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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

India 12

 
9월 들어 의외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 26도 남짓한 온도지만 9월의 최고 온도 기록을 깼다고도 한다. 9월 1일이 되면 꽤나 드라마틱하게 날씨가 추워진다. 물론 그것도 결국은 정해진 수순이니 그 바뀐 날씨는 놀라울 것이 없는데 추위를 납득할 수 있을 때의 더위는 딱히 반가운 존재는 아니다. 의외의 더위에 맞서는 가장 즐거운 방법은 그저 의외의 추위를 회상하는 것. 내 생애 가장 의외로 추웠던 시기라면 다르질링에서 트레킹을 했을때.  이집트 사막에서도 단체 사막 투어를 온 사람들이 넘겨준 담요가 아니었으면 아마 얼어 죽었을 거다. 트레킹 지역의 숙소들은 딱 보기엔 아늑했으나 모두가 잠든 밤엔 사정없이 매서워졌다. 겨울이어도 난방이 딱히 되지 않는데다 부족한 조명. 밤이 되면 바깥의 바람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 절대적 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불이 축축해서이다. 짐 들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추움을 애써 부정하며 다르질링 숙소에 침낭따위를 다 놔두고 떠난 긴 여행 속의 짧은 여행. 짐이 없어서 걷는 내내 편하긴 했지만 자는 순간은 사실 좀 고통스러웠다. 딱히 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였지만 저녁에는 늘 출처가 불분명한 고기가 섞인 따끈한 국물을 대접받았다. 네팔과 티베트, 부탄과 방글라데시 사이에 오묘하게 자리 잡은 시킴 지역은 인도라는 거대한 퍼즐에서 가장 튀는 퍼즐 조각이다. 이 사진은 아마 저녁을 기다리면서 혹은 다 먹고 배가 두둑해진 상태에서 숙소 주인의 아이들이랑 놀다 찍었던 사진 같다. 트레킹 특성상 낮에는 늘 이동을 해야 하고 아침 해가 뜨면 움직여야 해서 사실상 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늘 어두운 저녁이다.

내가 일하는 식당에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유학생인데 이들은 보통 한명이 일을 하기 시작하며 계속 다른 친구들을 데려오는 구조라 일정 기간 유학생들의 국적이 동일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이들은 재학 시절 내내 식당에 머무른다.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해야 하니깐 일 안 할 수 있고 방학이면 한 두 달 휴가비를 받고 고향에 다녀올 수 있고 고양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갈 수 있고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도 모르는척하며 다른 누군가를 찾아주니 빈자리는 늘 메꿔진다. 그리고 이들은 졸업을 하고 다른 유럽 나라로 취업을 해서 떠난다. 그러니 사실 정이 들만도 하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는 사실상 없다. 그저 개인적이고 그러니 딱히 부대끼지도 않는다. 

지금 현재는  빌니우스의 공대에 유학 온 2000년 이후에 출생한 인도인 공대생들이 절대 다수인데 국적이 같아도 펀자브 출신들이 주를 이루는 북인도 학생들과 남인도 학생들은 쓰는 언어가 달라 자기들끼리도 영어로 대화한다. 그리고 이들은 참 다르다. 어쩌면 이들 인도인 사이의 차이가 리투아니아인과 인도인의 차이보다 더 큰 것도 같다. 이들을 보면 난 20년 전 인도 여행에서 마주친 꼬마들이 늘 생각난다. 내가 여행할 시기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이들이지만 인도 여행중에 만났던 아이들이 컸으면 얼추 지금 직원들의 모습쯤 되겠지 싶다. 간혹 오며 가며 스치며 인도 여행 이야기를 해준다. 이들이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도시도 있고 내가 얘기할 때 딴생각을 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간혹 자신들이 마시려고 끓인 짜이를 나에게 가져온다. 두 명의 인도 소년들이 고향에 간 날. 그리고 한 명이 되돌아 온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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