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투아니아어

(79)
리투아니아어 24_Kasa 매표소 파네베지는 작은 도시이다. 처음 이곳에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때 내 눈 앞에 미끄러져 지나가던것은 과연 언젠가 작동이 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낡고 오래된 풍차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풍차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이곳에선 비단 그 풍차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소들이 단 하나의 원칙적인 기능외로는 변주될 여지가 없어보이는 세트장 같은 인상을 주었다. 드라마 하나가 끝이나야 그제서야 건물 위치도 조금 바뀌고 간판도 바뀌고 사람들의 의상도 바뀔것같은, 이 도시를 뒤덮은 태생적인 수동성 같은것이 있었다. 사람이 적은 작은 도시를 여행하면 으례 영화 트루먼쇼의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정해진 동선위를 수학 기호같은 표정으로 걸어다니던 세트장 속 엑스트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막이..
리투아니아어 23_Stiklas 유리 작년인가 파네베지에 왔을때에도 Popierius (종이) 가 적힌 쓰레기통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이런 쓰레기통들은 빌니우스 에도 널렸는데 왜 꼭 파네베지에서만 찍게되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알것같다. 사람도 차도 소음도 절대적으로 적은 적막한 파네베지의 휑한 거리에 움직임없이 서있는 이 쓰레기통들 만큼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곳임을 느끼게 하는것이 없기때문이다. 좀 더 안락해보이는 삶을 위해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 학생이 부족해서 문을 닫는 학교들이 있어도 여전히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리고 치워가고 쓰레기통을 뒤진다. 허리를 넘겨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로 버려진 땅처럼 보였던 곳들엔 정원을 가진 좋은 단독 주택들이 지어진다. 외국에 살며 돈을 번 사람들이 돌아와서 살 집을 짓거나 그들이 돌아오고 있거나 어느..
리투아니아어 22_Prieiti po vieną 한명씩 차례대로 병원이든 어디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접수 창구 같은 곳이나 은행의 자동입출금기가 놓여진 장소 등등 약간의 익명성이 요구되는곳에서 으례 발견할 수 있는 말. '한명씩 차례대로' . Prieiti 는 어떤 장소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리투아니아어도 러시아어와 비슷하게 동사원형에 다양한 접두사가 붙어서 동작의 경로나 완료 방식, 정도, 횟수등의 뉘앙스가 변한다. '과식하다'. '입가심으로 조금만 먹다'. '너무 먹어서 질린다'. 등의 먹는다 동사의 뉘앙스가 동사 앞에 붙는 접두사로 다 표현이 된다. 한편으로는 참 편리한 구조인데 언어가 생소할때에는 그 뻔해보이는 차이 조차 감지해내기가 힘들때가 있다. 그런 시기들을 지나고 실수조차 하기 힘들정도로 그런 동사들이 상황에 맞게 입에 착착 붙어서 ..
리투아니아어 21_힘, 강인함 Stiprybė 벌써 160년째 벌을 서고 있는 아틀라스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것이 항상 얼마나 미안하던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자리에. 오늘 구시가지를 걷는 내내 6개월동안 변한것과 변하지 않은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된 건물 하나는 엎어졌고 집 앞 마트에는 우체국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60년후에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Stiprybė 스티프리베. 이 단어가 이렇게 잔혹하게 느껴진적이 없었다. '힘내, 아틀라스' 애정어린 격려의 메세지라기 보다는. '강인해져. 넌 버텨내야되. 넌 항상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래야지' 라는 강요의 메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랬다. Stiprybės 는 복수형이다. 힘, 강인함, 강점 등등의 뜻이 있다. ė 로 끝나는 여성형명사에는 아름다운 단어들..
리투아니아어 19_풍선 Balionai 빌니우스 구시가지의 타운홀 계단은 앉아서 사람 구경하기 참 좋은 곳이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 관해서, 세그웨이 같은것을 타고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위태롭게 지나가는 그룹 여행자들과 잠시 여유가 생겨 정차를 해놓고 담배를 피우는 택시 기사들에 관해서 이야기 하곤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확보된 넉넉한 공간을 텅 빈 도화지 삼아 그들이 어디에서 이곳까지 흘러들어 어떤 기분으로 현재를 만끽하고 어디로 가고있는지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며 잡담하곤 하는것이다. 성수기에도 이곳은 생각만큼 붐비지 않는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마음에 드는 점이라면 이곳에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개학을 하루 앞둔 8월 31일, 잠시 계단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사이 하얀차 한대가..
리투아니아어 17_수선점 Taisykla 얼마전에 신발을 고치려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어쿠쿠 하셨다. 이 신발을 고쳐 신느니 그냥 하나 사라는 소리셨다. 고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이런 말도 안되는 신발도 한 번 잘 고쳐보겠어' 라는 도전정신이 생길법도 한데 보자마자 그런 소릴 하셨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거다. 신발창 군데 군데 구멍난곳이 있어서 그것만 갈면 새것처럼 신을 수 있겠다 생각했었는데 아저씨 말을 빌리자면 '이 신발에는 아무것도 없어' 였다. 고쳐서 신을 만한 아무런 건덕지도 없다는 소리였다. 35유로를 내면 한번 고쳐보겠다고 하셨는데 50유로도 안주고 산 신발을 그 돈을 내고 고치려고 하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물건이라는것에 정이 들면 돈을 떠나서 어떤 원칙이란것이 생기게 되는 법, 손해보는 장사라고해서 쓰레기통에..
리투아니아어 16_영화 Kinas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Kino 라는 영화잡지가 있었다. 그 영화 잡지를 사 본적은 없다. 뭔가 가르치려드는 느낌, 너무 현학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가 내게는 강했던 탓이다. 영화를 막 좋아하기 시작하던 그 시절에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있던 잡지들이 몇종류 있었다. 우선 '스크린'이나 '로드쇼'처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크리스챤 슐레이터 같은 당시의 헐리우드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를 부록으로 주곤하던 인기 스타의 신변 잡기나 헐리우드 흥행 영화들에 관한 기사 위주의 잡지가 있었다. 그리고 잡지 커버가 마음에 들면 종종 사곤했던것이 매주 발간되던 씨네 21이었고 창간때부터 한동안 매월 내가 구입했던것은 공평동에 본사가 있던 프리미어라는 월간 잡지였다. 씨네21과 프리미어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는 씨네필..
리투아니아어 15_물 Vanduo 리투아니아어의 명사는 -as,-is,-us 와 같이 자음으로 끝나는 남성명사들과 -a , -e 와 같은 모음으로 끝나는 여성 명사로 주로 나뉘지만 이들말고도 -uo 로 끝나는 명사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들 명사의 개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물을 뜻하는 Vanduo 도 그런 명사들중 하나로 '반두아'로 발음함. 반두오 아님. Akmuo (돌) 아크무아, Dubuo (사발,대야) 두부아 Ruduo(가을) 루두아. 이들 명사의 격변화도 일반적인 격변화는 약간 다르다. 그래서 식당에서 물이 마시고 싶다면 2격을 써서 galima vandens? (갈리마 반덴스?) 라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물어보면 예쁜 유리병에 담긴 비싼 생수를 가져올 확률이 높으니 물 한잔에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면 탭워터를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