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kow_2008)
오래전 폴란드 여행은 아주 급조된 여행이었다. 휴가가 시작됐고 아무런 계획이 없던 상태에서 오전에 걸어다니다 그냥 폴란드에 다녀오자로 결론이 났고 책가방 하나를 꾸려 집을 나섰다. 집에 놔두면 썩어버릴것 같은 과일과 빵들도 에코백에 주섬주섬 챙겼다. 매일 밤 10시경에 폴란드로 떠나는 밤 버스가 빌니우스 중앙역앞에서 출발한다. 나는 그해로부터 딱 2년전에 똑같은 바르샤바행 버스표를 버린적이 있다. 급조된 여행이었음에도 꽤나 대담한 루트로 움직였다. 한 군데에 되도록이면 오래도록 머무는 기존의 여행 스타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여행이다. 긁어모을 판타지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난 여행은 또 그런대로 즐거웠다. 마치 도시와 점심 약속을 잡은듯 내려서는 도시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는 또 기차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매일매일 한 도시씩 밤기차를 타고 폴란드 전체를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움직였는데 그래서 오히려 모든 도시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모든 도시들의 새벽을 보았다. 호스텔 침대 시트를 붙잡고 게으름을 피울 여지도 없이 밤기차를 타고 도착한 모든 도시에서 출근하는 이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래서 폴란드의 밤에 대한 기억이 미미하다. 새벽의 크라코프. 네모진 돌들이 빽빽하게 박힌 거리가 밤사이에 내린 비로 촉촉했다. 그 거리위를 오고가는 트램과 함께 아침의 크라코프를 걷고 또 걸었다. 폴란드어는 러시아어와 유사한 느낌이 있지만 다른 언어들이 통하지 않아서 결국 조심스럽게 어설픈 러시아어를 내뱉었을때 이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마치 '너 우리나라 말이 러시아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가끔 알아들을 것 같아도 절대 대꾸 안해줄거라고. 그러지마.' 라고 정색을 하는 느낌. 아랍어나 히브리어나 힌디어 등등처럼 한번 읽어볼까 하는 의지조차 파묻어 버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언어들이 한번은 소리내어 읽어볼 여지를 주지만 모음과의 규칙적 연결없이 잘 어울리지 않은 자음들이 한데 뒤섞인 이 언어는 읽는데 참 불편한느낌을 준다. 게다가 Y 같은 경우는 ㅜ로 발음해야할지 ㅣ로 발음해야할지도 헷갈리고 모음과 자음의 느낌을 동시에 주는 알파벳이니 단어들이 그냥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느낌을 주는것이다. 한마디로 셰브졔브쳬브. 셰졔졔 약간 이런 느낌. 오래된 자갈길을 헤치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트램위로 굳건히 걸려있는 은행의 대출광고속의 기이한 폴란드어. 새벽 트램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절대자처럼 군림하고 있는 돈에 관한 천박한 담론.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언어를 붙여놓은다 한들 시처럼 읋을 수 없는 문장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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