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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106_풀밭 위의 안나 카레니나

항상 열리는 듯 하지만 또 그런것 같지도 않고 늘 서너명의 같은 상인들이 같은 물건들을 팔고 있는 것 같지만 또 꼭 그런것 같지도 않은 것이 구시가의 작은 벼룩시장. 나 또한 봉지에 싸 온 사과와 함께 차를 홀짝이며 잡담하는 저 상인들에게는 그냥 매 번 훑어만보고 지나가는 아는 얼굴의 영양가없는 손님일뿐인지도 모른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닐 것이고 일부는 마치 본 적도 없는 듯 잊혀졌고 또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어느날 갑자기 눈에 띄기도 하고 그 많은 것들 중 하나가 우연히 특별한 의미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항상 지나쳐서 익숙한 것도 의미가 될 수 있는 순간에 도달해야만 그제서야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결국은 전부 그렇고 그런것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그래도 또 들여다보게 되는 오래 된 동전들과 훈장들, 어느 정도 무거울까 습관적으로 들었다 놓으면 곧 잘 넘어져서 두 번 세 번 세워 놔야 하는 묵직한 장난감 병정들 그리고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람일것도 같지만 왠지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어떤 이의 사진집이나 작품집 그리고 가끔은 나도 알아서 반가운 어떤 소설들. 아마도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5월, 금요일 좌판의 정중앙에 놓여있던 안나 카레니나이다. 얼마 전 어떤 유명인이 한때는 퍽이나 사랑했을 배우자가 자신에게 특정부위가 아름답지 않다는 비난을 퍼부었다는 것을 필두로 틀어진 결혼 생활에 대해 공개적으로 하소연하는 것을 우연히 접했다. 온 세상에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기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뒤따라야했을까 짐작하면 안타까우면서도 고통이 표정을 가지고 문자화되는 그 순간 그것은 이미 순수한 고통을 넘어서서 변질된 분노와 감정 소모가 아닐까 싶어 슬퍼졌다. 어찌됐든 과거의 어떤 아름다웠던 순간은 그것의 지속 여부와 상관없이 과거의 그 순간 속에선 영구적인것이니 그 하소연은 결과적으로 모두를 불행하게할뿐 아무것도 개선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동시에 떠올랐던 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이었다. 안나가 브론스키와의 강렬한 첫 만남 후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을 마주쳤을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저 사람 귀의 저 연골은 왜 저렇게 생겼지?' 였다. 귀의 연골이 마음에 들지 않으려면 그 연골은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사실 세상 어디에도 사랑에 빠지게 하고 사랑을 지속시켜주는 절대적인 연골의 미는 없다. 그냥 일순간 다 꼴보기 싫어지는 것 혹은 뭘해도 어째도 다 좋은 순간이 있을 뿐이다. 사랑에 빠지기 위해 그토록 상대를 매력적인 존재로 포장하고 환상했던 순간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고 싶다면 전처럼 그렇게 하면 될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어 그 관계의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을 대하는 우리의 겸허한 자세가 그 관계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결국 내 삶의 일부로 남을, 내가 한껏 욕망하고 환호했던 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말이다. 내가 어떤 관계의 끝을 마주해야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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