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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누군가의 커피



어느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서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카드를 놔두고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현금 카드랑 마트 카드만 들고 마트에 갈 때가 많다 보니 쓰고 나서도 종종 다시 지갑에 집어 넣는 것을 깜박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잡아 타고 대성당 근처에 내려서 어느 상점 계산대 앞에 섰을 때에야 동전도 카드도 없어서 오늘의 나는 커피 한 잔도 사 먹을 수 없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전을 탈탈 털어도 1유로가 모아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마신 이 커피 사진들은 그 날 집을 나와서 걷다가 자전거를 타기 직전 찍은 사진이다. 빌니우스의 모던 아트 뮤지엄 건설이 한창인 그 거리의 자전거 스탠드 앞에 카페 세 곳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의 이런 풍경들은 기분 좋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가 마시고 간 커피 만큼 아직도 커피를 마시지 않은 우리를 각성하는 카페인은 없는 것이다.  





셋 중의 두번째 카페의 커피 잔. 좋아하는 색깔. 기본 3색도 흑도 백도 아니지만 완전하다 느껴지는 색.  비가 잦은 빌니우스에서 이런 야외 테이블의 의자들은 보통은 비가 고이지 않도록 테이블 가장자리에  이마를 댄 채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의자들을 곧추 세워 놓고 받침 위에서 미세하게 달그락 거리는 커피잔을 들고 밖으로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커피의 결이 경사진 바닥 위 테이블의 10도 남짓한 각도를 감지하고 얄궂게 넘쳐 흐를 때,  쏟아 넣은 설탕이 불어오는 바람을 붙잡고 서서히 녹아 들어갈 때,  커피가 땅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그런 친절한 진동을 감내하는 순간은 그것이 나 아닌 누군가의 커피여도 가슴 한 켠을 따뜻하게 한다.  그날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카드를 챙겨서 다시 나갔다. 내가 마신 오후의 빈 커피잔도 얼마간은 테이블 위에 머물러 있었기를. 그리고 얼마 후에 또 다른 내용의 커피를 담고 나의 그것과는 다른 햇살과 바람을 마주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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