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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아이 엠 히어 (2019)

 

 

 

 

아이 엠 히어(2019)

 

 

 

영화를 보기 전 느낌을 생각하면 포스터가 좀 달랐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영화를 보고 포스터를 보니 딱 이 정도의 영화였단 생각도 든다. 사실 배두나 배우를 보기 위해 본 영화인데 이 영화에 관한 최대 스포일러라면 배두나는 10분도 채 나오지 않는다는 것... 15분 나왔을 수도 있다.. 마치 '1987'을 생각하며 유해진과 김태리의 케미를 보려고 승리호를 봤는데 유해진의 목소리밖에 안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끝날 때까지 업동이의 경쾌한 목소리를 들었으니 그 영화는 그나마 양호한 건가. 하지만 경치 좋은 프랑스 어딘가에서 삼촌으로부터 물려받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사는 스테판이 하루 종일 수를 생각하고 그녀에게 보낼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벚꽃 같이 보면 좋을 텐데'라는 수의 흘러가는 말에 총 맞은 것처럼 정말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선 하염없이 그녀의 메시지를 기다리며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르는 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어쩌면 스테판 보다 영화 속에서 수의 존재감은 훨씬 커 보인다. 심지어 스테판은 수의 모습을 자주 봤고 그녀와의 소통이 익숙하겠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가 반한 수, 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수의 모습에 대해서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으니 그 신비감은 더욱 증폭된다.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옷을 입고 공항을 런웨이 삼아 걸어가는 배두나의 도도하고 오묘한 표정이 담긴 단 하나의 씬이 스테판과 관객이 질척거리며 끌어안고 가는 수에 대한 판타지를 통쾌하게 표현해줄 뿐이다.

 

마치 반드시 한국 배우를 출연시키고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촬영하는 조건으로 한국 관광 공사에서 제작비를 지원해 준 것 같은 느낌의 영화이다. 외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을 아주 간혹 방문할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으로서 스테판이 만끽하는 한국의 특정 장소들과 정서들에 많이 공감했다. 잔뜩 긴장한 채 여권 이름을 입력하며 티켓을 예약하고 설렘을 가득 안고 비행기에 앉아 착륙과 동시에 온몸으로 한국 특유의 습기를 느끼고 게이트를 빠져나와서는 짧고 힘들었던 해외여행을 끝마치고 목베개를 낀 채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한국인들과 함께 줄을 서서 그들의 피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바쁘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사람들의 표정을 잔뜩 읽어 낸 후에 공항 내의 많은 한국 음식점들을 지날 때의 느낌 같은 것. 그런 미묘한 느낌들을 굉장히 잘 잡아내서 신기했다. 


'외로워서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으며 상대의 본모습을 보는 대신 상대를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려고 애쓴다'는 어떤 프랑스 남자가 쓴 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상대의 마음속에서 하염없이 멋진 모습으로 거대해지는 스스로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커진 자존감으로 더 사랑에 빠지고 싶어서 또는 더 사랑받고 싶어서 용감무쌍해지는 것. 수의 말대로 그는 눈치가 없었던 것일까. 아련함과 야릇함, 우정과 애정의 경계에서 적정선을 유지하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지속될 수 있었던 그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눈치 없는 스테판의 한국행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감지한 스테판 본인이 자신을 괴롭히는 그 형체 없는 거품을 스스로 깨뜨려버리고 싶어서 수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스테판은 한국에서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상의 공간에 쏟아내고 공항에 마중 나오지 않은 수를 계속 태그 하면서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먼 거리에서 그가 경험한 수와의 일체감을 계속 연장시키려 노력한다. 결국 그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온 세상이 아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만 정작 그는 어디에도 없는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낯선 자신을 발견하고선 공포감을 느낀다. 식당을 우중충하게 하는 '로맨스랑은 정반대'인 동물 박제들을 겉어내고 파릇파릇한 그림을 걸며 심기일전하다 결국 낯선 나라까지 날아오는 그의 용기는 그가 기대했을법한 수와의 로맨틱한 만남이 불발되면서 결국 무모한 행동인 것처럼 비치지만 시장에서 낯선 식재료를 발견할 때라던가 공항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허물없이 식당 직원들과 어울리며 식당 셰프로서의 호기심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결국 그를 그답게 하는 것들로 온전히 반짝이는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 여행은 충분히 가치 있었던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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