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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About a boy (2002)

 

 

Being flynn (https://ashland11.com/877)의 감독이 생소해서 검색해보니 웬걸 아메리칸 파이와 어바웃 어 보이를 만든 감독이었다. 비잉 플랜에서 그려진 부자관계 때문이었겠지만 오래된 두 영화 속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남자와 소년의 모습이 자연스레 중첩된다. 오래전 이 영화는 뭔가 휴 그랜트로 점철된 휴 그랜트 영화의 클라이맥스라도 해도 좋았지만 돌이켜보면 기억에 깊숙하게 남은 것은 똑 부러졌던 어린 니콜라스 홀트의 연기와 엄마 토니 콜레트와 킬링 미 소프틀리를 열창하는 장면이다. 다시 향수에 젖고 싶어 진 듯 결국 또 귀한 시간을 들여 봤던 영화를 또 찾아본다. 새로운 영화와 드라마들이 말 그대로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데 가끔 오래된 영화를 보고 있자면 조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2000년대 영화도 20년 전 영화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젠 이런 말랑한 영화도 고전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비잉 플린도 그렇고 두 영화 모두 남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편부 슬하에서 자란다는 설정이 같다. 비잉 플린의 엄마가 아들을 남기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면 어바웃 어 보이의 마커스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자살 실패 장면을 목격한다. 불안정한 엄마의 울타리가 되어주려 노력하는 아들이지만 참 어른스럽고 사려 깊은 아들이라고 안심하고 대견해하기에도 그는 그저 아이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의식적으로 최소화하는 능력을 갖기에 그는 아직 너무 어리다. 아버지가 만든 캐럴송에서 나오는 로열티로 세련되고 부유한 삶을 사는 싱글남 휴 그랜트는 뭘 하고 사냐는 질문에서 항상 말문이 막힌다. 남아도는 돈과 시간이지만 그는 이렇다 할 생산적인 취미도 없고 관계를 맺는데에서 조차 귀찮음을 피하려 아이 가진 아빠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남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소년은 어른 남자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남자 친구가 아닌 아빠였는지도 모른다. 어른 남자의 삶이 이기적이고 무의미하게 비춰졌다면 그것은 그의 삶이 재정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정체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물리적으로는 계속 살아지는 삶을 산다. 반면 소년은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 늘 고민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뭔가를 계속 의도한다는 것이겠지. 소년의 끊임없는 의도는 정체된 남자의 삶의 작은 울림이 된다. 비잉 플린의 아빠와 아들이 그랬듯 이 영화도 휴 그랜트와 니콜라스 홀트, 두 남자 각각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얼핏 각자의 관점에서 평행선을 그리는 소통으로 시작하지만 도움을 주고 받고자 하는 인간적이고도 선량한 의지로 그들은 접점을 찾아간다. 

 

 

결핍이 매번 불행의 절대적 조건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함께 한다는 것이 늘상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이 있고 반대의 경우는 또 그런대로 자유와 독립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니 타인으로 인해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일종의 무덤으로 치부해버리는 오류에 빠진다.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자식을 교육시키는 부모도 있고 어찌 키워야 할지 몰라 남의 방식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부모도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길러지더라도 인간이라면 모두 조금의 상처를 지니고 성장한다. 완벽해 보이는 삶에도 늘 구멍은 있고 구멍 투성이의 삶에는 또 그런대로 그 구멍을 메우고자 하는 의지와 방법 같은 것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결국 그런 여러 다른 삶의 방식을 보완하는 것은 나와 너무나 다른 타인을 밀어내지 않는 포용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결점을 맹목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누구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다는 열린 자세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휴 그랜트가 연기한 어른이 마냥 철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를 비난하지 않고 그에게 스스로 마음을 열어 보이는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무수한 영화 속에 숱한 노래장면들이 있지만 마커스가 엄마의 반주에 맞춰 킬링 미 소프틀리를 부르는 장면은 개인적으로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집들이 씬에서 최진실이 부르는 당신이 모르실 거야와 함께 최고이다. 물론 잘 부르지 않는다. 제발 눈만은 감지 마 하는 휴 그랜트의 대사로 조금 코믹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 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 일시적인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소망이 그득그득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 저 작은 소년이 엄마를 위한 노래라며 전교생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 뭉클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잘 자란 니콜라스 홀트는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미는데 휴 그랜트 어디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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