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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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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12_ 빌니우스의 열기구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빌니우스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열기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산도 건물도 없는 환경에 도심에서 고작 이십분 거리에 공항이 있음에도 항공기의 비행이 잦지 않다는 유리한 조건. 올드타운의 심장부에서 이렇게 열기구가 뜨고 내린다는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다. 타려는 사람들과 태우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열기구를 실은 트레일러가 하나둘 모여들고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기된 표정으로 때를 기다린다. 마치 웨딩 드레스를 정리하는 예식장 직원들처럼 기구를 꺼내 잔디 위에 조심스럽게 늘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데워진 공기에 오똑이처럼 일어난 바스켓에 상기된 표정의 탑승자들이 하나둘 오른다. 이 거대한 풍선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치열한 모습으로 이륙했다..
<Joe> David Gordon Green (2013) '이 영화 왠지 너가 좋아할만한 영화같아'라는 멘트와 함께 보기 시작하는 어떤 영화들.항상 적중하는것은 아니지만 적중하면 완벽하게 적중하며 '내가 좋아할만한 영화'가 되기위한 조건을 더욱 세분화시키며 그 카테고리를 더욱 배타적으로 만드는.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색감과 표정들을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선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들.마음껏 빠져들어야 한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것들만 두고두고 곱씹으며 살아가야 할 인생이니깐.니콜라스 케이지는 좋은 배우이다. 그가 가족과 시민을 구하는 정의로운 영웅으로 나타나는 횟수가 늘어가는것과 상관없이 그의 심각한 표정에서 난 여전히 방 천장에 긁히는 손가락에 고통스러워하는 의 하이를 떠올린다.이나 처럼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비슷한 역들을 연기..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앤디의 편지 우리가 사랑하고 감탄하며 마치 하나의 명화처럼 화석처럼 평생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은 어떤 풍경들이 있다.보슬비에 젖어가는 촉촉한 땅위에 서서 시야에 잡히는 모든 피사체를 기억하겠다고 장담하지만조금만 각도를 비틀어 뒤를 돌아보거나 서너발짝 물러서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과연 정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있을까 반문했다.사진이라는 평면의 예술이 담기에 우리의 기억은 그만큼 입체적이다.하지만 그 기억을 나 자신만 아는 가슴속에 담아두기에 우리는 겁이 많다.사진을 보며 늘상 회상에 젖지만 진실로 아득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하는 어떤 풍경들은 어떤 사진에서도 찾을 수 없다.사소한 기록에 초연해질때 오히려 기억은 견고해지는것이 아닐까.기록은 나의 기억을 보장할 수 있을까.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
Paris 09_파리의 마블발 욕조를 과감히 뜯어내면서 시작된 4평 남짓한 욕실 수리. 한달전에 주문한 타일이 도착했지만 아직 가지러 가지 못했다. 오래된 타일을 벗겨내자 깊은 구덩이가 드러났고 시멘트를 붓기 시작하면서 세탁기도 옮겨 버렸다. 이제 세탁기도 돌릴 수 없고 곧 화장실도 쓸 수 없을테니 더 이상 질질끌지 말고 빨리 끝내버려야 할 때가 된것이다. 마음 먹고 한다면 업자를 불러서 일주일만에라도 끝낼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것. 일주일에 하루 날 잡아 세시간 정도 일하고 먼지 닦는데 한 시간을 쓴다. 남은 6일동안 수리에 대한 강박은 지워버려야 하니깐. 조그만 집인데 너무 빨리 고쳐 버리면 나중에 아쉬울거라며. 욕실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을때 쯤 가을쯤 어디 잠깐이라도 여행 다녀올 수 있을까. 아..
Bergen 5_베르겐의 스테레오랩 어디로든 여행을 갈때마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밴드 스테레오랩.이집트 여행때쯤이었나? 멤버 한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있어서 조금 더 멜랑꼴리해졌던 기억이. 추억에 빠져들고 그것에서 헤어나오는데 걸리는 속도를 안다면 그들의 음악을 들을때에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한다.하나의 음반이 마치 하나의 긴 노래와 같으며 여간해서는 곡명을 기억하기 힘들다. 기승전결이 불분명하지만 축축 늘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음울하지 않으며 밝고 경쾌하고 귀엽기까지한 나만의 슈게이징.계산 불가능한 사운드는 퀼트처럼 얽히고 섥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하나의 선명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는 힘들다.군데군데가 면도칼로 밀린 내 머리에 수많은 플러그가 반창고로 붙여져 있고 그 선이 연결된 기계의 스크린속으로 내 기억들이 줄줄이 입력된다고 생각..
Bergen 4_베르겐의 뭉크 떠나기 두 달 전부터 설정해 놓은 베르겐의 일기예보를 여행에서 돌아 온 지금도 여전히 확인하게 된다.새로운 목적지가 생기면 그때 삭제할 수 있을것 같다. 한번은 일주일 내내 해가 쨍쨍 맑음이 표시되길래 베르겐에서 신세졌던 친구에게 '일주일 내내 날씨가 이렇게 좋다는데 그게 진짜야?' 라는 문자를 보냈다.마치 토네이도 주의보라도 내려진 베르겐의 친구들이 염려스럽다는 듯, 믿기 힘든 날씨라는 듯 말이다.친구도 금세 답문을 보내왔다. 정말 흔하지 않은 날씨라며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고.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베르겐의 일반적인 기후를 간파하는데는 충분했다.지속적인 강우로 항상 축축한 땅, 건너편 산 정상을 뿌옇게 감싼 안개, 수평선 위에 간신히 걸쳐진 구름. 숲은 각양각색의 초록으로 우거져 어두컴컴했다. 하루..
<And while we were here> Kat coiro (2012) 둘의 모니터 사이에 놓인 가운데 모니터에서 영화는 항상 재생된다.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보는 영화도 있지만 별 생각없이 다운받은 영화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영화의 배경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자세를 고쳐잡고 보게된다.그러다보니 이제는 이런 색감의 이런 시작이면 나름 마음에 드는 영화이겠거니 하는 확신 같은게 생긴다.달리는 기차속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에 몰두중인 두 남녀. 지루함을 감추는데 완전 실패중인 이들, 어색한 침묵을 무시하느라 안간힘을 쓰는중이다.기차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둘 사이에는 별 다른 대화가 없다출장 차 나폴리에 온 레오나르도(이도 골드버그)의 머릿속은 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고그를 따라 온 제인(케이트 보스워스)은 이번 여행이 부부 관계의 전화..
Bergen 3_베르겐의 접시 많은 물건을 가지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지닌 내 마음에 드는 그런 물건들만 가지고 싶다.어릴적에 엄마한테 나중에 크면 숟가락 젓가락에 그릇 몇개만 가지고 단촐하게 살겠다고 말하곤 했는데줄곧 돌아오던 대답은 살다보면 그게 그렇게 안된다는 것. 나도 살림을 하다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물건의 갯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나름 통제중이다.과 속의 작고도 적막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주인공들을 동경하곤 했는데요새도 조그마한 접시에 식판처럼 음식을 담아 먹으며 티비디너를 먹던 윌리를 떠올리곤 한다. 이들은 베르겐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커피 잔 세트인데자물쇠로 잠겨 있던 가게 앞에서 좀 서성거리자 어디서 불쑥 나타났는지 주인인듯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한 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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