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과 종탑이 있는 곳은 구시가에서도 저지대에 속해서 그쪽 방향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어떤 거리가 됐든 경사진 길을 통해야 한다. 오른쪽은 리투아니아 국방부의 옆모습이고 정면으로는 새까맣게 타들어간 눈을 가진 버려진 수도원과 그 지붕 너머로는 성당 종탑이 보인다. 왠지 모를 음습함과 삼엄함의 앙상블인 이 짧은 오르막길을 좋아한다. 이 수도원 건물은 빌니우스에 손님이 오면 데려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장소이다. 복원과 재정비가 필요한 대상으로 늘 분류되지만 시 재산이 아니라 특정 종파의 소유물인 경우가 많아서 투자자가 없으면 기약 없이 버려지는 구시가의 많은 장소들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그런 이유로 그나마 계속 회자되고 부담 없이 눈길을 줄 수 있음에 안도하기도 한다. 세상엔 좋아진다고 해서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들이 많더라. 구시가의 애물단지 같은 장소들은 옛 귀족들의 호화 저택 컨셉으로 재건축되어서 위화감을 주거나 상업용 건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갑자기 대변신을 하고 나타난 친구 모습에 눈 둘 곳을 모르듯 어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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