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이 영화의 어디에도 명확한 악인은 없다. 아버지는 비겁하고 이기적인듯 보이지만 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인물은 아니다. 노모는 손자를 떼어내려는 아들을 비난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자식이 온전히 자식을 기르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부모의 마음은 너무 힘들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이중의 고통일 것이다. 자신이 죽고 나면 젊은 아들이 아내도 없이 어린 자식들을 혼자 돌봐야 한다는 현실도 부모로선 마음이 아프다. 누구도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틀리지 않다. 
 
하셈의 가족사는 결국 드러나고 그는 재혼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하메드의 할머니도 죽는다. 하셈이 모하메드를 목수에게서 데려오던 날 모하메드는 다리가 무너지면서 물에 빠진다. 하셈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곧바로 강에 뛰어들지 못한다. 모든 책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순간 그를 압도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물에 뛰어들고 그들은 급류에 휩쓸려 바다에 도달한다. 움직임 없는 아들을 안고 하셈은 흐느낀다. 모하메드는 여전히 신의 소리를 듣고자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할머니는 부당한 세계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서로 다른 태도를 대표한다. 아버지는 분노한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무겁게 만드는 현실이다. 그는 왜 이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그 조건 자체를 부정하려 한다. 새로운 결혼을 통해 다른 삶을 시작하고, 아들을 숨기려 하며, 자신이 짊어진 운명을 외면하려 한다. 아버지의 분노는 틀린 감정이 아니다. 부당함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노에 아마 가장 공감한다. 그러나 그 분노가 현실을 바꾸는 대신 현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인간은 점점 자신이 처한 세계로부터 고립된다. 아버지의 비극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다른 삶으로 도망치려 한다는 데 있다. 
 
모하메드는 분노하기엔 너무 어리고 순수하다. 그는 그저 질문한다.  왜 자신은 이렇게 태어났는지, 왜 신이 자신에게 선물이라고 준 삶은 이런 모습인지 그의 태도는 탐구에 가깝다. 그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 대신 만지고, 듣고, 느끼며 세계와 접촉한다. 그는 부당한 세계에 대해 분노로 반응하기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고 때로는 가혹하다. 왜냐하면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늘 고통을 더 깊이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할머니는 하셈과 모하메드를 이어주는 동시에 어쩌면 제3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녀는 누구보다 독실한 이슬람 여성이지만 신의 의도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 고통이 의미 있는 것이라 억지로 해석하지도 않는다. 그저 손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한다. 할머니의 수용은 체념은 아니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 현실을 조건 없이 끌어안는 태도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공간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곳에서 비로소 한 인간은 긴장을 내려놓고 살아갈 수 있다. 할머니가 있는 곳은 그런 의미에서 이상적이고 모하메드에게는 안전한 장소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장애를 가진 아이의 비극이라기보다, 보이는 것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빈곤한 감각이다. 몸이 성한 아버지의 삶은 볼 수 없는 모하메드의 삶보다 오히려 지옥이다. 모든 감각이 작동하지만 가장 눈앞에 있는 자식의 마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소년은 보지 못하지만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세계와 연결된다. 반대로 아버지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끝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들의 가능성도, 그가 왜 사랑받으며 존재해야 하는지도, 자신이 저지르는 선택의 대가도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한다. 모하메드를 맹인 목수에게 보내려는 아버지의 결정은 인간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축소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아이의 가능성은 '앞을 보지 못한다'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평가된다. 영화는 보고 듣는 지각능력의 유무가 인간 전체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동시에 그 터무니없는 기준이 실제 세계에서 얼마나 쉽게 적용되는지도 보여준다.  
 
모하메드가 자기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하면 할 수록 그가 볼 수 없는 영화 속 풍경은 우리에겐 아름답다. 뒤돌아서면 아름답지 않은 풍경들이 시야를 가린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소년과 모든 것을 볼 수 있기때문에 무엇을 외면할지 선택할 수 있는 우리 중 더 깊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질문에 다다르지 않으면 이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눈물과 연민을 요구하는 그저 불우한 어린이가 나오는 신파적인 영화로만 남는다. 
 
이 작품은 감독 마지드 마지디가 이후에 만든 <버드나무 Willow Tree>의 전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는 시력을 회복한다고 해서 인간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지, 혹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이미 가지고 있던 내면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는지 계속해서 묻는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종종 육체적 시각과 영적인 시각 사이에서 갈라진다. 그리고 그 갈라짐 속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이 무엇을 진짜로 볼 수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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