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런치', '점심 메뉴'. 구시가지를 걷다가도 식당 입간판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단어. 구시가지 입간판에 메뉴와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면 저렴한 점심 메뉴가 있으니 들어오세요 라는 소리일 확률이 높다. 이곳은 신시가지의 뒷골목이었다. 뒷골목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굵직하고 투박한 건물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듯한 이 구역은 그냥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끈덕지게 드나들고 아는 사람만 알면 되는 공간들로 가득 채워진 어디가 입구인지 뒷문인지 애매한 매우 배타적인 풍광을 지닌 곳이다. 흡사 영업을 끝낸 식당 아저씨가 한 밤중에 시커먼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물 것 같은 풍경속에 매달려있던 오늘의 점심 광고. 무엇을 주는 지를 굳이 알려야 할 필요도 없다. 때가 됐으니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 할 것 아니겠소 라고 말하는 듯한 단도직입적인 문구. 빌니우스의 구시가지는 빌니우스시의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서 관광지 개념으로 특별히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냥 빌니우스 시 산하의 구 의 개념이라고 보면된다. 그런 구시가지(Senamiestis) 와 바로 맞닿아 있는 구역이 신시가지 (Naujamiestis) 인데 그 구역도 구시가지에서 전부 도보로 커버가 될만큼 밀착되어 있고 신시가지 자체도 넓지 않다. 신시가지에서는 소련시절에 지어진 4-5층짜리 대단위 주거단지 흐루쇼프카를 구경할 수 있다. 나라가 집과 보드카를 주던 시절. 주변에는 자신들의 돌아가신 할머니들로부터 이들 주택을 물려 받아 새롭게 단장해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오래된 공장 건물들도 많다. 그런 건물들의 경우 천장 높이가 5미터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2010년 정도부터 Loftas (Loft) 붐이 불어서 활동적인 젊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탈바꿈 시켜 창작 공간이나 공연 시설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건설업자들도 그 유행에 편승해서 재단장시켜 비싼 값에 팔기 시작했지만 그런 경우 이미 로프트 특유의 탁 트인 공간의 자유분방한 느낌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천장이 높은 만큼 어느정도 평수가 확보가 되어야 좀 그 느낌이 살텐데 작은 면적으로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자르니 천장만 높아진 좁은 방의 형태가 되고 이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곳의 분위기 자체가 마냥 밝고 건전하진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 안팔린다. 그럼에도 이 구역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접근성이 좋아서 직원들을 많이 수용해야 하는 기업들이나 저렴한 비지니스 호텔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시내버스를 타면 10분만에 국제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신시가지이다. 삭막하고 때로는 음습하고 퀴퀴하기까지한 이 구역의 건물들 사이를 염탐하는 것은 겹겹의 지붕을 누른채 여기 저기 솟아 있는 성당 첨탑을 이정표로 삼아 구시가지를 배회하는 것 만큼의 재미가 있다. 구시가지가 구불구불한 길로 우리를 휘감아 은은한 파스텔톤 메타포를 유도해내는 곳이라면 이곳은 코를 킁킁거리면 놋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건물을 타고 치솟는 환기구를 허파로 장착한 무채색의 언어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구시가지가 결벽에 가까운 현악 4중주를 연주하려는 곳이라면 이곳은 오래된 타악기 연주가 악보 없이 진행되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결국 나를 좀 더 동하고 두리번거리게 하는 것들은 이런 풍경들이다. 물론 구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언덕 위의 집을 마다하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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