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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짧은 감상 두 영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경삼림이나 접속, 베를린 천사의 시와 같은 팔구십년대 영화들이야말로 멜랑콜리를 알려줬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배우 자신의 지극히도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깊이 공감했다. 이것이 이 짧고도 다소 오그라들수도 있는 자전적인 기록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다. 인간이라면 그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건들여지는 자신만의 멜랑콜리가 있어야 한다고 넌시지 말하는 것 같다. 영원한 휴가의 앨리,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알렉스를 움직였던 그런 보이지 않는 힘 말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배우의 모습이 극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그대로 확장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런 영화를 이 배우가 만들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도 해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영화를 분류하는 기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거다. 흑백과 컬러. 겨울과 여름. 산과 바다, 도시와 시골, 한국과 외국 뭐 이런 큼직한 관점에서의 분류도 있고 여러 미시적이고 궁상맞은 관점에서의 분류도 있을 수 있다. 비슷하게 음울해 보이는 회색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전부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서로 구분 짓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것. 당신 얼굴 앞에서를 보고서 전에 없던 새로운 분류 기준이 생겼다면 '눈물과 웃음' 이다. 이전까지 그의 영화를 보다가 울었던 기억은 없는데 눈물이 나와서 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눈물에서 웃음으로 넘어 가는 그 흐름은 역시 시크하다 못해 전위적이라는 것. 21세기의 밝은 인사동 거리에서의 음주가 빚어내는 교감에서 20세기 홍콩의 어두운 골목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만들어냈던 감정선을 떠올렸다. 관능적인데 먹먹하다. 홍상수 영화의 최고의 엔딩이 아닐까. 데뷔작부터 해를 거르지 않는 그의 수많은 영화들을 천천히 회상해보면 약간 그런 느낌이다. 옷장에 이런 저런 다른 색상의 옷이 많은데 결국 하나의 스타일로 귀결되니 이거에 저걸 입든 저거에 이걸 걸쳐입든 매한가지인데 그러다가 그마저도 귀찮아서 옷장의 옷들이 결국 비슷비슷한 색감으로 통일되다가 결국 마지막에 이젠 이도 저도 필요없다며 딱 한 벌의 옷이 남는 느낌. 그 한 벌의 옷 느낌을 주었던 영화가 미니멀의 극치를 보여줬던 '그 후' 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뭔가 옷장 자체가 바뀐 것 같다. 배우 이혜영과는 몇 편의 영화를 더 찍게 될지 상옥의 기타 연주가 계속 생각나면서 벌써부터 기대도 되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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