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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94_골목길

지름길을 통해 빨리 가고 싶은 날이 있듯이 일부러 좀 돌아가더라도 꼭 좋아하는 골목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다. 때로는 굳이 담 한가운데 작게 난 저 문으로 들어가 성당 벽돌이라도 감상하고 다른 문을 통해 나오는 수고를 더하기도 한다. 그 순간은 마치 잠시 다른 세상 속에 속해 있다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에만 체득할 수 있는 어떤 감동이 분명 있다. 이 성당이 주는 고요와 안식은 나에게는 고유하다. 타운홀에서 멀지 않은 구시가의 중심에 있지만 경쾌한 성당들의 대열에서 이탈해서 가정집이 즐비한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는 탓에 조금은 폐쇄적인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뭔가 새침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기도 하다. 이곳은 리투아니아가 카톨릭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공들여 모셔온 독일인이나 외국 상인들을 위해 지은 성당이라서 빌니우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기록되어있다. 성당 뜰에는 빌니우스 시의 상징이기도 한 아기 예수를 업은 성 크리스토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리투아니아어 출판물을 금지하는 등의 언어 말살 정책이 펼쳐지던 시기에 유일하게 리투아니아어로 미사를 진행하던 성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동상은 당시의 성당 신부의 기념 동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저기 저 사람이 서있는 곳의 조그만 문으로 들어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푸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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