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가디슈를 보고 배우 김윤석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는 모가디슈 같은 대작을 만드는 일은 감독으로서 너무 힘든 일일 것이라며 자신은 그냥 지금처럼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모가디슈는 상습적으로 대작을 만드는 감독들도 만들기 쉬운 영화는 아닐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래서 나는 그의 작고 잔잔한 두 번째 영화를 몹시 기다리는 중. 미성년.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한편으론 정말 상관있다. 소설에도 무책임한 어른들 여럿 나오니깐) 작년에 본 영화인데 생각난 김에 뜬금없이 짧게 기록해 놓기로 한다. 배우가 만든 영화여서일까. 배우 기용에 있어서도 재치가 넘쳤고 모든 배우들이 동료 배우의 감독 데뷔작을 위해 으싸으싸 하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빛났고 그래서 재밌었다. 암수살인의 커피 아줌마가 또 커피 아줌마로 나오는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고 이정은의 동네 바보 연기는 정말 최고였으며 자기 딸 이름도 잘 모르는 젊은 아빠 이희준과 더 이상 담탱이스러울 수 없는 김희원의 존재감. 무엇보다도 무수한 영화에서 때로는 살벌할 만큼 누군가를 추격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김윤석이 이 영화에서는 일은 일대로 저질러 놓고 정말 궁색하게 심지어 여자에게 삥도 뜯겨가며 도망을 다닌다. 아빠를 애타게 부르는 딸로부터 도망가는 장면이란... 몸을 스릴 있게 감추고 숨고 아닌척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몰라 자신임을 낱낱이 인정한 채로 그냥 냅다 도망가는 것이다. 무기력한 그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지만 그마저도 가엾고 처량해 보였다는 것이 개인적으론 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를 보고 드는 일차적인 감상이라면 '몸만 자란 어른인 우리들이 애들 보기 창피한 줄 모르고 얼마나 미성숙한 실수나 저지르고 살고 있는가' 이지만 계속 보다 보면 살짝 서글퍼지며 그들에게조차 동정심이 생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란 것은 언제일까. 이 영화에선 철없는 어른들이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엄마가 그런다. 지금 너네한테 중요한 시기니깐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우리들'이었나. 주인공이 초등학교 5학년인가 그랬는데 여름방학 앞두고 선생님이 그런다. 너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름방학이니 잘 보내라고. '벌새'였나. 중2인지 중3인지 여중생들한테 담임이 또 그런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너네 인생을 좌우한다고. 정황상 이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고 시치미 떼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정신 바짝 차리라는 협박에 가까운 말이다. 세상이 결코 말랑하지 않다는 그간의 숱한 경고는 과연 우리를 강인하고 성숙하게 만드는데 얼마 큼의 도움이 되었을까.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지금 왜 더 이상 아무도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걸까.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도 미성숙하고 사랑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인데. 이것은 감독 김윤석이 만든 중년의 성장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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