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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황혼의 빛 Lights in the Dusk (2006)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핀란드 3부작 마지막 작품. 비슷한 시기에 여행했던 헬싱키의 모습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영화이다. 보안업체의 직원인 코이스티넨(얀 히티아이넨)은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깔끔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복수의 칼을 가는 킬러처럼 공장 건물 지하에서 고독하게 각을 잡고 산다. 저녁에는 학원에도 간다. 상관들은 코이스티넨이 뭔가 못마땅하다. 3년 일했으니 그냥 잘라버리자는 잔인한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코이스티넨은 어딜 가든 대놓고 따돌림당한다. 그의 무표정은 뭔가 도전적이고 의심스럽다. 주변을 무시하고 으스대고 싶은 어떤 이들에게 그의 눈빛은 당연히 기분 나쁘다.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어떤 주인공들처럼 코이스티넨도 지금 일하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기 회사를 세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직업 교육 학원에서 지폐 몇 장을 쥐어주고 발급받은 수료증을 들고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그 역시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무산자에 불과하다. 세상은 그에게 꿈꿀 자유를 주지만 그의 당당함은 늘 짓밟히고 불운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코이스티넨이 경비원이란 사실을 알게 된 지역 마피아는 여자친구를 코이스티넨에게 접근시키고 둘은 가까워진다. 미르야(마리아 야르벤헬미)는 코이스티넨에서 보석상점의 열쇠를 빼앗는 데 성공하고 상점은 털리고 코이스티넨은 누명을 쓰고 잡혀가지만 증거부족으로 우선은 풀려난다. 여자는 코이스티넨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매번 범행에 가담하는 것을 망설이는 듯 보이지만 우리 기대와는 상관없이 결국 돈을 받고 자기 할 일을 한다. 하지만 마피아의 여자로서 그녀가 호화생활을 하거나 부하들에게 떵떵거리거나 하는 장면을 기대해선 안된다. 간혹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지만 도박을 하는 마피아들 옆에서 빗자루질을 할 뿐이다. 코이스티넨을 결국 감방에 넣고 싶은 마피아는 여자를 시켜 보석의 일부를 그의 집에 가져다 놓게 하고 심지어 그 장면을 코이스티넨은 목격하지만 여자에 대한 배신감만 느낀 채 그냥 감옥으로 잡혀간다. 형을 마친 그는 보호 감찰에 놓이고 국가가 지정해 준 공공도미토리에서의 생활한다. 그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밥을 먹으러 온 마피아와 마주치고 그가 코이스티넨이 절도범이라고 매니저에게 말하면서 해고당한다. 선량한 사람을 이용해서 원하는 보석을 전부 손에 넣었으면 그걸로 만족하면 될 것 같은데 복수의 위험성을 차단하려는 마피아는 코이스티넨을 철저하게 무너뜨린다. 코이스티넨은 용기를 발휘하여 마피아 두목을 해치려고 다가가지만 결국 흠씬 얻어맞고 바다 근처에 버려진다. 유기견을 돌보는 동네 흑인 아이는 푸드트럭 여자 아일라를 찾아가 코이스티넨의 위치를 알리고 코이스티넨에게 외면당하던 아일라는 변함없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핀란드 3부작은 사실 프롤레타리아 3부작의 변주이다. 불필요한 연기가 허용되지 않는 이 무표정한 인물들은 거의 기록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 같고 주인공들을 기다리는 끊임없는 불운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카르마를 생각하며 최소한 다음 영화에서 좀 더 착해지거나 덜 고통받는 역할을 맡길 바랄 뿐이다. 여자가 코이스티넨을 잠재우고 열쇠를 빼앗기 위해 음료에 수면제를 탈 때 우리는 마음껏 그녀에게 분노할 수도 없다. 그녀를 팜므파탈이라고 인식도 하기 전에 우리 머리는 쥐약을 타던 <성냥공장 소녀> https://ashland.tistory.com/559089 의 이리스를 본능적으로 떠올린다. 코이스티넨이 열정적인 눈빛으로 학원에서 필기를 할 때도 우리는 영어 학원에 다니던 니칸더를 떠올릴 뿐이며 코이스티넨의 도미토리 건너편 남자가 가진 따스한 해변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아리엘> https://ashland.tistory.com/55908을 타고 멕시코를 향하던 타이스토를 발견하고 순식간에 그의 여정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마트에 간 코이스티넨은 마치 마트 최장근속직원 표창장이라도 받았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일하는 베테랑 계산원, 카티 오우티넨을 만난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얼핏 다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의 비슷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불완전하고도 열린 결말로 우리를 이끈다. 밝은 미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기에는 뭔가 닭살스럽고 그렇다고 더한 실패와 시련이 닥쳐올 거라 그들의 앞날을 비관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우리 기대와는 다른 결정을 해서 곤경에 빠지고 우리가 그 불운들에 익숙해질 즈음 꽤 자기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과감하게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하며 참혹한 결과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 감각은 어딘가 내던져버린 그들이 중간중간 내뱉는 얼도 당토 않는 유머들은 신경안정제처럼 우리를 나른하게 만든다. 카우리스마키는 마치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비웃는다'라는 말처럼 그의 영화를 보며 주인공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우리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보며 웃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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