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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97_어떤 성당


빌니우스 구시가에 성당이 정말 많다. 빌니우스 대학 근처의 종탑에 올라 재미삼아 그 성당들을 세어보는 중이라면 성당들이 워낙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탓에 이미 센 성당을 또 세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성당이라면 좀 예외이다. 이는 그들 성당의 무리에서 외톨이처럼 뚝 떨어져서 고고하게 언덕 위를 지키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의 카톨릭 국가 중 가장 꼴찌로 카톨릭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 와중에 정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파가 혼재했고 종교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소련의 지배를 반세기 이상 거치고도 연합국이었던 폴란드의 영향 때문인지 구교도들이 절대우위를 차지하는 독실한 카톨릭 국가로 남았다. 리투아니아의 유일한 왕으로 기록된 민다우가스가 13세기 초반에 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 로마 교황으로 부터 개별적으로 세례를 받은 이후 나라 전체가 카톨릭화 된 것은 고작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1387년의 일이다. 얼추 조선이 건국된 시기와 비슷하다. 세례를 받으면 옷을 준다는 소리를 듣고 대량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그냥 강 속에 몸을 담궜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어찌어찌해서 카톨릭 국가가 되었지만 그러고도 한참동안 리투아니아의 지방 곳곳에는 개종을 하지 않고 이교도로 남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목조 성당들이 생겨났다. 성당이 생겨나면서 학교가 생기고 기록 문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13세기 이전의 리투아니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문서는 거의 없다고 보면된다. 당시 유럽 곳곳에는 이미 으리으리한 성당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의 성당들은 동시대에 유행하는 건축 양식으로 지어지지 못하고 줄곧 지각을 했고 또 전쟁이며 화재로 무너져서 계속 재건을 하다보니 하나의 성당에서도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이 혼재한다. 그럼에도 지금 빌니우스의 성당들을 보면 가장 두드러진 양식은 바로크이다. 잘 정돈된 성당들의 외관은 거의 닮아있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바로크 성당들을 지금의 형태로 최종적으로 다듬은 사람은 18세기 건축가 요나스 크리스투파스 글라우비차스 라는 사람이다. 무슨 일감 몰아주기의 흔적처럼 정말 그가 거의 대부분의 성당 건축에 참여했다. 건축가 자신은 신교도였는데 일에 있어서는 딱히 종파를 가리지 않았다. 

 성자의 이름이 들어간 성당들의 이름은 비교적 쉽게 외워지지만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잘 외워지지 않는 성당들이 있다. 이 건축가가 마무리한 성당 중 난 이 성당이 비교적 고풍스럽고 사실적이라고 느끼는데 항상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언덕 위의 성당이라고 부르곤 했다. '거기 언덕 위에 그 성당 있잖아'라고 말하면 또 대부분은 아무도 이 성당 이름을 모른다. 위치에 걸맞게 이 성당의 이름은 승천 성당이다. 구석구석 자리 잡은 성당의 모퉁이를 돌며 구시가를 걷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빌니우스의 전체를 사랑하지만 사실 복원된 성당들이나 명소들은 지나치게 인위적인 느낌을 줄때가 많다. 그래도 이 성당은 나름 가장 자연스럽다. 그래서일까. 굳건히 닫혀있다. 성당은 구시가 중심에서는 좀 떨어져있고 우주피스에서 근처 언덕을 두리번거린다면 뾰족하게 솟은 두개의 탑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래전에 이 성당 옆에 길다랗게 자리잡은 옛 수도원에 위치한 병원에 지금은 돌아가신 이웃집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적이 있다. 병원은 아주 어두컴컴했고 쥐죽은듯 조용했다. 그때 시장에서 훈제 햄과 절인 오이를 사들고 200밀리 짜리 소용량 보드카를 들고 할머니를 방문했었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는 몹시 기뻐하셨다. 그것은 음주였다기 보다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니. 아주 작은 잔에 한 잔씩 나눠 마시고는 누가 볼까 서둘러 보드카 병을 내 가방에 다시 찔러 넣으셨다. 할머니는 유리컵 속에 달걀 거품기처럼 생긴 작은 기계를 넣어 물을 데워 차를 끓여주셨다. 그 보드카 병은 가져와서 비우고 위스키와 바닐라 빈을 넣어 익스트랙트를 만들었다. 그러니 주방 서랍 속의 그 병을 보면 할머니부터 그 성당까지 그리고 이 성당을 보면 할머니부터 그 보드카 병까지 생각이 나는 것이다.

지금은 그 성당 근처의 언덕 기슭에는 고급 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몇해 전 부터 우크라이나인지 벨라루스인지 그쪽 사업가의 건축 부지 매입때부터 정말 말이 많았던 프로젝트이다. 다리 하나를 잘못 지어서 유네스코 문화 유산 지위를 박탈당한 드레스덴 같은 꼴이 날까봐 말이다. 이 정도까지 시공이 진척되었다면 결과적으로 별 문제 없다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누군가는 그럴듯한 파노라마를 가지겠다. 결과적으로 건물이 몇 층까지 올라갈지 모르지만 두개의 탑은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성당에도 언젠가는 다시 빛이 빼곡히 차오를 날이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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