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오늘은 하지. 1년 중 가장 짧은 밤, 가장 늦은 저녁의 석양과 이별하기 위해 지금 어딘가에선 높게 쌓아 올린 커다란 장작이 불타오르고 곱게 만든 화관들 가운데에 놓인 양초에서 피어난 불빛이 고요한 강 위를 수놓고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부터 긴 겨울로 접어드는 이른 여정이 시작된다. 7월은 여전하고 8월이 멀쩡히 남아 있으나 여름은 항상 6월까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6월의 오늘을 기점으로 여름은 이제 막 봄을 떠나왔다기보다는 좀 더 겨울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맞다.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어떤 소설들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와 까뮈의 이방인이다. 6월만큼 짧은 이 소설들을 왠지 가장 긴 여름밤을 지새우며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6이라는 숫자. 1년의 반, 마치 6개월에 달하는 긴긴 겨울을 지나서 비로소 도달한 여름의 문턱, 그리고 그 문턱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여름이 절정을 이루는 하지가 속해있는 6월. 빌니우스도 도스토예프스키의 뻬쩨르부르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뻬쩨르부르그의 6월과 그의 백야는 더더욱 부서질듯 아슬아슬 찬란할 것이다. 백야의 주인공은 모두가 등지고 떠나는 도시 뻬쩨르부르그를 가여워한다. 남겨진 도시, 혹은 그 자체로 어딘가로 이사 가버린듯한 텅 빈 도시를 위해 끝없는 우수에 젖는다. 빌니우스가 그 어떤 폭염으로 신음한다고 해도 까뮈의 소설에 땀처럼 배어서 찐득하게 묻어나는 북아프리카 특유의 기후에 비할바 아니겠지만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몇 날이긴 해도 빌니우스의 어떤 6월도 분명 타들어 간다. 뜨거운 태양 아래를 너무 느긋하게 걷는다면 햇빛은 독이 되겠지만 또 너무 빨리 걷는다면 그런대로 땀을 흘린 나머지 차가운 성당 안에 들어서면 감기에 걸리게 된다는 어떤 구절. 구시가의 말끔히 정돈된 성당들과 비교해서 끝없이 원시적이고 허름하며 뜨거운 여름 앞에 가장 적나라하게 서있는 성당이 한 곳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이방인의 그 구절이 떠오른다.
이 성당은 주중의 일정상 거의 매일 지나치게 된다. 성당의 입구에는 몇 해가 지나도 여전히 시멘트 자루들이 놓여있다. 정리되지 않은 성당 바닥에는 마치 회교 사원을 떠올리게 하는 아라비아 카펫이 규칙적으로 펼쳐져 있다. 방치된 성당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남아있는 성당의 궁륭 사이로 칠이 다 벗겨진 희미한 벽화들이 보인다. 겨울의 이 성당은 기분나쁠 정도로 추웠다. 카펫 근처 어딘가에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담긴 벽난로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여름의 이곳은 청량하다 못해 으스스하다. 감기가 들 정도로 한 낮의 땀을 식혀버리는 성당에 대한 묘사가 뇌리를 스치지 않을 수 없다. 이 성당의 정원에는 볕을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이 그 어느 성당보다 많지만 결국은 공사장처럼 헐벗은 그 성당 내부를 향하게 된다. 그리고 6월의 오늘은 선선하다. 거의 항상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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