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차갑고 쓸쓸한 헬싱키의 발트해를 벗어나야겠다. 문 닫은 두브로브닉 식당의 아드리아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밝고 따사로운 지중해가 펼쳐지는 튀니지로. 무뚝뚝한 핀란드어와는 다른 성미를 지닌 정신없는 프랑스어와 드문드문 끼어드는 아랍어가 있는 곳으로. 미지근한 필터 커피와 통호밀크래커 대신 매콤한 하리사와 뜨끈한 오크라 스튜가 있는 곳으로.
그곳에는 파리든 런던이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여학생 올파가 있고 파리에서의 오랜 생활을 정리하고 뚱딴지같이 고향 튀니지로 돌아오는 셀마(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있다. 프랑스 국적의 친척 셀마를 롤모델이자 떠나야 하는 이유로 여겼던 올파는 그래서 혼란스럽다. 다시 돌아온 셀마가 반갑기보다는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어서 돌아온 거라 생각한다.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을 금의환향이라는 단어로 축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곳은 돌아올 이유가 없는 곳,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곳이란 습관적인 패배감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 영화는 다시 돌아온 사람에게서 실패를 읽으려는 사람과 돌아오려고 했던 자신의 결심이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배경은 아랍의 봄을 촉발 시킨 최초의 혁명이 일어난 과도기 튀니지. 혁명 이후의 국가 상황이 다른 나라들 보단 나았지만 모든 것이 기대만큼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다. 정신분석을 전공하고 친척집의 옥탑방에서 심리치료실을 열려고 하는 셀마에게 미용실 사장 바야는 말한다. 미용실에선 돈을 내고 수다를 떤 대가로 예쁜 머리를 얻지만 이 동네에서 그냥 돈 내고 자기 얘기를 하러 올 사람이 있겠냐고. 그러면서 바야는 셀마에게 미용실 손님들에게 심리치료실을 홍보할 기회를 준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여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죠. 하지만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없애주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랍니다'
그리고 미용실 사장 바야가 최초의 고객이 된다.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점점 그녀의 치료실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꽤나 간절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허가 없이 일하는 셀마를 걸고넘어지는 동네 경찰이 등장하고 셀마는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허가증을 발급받기 위해 찾아간 공무원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간절하게 서류를 내미는 셀마에게 서랍에서 꺼낸 야한 속옷들을 펼쳐놓으며 영업을 한다. 허가증 발급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셀마는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만 노쇠한 할아버지가 추천서를 써줄 거라며 의기양양하게 내미는 사진은 혁명으로 축출된 독재자 대통령의 초상이다.

영화 <아랍블루스>는 거대한 정치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도 않고 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셀마가 돌아온 튀니지는 혼란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자유롭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공공장소에서 사회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전보다는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거리는 여전히 혼잡하고 행정은 비효율적이며 법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실을 유지하려고 셀마가 내미는 10유로라는 우스운 뇌물을 뿌리치는 젊은 경찰도 동시에 보여준다.
셀마의 치료실은 셀마가 자신을 꿈을 실현하려는 단순한 상담 공간이라기보다는 혁명 이후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작은 장소를 대변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이 사회 변화를 열망 하는 혁명과 같은 구조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혁명이 근본적인 문제를 급속히 해결해주지 않고 그 이후의 정체와 갈등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결국 공동의 과제로 남겨지듯 단순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는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독재 체제 아래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불평이나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는 언제든 처벌로 이어진다. 그러니 혁명은 사람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은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자유는 갑자기 완성된 상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삶 속에서 작은 변화를 경험한다. 올파는 지금까지 자신을 옭아맸던 것이 오로지 사회적 제약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긍정적으로 달라진 세상에서 결국 용기를 내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염색한 머리가 드러나게 히잡을 벗는다. 제빵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며 헐렁한 청바지를 뚫고 화려한 티팬티가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다. 이런 변화들은 아주 작고 개인적이고 그 개인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변화를 불러온다.
영화는 또한 혁명 이후 사회의 모순적인 감정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독재 체제가 억압적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시절이 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시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자유는 때로 혼란과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유보다 안정에 끌리기도 한다. 이 장면은 혁명 이후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셀마는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귀향하는 지식인이다. 그녀는 가장 절실할때 튀니지의 전통 음식을 만들어서 환자들과 소통하며 전통을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집스럽게 과거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한계에 부딪치지만 조언이 필요할 때는 나이 많은 어른들을 찾아간다.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녀의 존재는 혁명 이후 사회에서 디아스포라 지식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은 의도적으로 소박하고 낙관적이다. 반짝이는 지중해 해변의 따사로움을 비춰주며 끝나지만 또 조금은 쓸쓸하다. 셀마는 관료적인 절차와 여러 장애물을 거쳐 결국 필요한 서류를 얻고 치료 센터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거창한 정치적 승리보다 더 현실적인 희망을 보여준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느리고 복잡한 과정이다. 진정한 시작은 갑작스러운 혈당 상승처럼 강렬한 희망을 만들어낸 혁명 이후부터 차근차근 시작된다. 지금의 튀니지는 여전히 그런 과정 속에 있을까.
<어바웃 앨리> https://ashland.tistory.com/559041 에서 뭔가 오묘하게 튀고 자유분방했던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이 영화에서 청바지에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자유로운 펌으로 튀니지 거리를 활보한다. <패터슨> 때도 그랬지만 뚜렷한 이미지가 있다. 어떤 감독이 어떤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사례들이 조금 실감이 났다. 물론 그런 과정으로 캐스팅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 속 셀마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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