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이란 영화로. <사과The Apple>는 <가베Gabbeh>로 잘 알려진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각본을 쓰고 당시 17살이었던 그의 딸 사미라 마흐말바프가 연출을 맡은 짧은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픽션이고 실존 인물이자 비전문배우들이 출연해서 기록영화적 요소도 많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엄마, 늙은 아비, 태어나서 12년 동안 집 안에 갇혀 자란 쌍둥이 자매 가족이 나온다. 이웃들은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을 적어 서명을 모아 복지부에 보낸다. 곧 카메라가 출동하고 이들의 상황이 세상에 알려진다. 12살 된 아이들은 의미 있는 문장 하나를 제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이들을 씻기고 머리도 잘라준다. 하지만 곧 찾아온 엄마는 아이들의 머리를 더듬어 히잡을 찾고 우리는 아무 문제없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복지국과의 약속과는 다르게 그 이후로도 아이들은 여전히 집 밖을 나오지 못한다. 아빠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바깥에 나가면 아이들은 마당에도 나올 수 없이 집안에 갇힌다. 가족의 이야기가 온 나라에 알려지고 아이를 잘못 키운 나쁜 부모로 비난받는 것에 억울함을 느끼는 늙은 아버지는 그래도 아이들에게 의식적으로 뭔가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항상 돌봐야 했을 아버지는 일정한 직업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아이 엄마가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신변을 비관하고 슬픈 노래를 부를 뿐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그들을 다시 찾아온다. 여자는 아이들에게 거울과 빗을 선물하고 집 밖에 나가 놀게 하면서 아버지를 집안에 가둔다. 그리고 이웃집에서 톱을 빌려와 그에게 쥐어준다. 스스로 이 쇠창살을 자르고 밖으로 나오면 아이들과 만날 수 있다고. 남자는 갈등하지만 맹인 아내의 욕설을 들어가면서도 결국 톱질을 시작한다.
그동안 아이들은 작은 세상을 여행한다. 발육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사이즈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서 비틀비틀 걸으면서도 골목을 통해 나아간다. 골목 한가운데 수로로 졸졸 흘러들어 가는 물에 아이들은 거울을 놓고 자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대문밖을 나서자마자 아이스크림 파는 아이와 마주친다. 이웃 남자아이는 창문밖으로 사과를 매단 막대를 낚싯대처럼 내밀고 자매에게 잡게 하지만 아이들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리고 이들 셋은 사과를 사러 더 멀리 나아간다.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열쇠를 힘겹게 돌려 갇혀있던 아버지를 꺼내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엄마도 골목까지 나온다. 딸들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얼굴 근처에 막대기에 매달린 사과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보호'할 수 있었을까.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꾸짖는 선생님들과 부모들은 이란 영화의 단골 인물들이고 교실 하나에 모든 동네 아이들이 모이던 시골 학교부터 맹인 학교까지 이들에게 학교는 형편과는 상관없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처럼 그려진다. 만약 검열을 감안해서 만들던 그런 영화들의 학교 관련 장면들이 뭔가를 은폐하고 싶은 국가가 요구한 필수적인 장면이었다면 그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반증인지도 모르다. 하지만 영화 속 아이들이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세상과 단절되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 부모를 비난하고 그들을 좀 더 일찍 발견하고 품어주지 못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그저 이들이 이미 많이 지각해 버린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따라잡으려는 모습을 따라갈 뿐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집안의 답답한 풍경보다는 결국 대문을 열고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자매는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사과로 얼굴을 때리면서 표현하고 곧 미안하다는 천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어느새 다른 아이들은 자매의 불분명한 발음을 듣고도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다. 영화를 찍는 동안 세상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그들이 갇혀있었던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보여준다. 집밖으로 나와 그저 움직이는 사과를 따라갔고 무섭지만 그네를 탔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았고 서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들이 그 짧은 시간에 경험한 세계가 주는 충격은 너무나 커서 그들이 문밖을 나오기 이전의 삶으로, 단절된 시절의 그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 속 아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기에 또래에 비해 발달이 늦어졌지만 일단 외부 세계를 경험한 이후에 다시 고립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오히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 될 거다. 그것이 아마 어떤 비민주적인 국가나 체제가 인권을 유린하면서까지 자국민을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하고 통제하려는 이유일 거다. 한 번 바깥세상을 인식한 인간은 더 이상 완전한 단절 속에 머무르기 어렵다.
아이들이 엉겁결에 사과를 사고 그 비틀거리는 여정이 시계 장수에게까지 이어질 때 한편으론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들이 세상에 발을 내밀자마자 마주치는 세상은 결국 욕망과 교환의 질서로 굴러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과를 한입 베어무는 순간 전달되는 즉각적인 달콤함과 시계가 통제하는 질서는 아이들이 자유를 얻는 순간 지체 없이 작동하는 자본과 교환의 논리를 보여준다. 금지된 욕망인 사과를 탐했으니 이제 아이들은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욕망해야 할 테고 아빠는 이제 단지 마른 빵만을 먹일 수 없게 되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빈곤과 결핍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마치 웡카가 만들어준 초콜릿을 먹자마자 맛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우울해하던 여자아이처럼. 하지만 어려서부터 감독인 아버지와 함께 영화 현장에서 외부 세상을 마음껏 접한 어린 감독이 사과를 부정적인 존재로 봤을 것 같진 않다. 그것은 인간이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이고 사과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이 발을 들인 세계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녀는 오히려 뭔가를 욕망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런 욕망을 경험하는 경로를 아예 차단하는 것이 더 큰 죄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고 설령 그 과정에 고통과 결핍이 동반되더라도, 인간의 욕망이 결국 완전한 충족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세상과 단절된 삶보다는 그 험한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인 삶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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