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어 단어 중에 좋아하는 단어가 세 개 있는데 Kriaušė (https://ashland11.com/389), Batsiuvys 그리고 Knygnešys 이다. 이 단어들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거나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실은 어감 때문이다. Batsiuvys와 Knygnešys는 흔한 복합명사로 직역하면 신발을 만드는 사람(Batai+siuvėjas), 책을 옮기는 사람 (Knyga+nešėjas)이란 뜻인데 보통 많은 단어들이 자모의 규칙적인 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이 단어는 두 단어의 자음과 자음이 만나는 흔치 않은 단어라서 그 어감이 독특하다. 두 개의 성깔 있는 자음이 만나서 입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작지만 고집스러운 충돌이 이 단어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느낌마저 든다. 사실 이 두 단어는 그만큼 개성 있고 사연이 많은 단어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때 한글 말살정책이 있었던 것처럼 19세기의 제정 러시아 시대의 리투아니아에도 리투아니아어 말살 정책이 있었다. 그것은 라틴문자 대신 키릴 문자로 리투아니아어를 표기하게 하고 리투아니아어로 된 출판물을 금지하는 정책이었는데 대략 40년 넘게 이어지던 그 정책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나서 약 10년 정도 후에 리투아니아는 독립을 이룬다. 그 시기에 유행했던 직업이 바로 책을 옮기는 사람이었다. 40킬로에 육박하는 책꾸러미를 짊어지고 다니며 특정 장소에 책을 놔두면 다른 책 배달자들이 그 꾸러미를 여기저기 옮기는 방식으로 중요한 책과 출판물들을 배포했다. 그러니 이들은 단순히 책을 운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시로썬 금지된 책의 불법유통자와도 같았다.
사진은 구시가의 어떤 서점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어느 책 전달자를 추모하는 기념판(?)이다. 언젠가 이 단어에 관해서 쓰고 싶을때가 올까 오래전에 찍어 놓은 사진이지만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 단어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오랫동안 반납하지 못하고 있는 도서관 책들을 봤을 때였다. 도시 곳곳에 도서관 사물함이 있어서 내 번호가 붙은 사물함에 책을 가져다 놓으면 책 전달자가 반납도 해주고 내가 고른 책도 넣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주 합법적이고 친절한 책 전달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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