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여러 전쟁들 중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길면 길어질수록 누군가에게는 이로운 전쟁, 그러니 구조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과 알려져 봤자 별로 좋을 것도 없고 관심도 못 받을 테니 알려지더라도 묻히고 근본적으로 알려지지 조차 않는 그런 전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쟁들이 대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매한가지로 참혹한 것이다. 그러니 새삼 전쟁이 나면 알려질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살고 있다는 게 최소한 다행이라는 우습고도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지금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얼마 전 일상도 아마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겠지. 삶의 터전을 등지고 필사적으로 이웃동네를 향하는 사람들 중엔 사실 러시아계 사람들도 많다는 것. 침공당한 도시들이 러시아계 주민 비율이 높다는 것. 이것을 단지 누구와 누구의 싸움으로 단순화하고 무턱대고 증오하고 애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용납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당해 보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조장되는 폭력과 증오도 그에 못지않게 혐오스럽다. 거대한 암석은 최소한 굉음을 내고 깨지지만 그것이 파열되어 자갈이 되고 가루가 되어가는 지난한 과정은 결코 소리를 내지 않으며 잘 관찰되지도 않는다. 비극이 내 자신의 코 앞에 닥치기 전까지 고통은 늘 타인의 몫이다. 이 동네 사람들의 정체성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 그 시작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어디서부터 무엇을 부정하고 인정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마치 이미 해체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가족을 부정하고 증오하면서도 가슴 한편은 서늘하고 뻑뻑해지는 정서. 흡사 더 많은 자유와 부가 보장된 안락하고 예쁜 새 우산 속으로 들어온 듯하지만 폭풍우에 그 우산을 놓쳐버릴까 늘 전전긍긍하는 정서. 어제도 같이 블린을 나눠 먹은 옆집에 불이 나고 있으니 물동이라도 지고 가서 꺼줘야 하는데 그저 내 집 현관 앞에 놓인 오래된 소화기만을 매만지고 있을뿐이라는 것. 복잡하고 당혹스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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