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thuanian Language

리투아니아어 143_Tvora 담장, 울타리

 
영화 햄닛(Hamnet)의 한 장면. 둘째 아들 햄닛을 잃고 수심에 잠긴 아녜스가 열심히 달걀을 깐다. 남은 아이들을 먹여야하고 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셰익스피어는 런던으로 떠나려고 한다. 좀 더 머물러 달라고 붙잡기도 남편의 여행을 축복하기도 애매하다. 고뇌하는 셰익스피어를 처음 런던으로 보낸 것은 분명 아녜스 본인의 선택이었지만 충분한 애도가 끝나기도 전에 자연스레 짐을 챙기는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야속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의 삶은 계속된다. 예술혼을 잠재울 수 없는 글쟁이 남편은 글을 써야 하고 어미는 생활을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여러 모순들이 교차한다. 그리고 분명 착잡하고 슬픈 장면인데. 나는 분명 아녜스의 절망에 이입하며 안타까운 감동을 느껴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클로이 자오는 전체적인 영화의 서정적인 분위기는 탁월하게 잘 잡는 감독 같다. 숭고하고 절대적인 자연 속에서 현실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도 나름 어찌어찌 전달이 되다가 가끔 와장창 분위기를 깨는 너무 뻔한 디테일을 집어넣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달걀 까는 장면이 그랬고 <노매드랜드>에서는 커피잔 장면에서 좀 그랬었다. 분명 왜 그 장면을 집어넣었는지 의도는 알겠는데 뭔가 인위적이다. <노매드 랜드>에서처럼 모든 풍파를 겪고도 강하게 살아남는 여자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 하는 클로이 자오 특유의 강박도 영화 내내 느껴져서 버거웠다. 내겐 오히려 햄릿을 완성하고 무대에 오르던 아들을 잃은 아버지 폴 메스칼의 연기가 좀 더 기억에 남았다.
 
이 영화는 왜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을까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난 그냥 아녜스의 달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6세기 영국 시골에서 달걀조림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녀는 그 많은 달걀을 다 까서 뭘 하려고 했을까 불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은 마무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나 장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전환되고 삶은 달걀에 관련된 리투아니아 아넥도트 하나로 생각이 옮겨간다. 
 
B-달걀 먹을래? Nori kiaušinio?
A-달걀 까져있어? Kiaušinis nuluptas?
B-아니. Ne
A-담장 너머로 던져버려. Mesk per tvorą
 
이 달걀 이야기는 자기 스스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은근슬쩍 맡기려는 사람을 비꼬고 싶을 때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까지도 않은 달걀을 먹으라니 이런 모욕이 없고 그 달걀은 절대 내 것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뭔가를 해달라는 아이들한테 부모들이 자주 쓰는 아넥도트이기도 하다. Tvora는 굉장히 흔하게 쓰는 단어이다. 놀이터와 잔디를 가두는 작은 울타리에도 당연히 이 단어를 쓴다. 
 
그리고 '톰 소여의 모험'에서였나 담장과 게으름에 관한 또 다른 일화도 떠올린다. 담장을 새로 칠해야 하는 톰 소여는 너무 귀찮다. 그래서 생각해낸 꼼수란 것이 페인트칠이 너무 재밌는 척하며 지나가는 마을 아이들의 페인트칠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밑지는 장사라는 듯 담장을 칠하게 해주는 대신 내게 뭘 줄 거냐고 물으며 아이들에게서 이것저것 받아내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톰 소여 대신 담장을 칠한다. 신선한 페인트 냄새가 나는 Tvora 근처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 껍질이 안 벗겨진 달걀 따위 Tvora 너머로 내던지며 게으름의 미학을 역설하는 톰 소여들을 떠올려 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