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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다리가 있다면 너를 걷어찰거야 (2025)

 

 
 
<다리가 있다면 너를 걷어찰거야 If I Had Legs I'd Kick You>. 사프디 형제와 짝을 이뤄왔던 로널드 브론스테인의 동반자인 메리 브론스테인의 영화이고 그래서 기대를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재밌게 봤다. 이 브론스테인 부부는 각각 <마티 슈프림>과 이 영화로 주연 배우를 아카데미 남녀주연상 후보에 올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속의 로즈 번의 연기가 <햄넷>에서의 제시 버클리의 연기보다 훨씬 좋았다. 시대극보다는 현대극을, 친자연적이고 목가적인 배경보다는 도시를, 서정적인 상징보다는 직설적인 유머에 본능적으로 더 끌리기 때문이겠지만 가녀린 로즈 번을 데리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속도감이 <언컷젬스>와 <굿타임>의 스타일을 지향한 흔적이 역력해서 사프디 형제 스타일속의 브론스테인의 큰 지분에 대한 생각을 더 굳히게 만들었다.
 
사프디 형제 특유의 폭주하는 남성성이 매번 강력한 암세포가 되어 주변의 건강한 세포들마저 전부 끌어들이며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이 영화는 그에 못지않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초근접 촬영으로 피곤에 절어 푹 꺼진 눈두덩이 아래에서 흔들리는 로즈번의 눈빛과 온갖 미세근육들이 움직이는 그녀의 얼굴을 화면에 담는다. 그리고 저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연민과 불안을 증폭시키며 오로지 로즈 번만을 거대한 구멍 속으로 몰고 간다.

이 영화는 완전히 붕괴 직전의 엄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이트비치> https://ashland.tistory.com/559031와 <툴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엄마 본인이 심리치료사라는 설정은 한 여성에게 잔인할 정도로 과잉 할당된 고독과 절망은 그 어떤 이론과 공감으로도 쉽게 구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심리 치료사로 일하는 린다(로즈 번)의 일상을 정신없이 나열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도록 밀어붙인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듯 보이는 어린 딸은 잠시 정규 교육을 미룬 채 전문 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적정 체중에 이를 때까지 배에 뚫린 튜브를 통해 영양을 공급해줘야 한다. 그러니 때맞춰 딸의 피딩백을 바꿔줘야 하는 것은 오로지 엄마인 린다의 몫이며 밤새 규칙적으로 울리는 강박적인 기계음속에서 마치 젖먹이 아이를 돌볼 때만큼의 강도로 린다는 딸과 한 몸처럼 생활한다. 잠은 당연히 모자라고 하루하루는 자비 없이 돌아간다.
 
린다는 차를 제대로 주차하는 대신 늘 대충 세워두며 아이를 급하게 기관에 넣어주는 요행을 부리느라 매일 주차요원과 충돌하고 허겁지겁 달려갔을 직장에는 그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결정적으로 침실의 천장이 뚫려서 온 집안이 침수되는 말도 안되는 일까지 벌어지며 수리가 끝날 때까지 근처 모텔에서 아이와 살게 되는데. 린다가 그나마 자신의 유일한 위로라고 생각하며 적극성을 발휘하는 때라면 아마 옆방의 동료 심리 치료사(코난 오브라이언)의 카우치에 늘어져서 그 자신이 환자가 되어 상담을 받는 역설적인 순간이며 손에 아이 숨소리가 들리는 모니터를 든 채 모텔 밖으로 나와 대마초와 와인, 달디단 땅콩버터컵으로 도파민을 끌어올리는 순간이다. 그녀의 환자 중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캐롤라인(다니엘 맥도널드)은 상담 중에 갓난아이를 놔둔 채 실종되고 일 때문에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없다는 그녀의 남편은 부인이 심리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린다의 남편은 전화기 너머로 이미 어쩔 수 없으니 수영장이 있는 모텔을 즐기라는 모범답안을 늘어놓을 뿐이고 천장을 수리해 줄 일꾼은 엄마가 죽었다며 일을 할 수 없다고 하고 린다는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냐는 매정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심함을 링거처럼 매달고 폭주한다.
 
린다의 삶은 완전히 구멍 투성이다. 천장에 뚫린 구멍과 아이의 배위에 뚫린 구멍을 메꿔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린다를 점점 더 깊숙이 그 수렁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마룻바닥 위에서 올려다보는 사라진 천장은 살아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광활한 우주처럼 린다를 옥죄는 동시에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들고 뚫린 천장을 통해 내려다보는 발바닥 아래의 세계는 잘못 헛디디면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바닥을 찍을 듯 린다의 현재를 공허하게 비춘다. 이미 오래전에 린다의 자궁을 벗어나 이제는 조금 그녀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딸은  그들을 연결해 줬던 탯줄처럼 장치를 통해 여전히 린다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린다는 혼자가 아니고 그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존재한다. 린다의 횡설수설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동료 심리 치료사가 있고 전화기 건너편에는 이성적인 남편이 있고 딸의 치료를 책임지는 여의사가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버텨야 하는 린다의 죄책감을 북돋는 다소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방관자에 불과하다. 린다의 어떤 환자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러 린다를 찾아오고 린다는 직업 정신에 입각하여 그들이 선택한 시간을 값지다 생각할만한 단어를 고른다. 그나마 따스하고 유쾌하게 린다를 대하는 모텔 청년(에이셉 라키)에겐 린다 자신이 오히려 마음을 열지 않는다. 린다는 결국 혼자라는 생각에서 고집스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고 그것은 일정 부분 공감이 간다.
 
기관의 여의사는 이 모든 것이 엄마들의 잘못은 아니라며 비슷비슷한 이유로 지친 엄마들을 위한 마치 AA 모임 같은 세션을 마련하고 맨 뒷자리에 불량학생처럼 앉은 린다는 눈물을 쏟는 엄마와 의사를 향해 '당연히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죠'라며 저주를 퍼붓고 나온다. 그리고 결국 딸에게서 튜브를 걷어낸다.  
 

 



 재밌는 것은 린다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동시에 유일한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와 남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아이가 어쩌다 어떤 병을 앓게 되었는지 남편은 왜 지금 집에 와서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린다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숨기면서 그 자신이 되도록 빨리 정신을 차리고 정상궤도로 돌아오길 바라는 관찰자들의 안일한 마음을 일부러 사전에 차단하고 과연 저런 상황에서 그 자신이 아닌 주변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가 <마티 슈프림>과 <언컨젬스>와 스타일에서는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앞의 남자들이 만든 영화 속의 남자들은 정말 그 자신을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이상한 광기에 사로잡혀있지만 이 영화 속에서 린다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가 건강해져서 그에게서 해방되고 마치 그녀를 도와줄 것처럼 구는 겉만 번지르르한 공감과 돌봄의 질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다. 인간은 아주 영리해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지리멸렬한 생활의 디테일들을 다소 덜 끔찍한 폴더로 옮길 수 있고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을 준다는 그럴듯한 말을 필요할 때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런 시스템이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무너진 개인을 과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남편의 복귀와 더불어 천장에 뚫린 구멍은 미장까지 끝낸 채 말끔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공상과학 영화 속의 불가능한 환상 같았던 거대한 구멍이 결국 남자가 돌아옴과 동시에 사라진 여자의 망상이었을거라 생각하며 통쾌해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장치에 불과하다. 우린 이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튜브를 떼어내며 아이를 격려하는 것은 결국 린다 자신이고 천장의 구멍이 메꿔진 것은 결국 살아남겠다는 린다 본인의 자존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Daddy Longlegs> https://ashland.tistory.com/559056 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응답 같아서 보는 동안 더 즐거웠다. 아이들 삶의 아주 짧은 시간에 관여하며 자신의 보헤미안 기질을 충분히 발휘하던 키다리 아빠 로널드 브론스테인의 양육과는 반대로 엄마는 뻥 차버릴 다리조차 없다는 제목의 설정이 절묘할 뿐이다. 이것은 브론스테인 부부의 침대공론이 만들어낸 '미쳐가는 엄마들' 영화의 결정판이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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