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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더 나일 힐튼 인시던트 The Niel Hilton Incident (2017)

 




<아랍 블루스> https://ashland.tistory.com/559091 에서 셀마는 엄청난 골초이다. 프랑스 국적의 인텔리 아랍 여성의 모습을 부각하려는 의도적인 설정이겠지만 자파르 파나히 영화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살벌하게 주의받는 이란 여성이 생각나면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라는 튀니지가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신 담배를 피워대던 남성이 떠올라서 짧게 적는다.
 
<더 나일 힐튼 인시던트>는 스웨덴 태생 레바논 감독 타릭 살레의 카이로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포스터 속의 배우는 '저는 누아르 말고는 모릅니다'라고 말하는듯한 눈빛과 가공할만한 화살코에 담배를 꼬나문 파레스파레스 Fares Fares. 뒤로는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성공을 꿈꾸는 튀니지 이민자 여가수의 얼굴과 이집트 국기가 휘날리는 매캐한 혁명의 현장이 보인다. 언젠가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고독한 형사 누레딘의 행보를 보며 <히트 Heat>의 워커홀릭 알파치노와 <우작 Uzak>에서 역시 혼자 집을 지키며 밤마다 포르노를 보던 까칠한 사진작가가 생각나서 뭔가 명작이 될 것인가 기대했지만 사실 초반에 너무 질질 끌어서 영화 자체는 다소 지루했지만 온 동네에 무바라크 사진이 걸려있던 카이로를 회상할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 영화 자체는 모로코에서 촬영됐다.
 
영화는 튀니지 혁명에서 시작되어 아랍의 봄으로 번져나가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를 종식시킨 이집트 혁명 일주일 전부터 혁명 당일까지의 모습을 다룬다. 나일 힐튼 호텔에서 여가수가 살해당하고 그 배후로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세 기업가이자 대통령 아들 측근과 그의 비호세력까지 줄줄이 연결된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 누레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누레딘 형사 역시 각종 사건을 해결하러 다니면서 서민들의 돈을 갈취하고 인맥으로 경찰에서 승진하는 등 혁명이 불거지는 이집트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에 누레딘의 정의감이나 인간성에 몰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 사람이 담배를 많이 피워야 했다. 부인은 죽고 없고 카이로의 지저분한 아파트로 돌아와서 연신 담배를 피워댈 때 그 어쩔 수 없이 시스템에 굴복해야 하는 인간적인 고뇌와 그 자신의 고독이 그나마 좀 드러나기 때문에.
 
영화에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부유층의 파티에 초대되어 노래부르고 고급 아파트를 선물 받으면서 권력에 기생해야 하는 튀니지 출신 여가수들의 삶이나 호텔청소를 하며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데 살인 사건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위태해지는 수단 이민자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목격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피의자를 협박하고 결국 위험에 처하는 상황들은 결국 조금이라도 부도덕해져야 생존에 유리해지는 사회생태계를 보여준다.  

오래전 카이로를 여행할 때 실감한 여러 모순이 있다. 온 사방에 친미성향의 무바라크의 사진이 걸려있었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미국에 맞서는 북한이 멋지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던 이집트 사람들이 있었고 미나렛에서 아잔 소리가 흘러나오면 각자의 작은 카펫을 여기저기 펴고 마치 세상이 멈춘 듯이 한 방향을 향해 이마를 대고 땅에 엎드리던 전형적인 중동풍경뒤로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통창 너머의 햄버거를 바라보던 키 큰 소년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엄청난 관광대국이었으니 코 묻은 달러를 내고 이집트 파운드 다발을 건네받고 시타델의 화려한 수피댄스 공연과 피라미드 레이저쇼를 구경 다니던 내 여행은 그저 해맑고 경쾌했을뿐이고.

그로부터 9년 후에 이집트 혁명이 일어나고 독재자가 축출되고 했을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사실 굉장히 비현실적이었는데. 사실상 내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때의 이집트는 독재자가 교묘하게 조성해 놓은 겉보기에는 안정적이고 관광하기 좋은 나라이지만 실상은 비밀경찰이나 정보기관의 통제로 억압이 일상화된 사회였고 아직은 노골적인 폭력보다는 감시·검열·자기검열 형태로 작동하던 사회적 억압을 여행자인 내가 체감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언제나 독재자는 정권이 무너지면 혼란이 온다라는 논리로 장기 집권하고 배를 주리며 햄버거를 바라보던 아이 세대는 자라나서 혁명의 주축이 되고 이미 축출된 독재자의 초상화를 간직한 <아랍 블루스> 속 셀마의 할아버지가 거봐라 세상이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할 것처럼 그 동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영화 막바지에 이집트 혁명 당일의 불안한 모습들과 시스템의 한계로 자꾸 어그러지는 누레딘의 범인 잡기가 꽤 긴박하게 그려진다. 혁명의 시작과 더불어 경찰서가 털리고 총을 쥐고 있던 누레딘도 경찰이라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고 공권력에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시민들이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혁명 이후 군부세력 권력이 워낙에 강력했던 이집트는 궁극적으로 민주화로 이어지는 데는 실패한다. 요즘 이래저래 세상사가 복잡하고 지인의 이집트 여행 계획도 무산되어 아쉬운 마음에 옛 여행과 영화 한 편을 회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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