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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오프사이드 Offside (2006)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이란으로 귀국했다. 수감과 가택연금이라는 징벌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반정부 색채의 영화 제작을 이유로 망명을 권고받고 실제 복역을 한 후 감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가장 최근작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감옥에서 좋은 소재를 찾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당당히 고국으로 돌아간 그를 보면 어쩌면 이란은 대외적으로 가장 핫한 이란 감독의 창작열을 기이한 방법으로 북돋으며 나름대로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국가 홍보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든다. 여자 축구 대회에 참가한 이란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국가 부르기를 거부해서 구설에 오르고 망명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 일부는 결국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물론 2026년 요즘 이야기이고.
 
<오프사이드>는 2006년에 만들어진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이다. 그의 영화 <미러> https://ashland.tistory.com/559063에서 침착하게 집을 찾아가던 미나의 뒤를 따르며 간간이 오디오를 채우던 이란과 한국의 축구 경기가 기억날 것이다. 혼잡한 테헤란 거리에서 중계방송이 나오는 라디오 근처로 오밀조밀 모여들어 국뽕을 발산하던 이란 남자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오프사이드>의 출현은 급작스럽지 않다. <오프사이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전 이란과 바레인의 경기날,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보려는 여학생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따라간다. 여자는 남자들과 나란히 앉아서 축구를 볼 수 없다는 규정을 어기고 이들은 축구를 보기 위해 암표를 사고 어설픈 남장을 하고 맹인 행세까지 하며 경기장에 들어간다. 하지만 몸수색을 당하다 붙잡혀서 경기장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군복까지 입고 상석에 앉았으나 경기를 보다 잡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은 비슷한 또래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엉성한 바리케이드 안에 갇혀 경기에 열광하는 남성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호송차량을 기다린다. 이 영화는 마치 어른 남자들의 도움을 야무지게 뿌리치며 혼자서 집을 찾아가던 <미러> 속의 미나가 자라나서 가부장적 이란 사회를 상징하는 스타디움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록 목적을 달성하진 못하지만 호송 차량 속 군인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경기 결과만이 중요한 여학생들을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승리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을 때 이들은 다 같이 거리로 나아간다. 
 
영화 초반 이들이 몸수색을 당하는 경기장 입구까지 들어가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가 된다. 이들이 걸리지 않고 무사히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염려도 염려지만 여성임이 밝혀졌을 때 그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영화 중간중간 남성과 단둘이 남는 장면들도 이상한 불안감을 유발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붙잡힌 여학생들에게선 마치 몰래 담배를 피우다 3일 정학처리를 받고 복도 교무실 앞에서 키득거리는 수준의 타격감 이상은 느껴지지 않고 이란 선수들이 상대의 골문을 향해 힘차게 드리블하는 순간 함께 환호하는 이란인들에게서 서로를 헤칠 수 있는 적대적인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사과> https://ashland.tistory.com/559096 를 보다 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아이들을 집에 가둬두려면 대문만 잠그고 마당에서는 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집을 나서는 아빠는 철제 중문을 하나 더 달아서 아이들을 마당으로부터도 격리한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다 마당으로 공이 들어오면 담을 넘어 들어와 딸들을 욕보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오프사이드>에서 붙잡힌 여성 본인들은 오히려 당당하다. 그들은 축구를 그냥 너무 좋아할 뿐이고 축구를 보지 못하게 된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상관이 올 때까지 그들을 감시해야 하는 군인들은 여성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한다. 화장실이 급한 여자는 겨우 동의를 얻어서 감시를 받으며 화장실에 간다. 군인은 축구 선수 포스터를 가면처럼 만들어서 여자에게 씌운다. 군인은 여자 혼자서 화장실을 쓰게 하려고 화장실에 있던 남자들을 전부 내보내고 들어오려는 남자들을 막는다. 그 사이에 시비가 벌어지고 여자는 혼잡을 피해 잠시 달아나지만 곤경에 빠질 군인을 염려해서 금방 돌아온다.  군인은 여자가 화장실 사방 군데에 써진 남성들의 음담패설을 읽는 것조차 겁낸다. 축구장에 여성의 출입을 막는 것은 신체 일부를 드러낸 축구 선수들과 거친 욕설을 담은 남성들의 언어를 내뱉는 관중으로부터 이슬람 여성을 지킨다는 명분이다. 결국 남성이 가진 불완전성을 여성이라는 타자에 투영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법에 불과하다.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 <오프사이드>와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사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통제와 그 정당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이 두 작품을 함께 놓고 보면, 이란 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적 질서가 어떻게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논리로 작동하는지가 눈에 보인다. 그 핵심에는 우리의 딸과 여형제와 엄마를 외부 남성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통제와 억압이 자리 잡고 있다. 딸들을 집에 가둔 아버지의 논리는 언뜻 보면 딸들을 위한 보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삶을 철저히 제한할뿐이다. 위험의 가능성은 그대로 외부에 남아 있으면서, 그 부담은 오롯이 여성의 이동과 자유를 억압하는 형태로 전가된다. 결국 딸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보호라는 명분 아래 고립된 존재로 남게 된다.

 

<오프사이드>에서는 이런 구조가 보다 확장된 형태로 반복된다. 여기서 통제의 주체는 더 이상 아버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제도이다. 여성의 축구장 출입을 금지하는 이유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명분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일본여자는 이란과 일본 경기에 그럼 왜 들어가냐는 집요한 여학생의 추궁에 군인은 이렇다 할 반박을 못한다. 이러한 통제들은 결국 이슬람 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고 그렇게 생겨난 미세한 균열들은 얼마 큼의 시간이 소요되는가 와는 상관없이 결국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남장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여성들은 결코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여성은 위험에 노출된 존재이기 때문에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실질적으로는 여성의 공적 공간 진입을 제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여성에 대한 보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보호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인지 자파르 파나히는 직접 비판하는 대신, 축구장 밖을 지키는 젊은 사람들이 티격태격하는 귀엽고 작은 장면들을 통해 꽤나 유쾌하고 따뜻하게 접근한다. 국가 대항 경기를 보며 함께 환호하는 순간 남성과 여성의 경계는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차별 정책에 관여해야 하는 이란 국민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이렇게 붙잡힌 여성들이 그날 어떤 처벌을 받고 그들과 함께 차량 밖으로 나가 승리를 만끽한 군인들에게 지워질 책임을 생각하면 잠시 아찔해지기도 한다. 호송차량 안에서 군복을 입은 여자아이는 군사재판에 회부될 거라며 갑자기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만 어떤 여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콧방귀를 뀌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그 이후 남장을 하고 축구를 보다 발각된 여성이 징역형이 선고되자 분신을 해서 사망한 사건이 실제로 이란에서 있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이란 여성의 축구 경기 관람은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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