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또 다른 트릴로지인 '핀란드 3부작' 혹은 '루저 3부작'의 시작을 여는 작품이지만 사실 프롤레타리아 3부작의 정신적인 후속작에 가깝다. 비록 마티 펠론파가 출연하진 않지만 그동안 카우리스마키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이전 작품들이 장면장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 3부작과 루저 3부작을 연결한다.
<떠도는 구름>속의 주인공들은 더 이상 진척 없는 애정문제로 고민하지도 않고 어딘가로 떠나버릴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듯 보이지만 여전히 사회변화에 가장 취약하고 전환기의 예측불가능한 파고를 가장 깊숙이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휴대용 카세트와 여행가방만 들고 어딘가로 떠나려 했던 그들은 이젠 텔레비젼과 가구, 책장 같은 물건들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조차 없다. 우선 가장 큰 것을 사고 천천히 채워가라고 종용하는 사회에서 아직은 완전히 그들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물건은 늘 포기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가지려 했던 욕망과 책임감은 끈덕지게 남아서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면 찝찝하다. 과연 그들이 뭘 그렇게 또 많이 원했다고 말이다. 책을 사기 전에 책장을 할부로 사고 책을 살 수 있는 날을 꿈꾸다니 그저 선량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곳엔 의미심장한 따뜻함이 있다. 일로나(카티 오우티넨)와 라우리(카리 뵈애내넨)는 부부이고 긴 하루 끝에 유행하는 가구와 각종 실내식물로 꾸며낸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이들이 만끽하는 안정감은 빚상환의 압박속에서도 분명 따사롭다. 같은 직장에서 나누는 동료애도 나름 끈끈하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무표정을 뚫고 전해지는 익명의 행복감은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서 그 기쁨이 오래 이어지지 않을거라는 복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일로나는 '두브로브닉'이라는 레스토랑의 매니저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헬싱키 거리에서 이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아드리아해안의 햇살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여행을 가려면 이비자 같은 따뜻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선 결국 탈린을 향하던 일로나와 니칸더, 타티야나와 레이노의 얼굴도 그대로 떠오른다.

두브로브닉은 꽤 긴 세월 운영되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와 제복을 입고 문 앞을 지키는 남자 사이를 가득 메운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칼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모두가 직업을 잃는다. 얼떨결에 이들은 경기 침체와 구조 조정과 대량 실업의 산증인이 된다.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웨이트리스를 거쳐 매니저에 안착한 일로나의 경력은 오히려 구직에 방해가 되고 눈을 낮춰 웨이트리스가 되려고 하자 나이가 문제다. 일로나는 결국 계좌에 있는 모든 돈을 인출해서 직업소개소에 가져다주고 설거지와 서빙, 요리를 혼자 해야 하는 매점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된다. 근엄한 도어맨이 일하는 레스토랑은 구시대의 유물이기에 도어맨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 멜라르틴(사카리 쿠오스마넨) 역시 직업을 찾지 못한다. 근무 중에 술주정을 해도 오랜 동료들이 보듬어주었던 셰프는 부두가의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다. 일로나의 남편 라우리는 자가용을 사기 시작한 모던한 핀란드 국민들로 인해 트램 회사에서 방출된다. 뻬쩨르부르그까지 가는 장거리 버스 운전사가 되는 희망에 부풀지만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좌절한다. 결국 일로나는 할부 가구도 텔레비젼도 전부 덜어낸 아파트의 방바닥에 앉아 레스토랑을 열기 위한 계산기를 두드린다. 언젠가 트럭 5대를 사서 쓰레기 수거 회사를 열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던 니칸더의 동료처럼. 일로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일로나는 우여곡절끝에 옛 동료들과 함께 레스토랑을 연다. 레스토랑 이름은 'Työ'. 일,직장,노동 무엇이라도 좋다. 아무도 카우리스마키 영화 속의 이런 비장한 제목을 듣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나 <에비타>를 떠올리며 필요 이상으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리라. 우리는 제목의 이면의 씁쓸함과는 상관없이 레스토랑 이름을 보며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다.
<천국의 그림자> https://ashland.tistory.com/m/559085 에서 일로나와 니칸더를 위아래로 훑으며 예약이 꽉 찼다며 거짓말하고 돌려보내던 레스토랑 직원이나 허름한 카페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사이좋게 네 조각으로 나눠 먹던 타티야나외 3인을 기억하며 이 레스토랑은 까다로운 드레스 코드도 없고 거부당하는 사람도 없고 간혹 록음악도 과감하게 들리는 곳이 될 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식당을 채울법한 수많은 니칸더와 일로나와 발터도 떠올린다. 그리고 쓰레기 수거 차량이 거짓말처럼 레스토랑 앞에 도착한다. 유니폼을 입은 두 남자가 식당을 향해 걸어간다. 마티 펠론파는 없지만 우리는 그 차량에서 내려 식당문을 여는 남자가 살아있는 니칸더라는 것을 안다.
마티 펠론파는 이 영화의 주연을 맡기로 예정되었지만 너무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는다. 영화 속에서 일로나가 실직 후에 집에 돌아와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진 속의 어린아이는 마티 펠론파의 어린 시절 사진이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많은 남자배우들이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는것은 어렵지 않지만 유독 마티 펠론파가 기억에 남고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실재하는 인물 같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배우들에게 마치 제비뽑기를 하게 해서 배역을 나누듯이 같은 배우에게 다양한 위치의 상반되는 역할을 준다. 좋아하는 감독들의 가장 분명한 특질이고 이런 스타일이 정말 좋다. 사실 감독이 작가로 거듭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데 이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타티야나, 당신의 스카프를 조심하세요>에서 청소와 서빙과 계산을 혼자 해내며 타티야나 일행을 맞이하던 배우 엘리나 살로는 레스토랑 직원을 전부 해고해야 하는 난감한 사장 역을 맡고 결국 일로나가 새 식당을 여는 것을 돕는다. <천국의 그림자>에서 지긋지긋한 쓰레기 수거 업체에서 벗어나 자기 사업을 해보려다 심장마비에 걸리던 배우 에스코 니카리는 직업이 절실한 일로나를 나이가 많다며 문전박대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과거가 없는 남자>에서는 은행을 털어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나눠주고 파산하고 자살하는 사장이 되기도 한다.
그 이후, 그 이전의 영화에서도 이런 패턴은 반복된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 인간의 고정된 본질이란 없으며 이들은 동일한 정체성에 묶이지 않고 계속 상하좌우로 미세하게 이동하고 관객은 누구를 무조건 욕하고 동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카우리스마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웬만해선 극한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표정과 침묵 속에서 그들을 끊임없이 어떤 역할극으로 몰고 가서 멱살을 잡고 배반 하고 착취하게끔 하는 거대한 구조를 보게 한다. 세상은 개선되기도 하고 때론 훌륭해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일로나와 니칸더, 이르마, 이리스들을 통제하며 끌고 가야 하는 세상의 본질은 결국 쉼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체념과 유며, 연대의 정서는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들의 플롯에 분노의 뼈대를 추가로 집어넣고 자기 연민의 살점을 붙이면 사회고발 영화도 되고 궁극의 휴먼 드라마도 될 수 있겠지만 그의 영화는 다 마른 빨래처럼 한결같은 톤을 유지한다. 2000년대 이후로 가면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도 조금 다채로워진다. 피부색이 다른 이민자들이 등장하고 도시는 좀 더 어두워지고 한줄기 빛의 의미는 더 도드라진다. 그리고 이 영화는 밀레니엄의 낙관을 기대하기에는 여전히 냉소적인 80,90년대 카우리스마키의 인물과 정서의 정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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