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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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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부꾸미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부모님이 명절을 쇠러 가시면 시골집에서 항상 얻어 오시던 새하얀 찹쌀 음식이 부꾸미였다. 팥이 들어있진 않았고 기름에 지지면 쩍쩍 늘어지던 그 음식을 조청에 찍어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 서울에서 처음 먹어 본 수수 부꾸미는 정말 신세계였다. 아마도 그런 식감을 좋아하나보다. 빌니우스로 돌아오던 날, 트렁크를 집에 들여놓자마자 가방을 열어 선물 받은 냉동 부꾸미를 냉동실에 집어 넣었다. 조청이 없어서 시럽을 뿌렸다.
순두부찌개 돌아오기 전 날 저녁 엄마가 끓여준 순두부 찌개를 보니 돌아와서 처음 끓였던 어떤 국이 생각난다. 고깃국을 끓이다가 간장을 좀 넣었는데 맛이 시큼해졌다. 뭘까. 싸구려 간장이라서 그런가. (키코만 간장이 아니면 대부분은 좀 구리다. 하인즈가 만든 간장도 예외는 아니다.) 혹시 무가 상했던건가. 고기가 상했나? 차라리 간장을 더 넣어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서랍을 열고나서 간장 대신 발자믹 식초를 넣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마음이 편해졌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 그렇게 커다란 평안을 가져다주는지 몰랐다.
롱샹으로 심심해서 아마존 탐험을 하다가 책 한권을 샀다. 서울에서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를 보고 얼마지나지 않아 베를린에서 베를린 버전 위니테 다비따시옹을 마주하고 온 감동이 가시지 않는 와중에 그 여운을 무한으로 지속시켜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교보문고의 원서코너 땅바닥에서 시작된 밑도 끝도 없는 애정을 좀 더 학구적인 아마추어의 탐구 자세로 바꿔야겠다는 욕구도 생긴다. 사실 르 코르뷔지에를 기념하기 위한 모뉴먼트 하나를 보고 인도로 떠났기에 이 건축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이상의 방법을 모르겠지만 특별히 의도치 않았어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실재의 그를 맞닥뜨리는 기회가 생기는것 그 자체에 고무되는것 같다. 이 책은 르 코르뷔지에 말년의 역작 롱샹 성당에 관한 책인데 얼핏 한국의 살림지식..
쓸데없는짓 세살 아기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 선물로 뭘 살까 고민하다가 마침 초대받은 놀이방 근처에 러시아 서점이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리투아니아어를 문제없이 구사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들이다. 러시아 동화책 한권과 공주가 그려진 키재는 긴 도화지를 사서 계산대로 걸어 가는데 작은 사전이 보였다. 러시아어-독일어 사전이었다. 몹시 가볍고 심플했고 언젠가 뻬쩨르부르그에서 산 그러나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작은 러시아어 사전이 생각나 덥석 집었다. 회색 바탕에 독일 국기를 모티프로 한 커버는 여지없이 베를린을 떠오르게 한다. 무뚝뚝한 독일 작가가 썼을법한 세워놓은 가구같은 여행 수필의 느낌, 왠지 사용 빈도와는 상관없는 작자의 개인적인 단어들로 가득할것 같은 사전이다. 사전사는것을 좋아한다...
토마토를 자르다가 토마토속의 수많은 방. 입구와 출구가 하나뿐인 들어가면 뒤엉켜서 사라지고 마는 방.
1+1 올리브영에서 산 핸드버터인데. 왼쪽 초록계열의 튜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무작정 집어서 계산대로 갔다. 무슨 냄새인지 성분이 뭔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끝까지 비교적 남김없이 잘 짜지는 질감의 용기와 색깔이 단지 마음에 들어서. 점원이 '이거 원 플러스 원 행사인데요. 똑같은 브랜드 제품 아무거나 하나 더 가져오세요.' 하는데 난 그 말을 잘 이해를 못하고 '아니요 그냥 이것만 살게요.' 를 세번정도 반복했다. 하나를 더 사면 두번째 제품이 반값이거나 하는 말로 알아들었던것 같다. '아니요. 그냥 같은 브랜드를 하나더 가져오시면 공짜라구요.' 라고 어리둥절해 하며 설명을 해서 결국 다른 색깔 버터를 가져오고 말았다. 저게 하나에 7000원 짜리였는데 난 사실 5000원에 팔아도 좋으니 한개만 사고 싶었다...
미성년의 책갈피 여행지에 가면 마그넷만큼 많이 파는게 책갈피이다. 서울은 이제 나에게 여행지 비슷한곳이 되어버렸기에 이번에 갔을때 도 의도한것이 아니었음에도 많은 책갈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인내심과 집중력 부족으로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나에게는 사실 많은 책갈피가 필요하다. 이책에도 찔러 놓고 저책에도 찔러 놓고 기억이 안나서 또 처음부터 다시 읽고. 미성년속에서 직분을 다하고 있는 책갈피는 르코르뷔지에 전에서 사온 그의 모듈러 책갈피이다. 연필글씨를 쓸때 또독또독 소리를 내는 빳빳한 책받침같은 질감을 내서 좋다. 그나저나 미성년의 한 부분을 읽다가, 아르까지 돌고루끼가 경매장에 가서 빨간색 가죽 가족앨범을 2루블 5카페이카에 사서 10루블에 판 날인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 이런 구..
s tiLL Ife 이전까지 난 내가 멋진 풍경화속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유로운 인물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지만 내 전두엽 깊숙한곳 어디쯤에서는 그냥 평화로운 정물화속의 고정된 피사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는것은 어때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누군가가 움직여줘야만 비로소 그때 내게 할당한 빛으로 인해 내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이 빛을 발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런 부자유로 획득할 수 있는 영혼의 자유가 더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타르코프스키의 사진첩 속의 정물들이 너무나 자유롭고도 생동감있게 움직인다. 금방이라도 구를것같은 양파. 물병을 헤엄쳐나와 공기중으로 사라질것만같은 꽃다발.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한 빛은 곧 자리를 옮겨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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