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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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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본 Twice born> Sergio Castellitto (2012) 최근에 부각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은 근접국인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나에게 90년대 구소련 국가들의 독립이 정말 아주 최근의 일이었음을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그 자유가 얼마나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었느냐에 대한 감흥이 컸다기보다는 어물쩍 엉거주춤하다가는 겉보기에 멀쩡한 지금 같은 세상에서도 피지배자의 입장에 놓여 불이익을 당하고 억압받을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에 가까웠다.영화 속의 보스니아 내전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 최근 경험했던 그런 감정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비극은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훨씬 더 금세 잊혀진다. 중학교 시절 내가 호출기 음성 사서함에 너바나의 음악을 지우고 저장하기를 반복하던 그때 커트 코베인의 포스터가 붙여진 아스카(사뎃 악소이)의 방은 폭탄에..
<빈얀 Vinyan> Fabrice Du Welz (2008) 요새 재밌게 본 영화가 너무 많은데 짧게라도 적어 놓지 않으면 전부 기억에서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누군가가 언급했거나 어디서 봐서 다시 한번 기억하는것과 내가 마음속에 담아 두고 능동적으로 떠올리는것은 확실히 다르다.글로 적어두면 확실히 영화의 잔상이 오래 남으니깐.이 영화는 순전히 루퍼스 스웰 때문에 봤는데 얼마전에 를 다시 보고 이 배우가 내가 좋아 할 만한 배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할 수 있는 배우가 된다는것은 절대 이 배우에게서 어떠한 단점도 발견하고 싶지 않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것에 가깝다.얼마전에 그가 출연한 이라는 티비 드라마를 보았는데 그는 로마가 배경이면 이탈리안 같고 영국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영국인, 스페인에 있으면 히스패닉일거고 엠마누엘 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Jean marc Vallee (2013) 일년에 한번 갈까 말까하는 극장이지만 영화 상영전에 기대작의 트레일러라도 나오면 눈과귀를 막는다.많은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정작 모든것을 보여주는 트레일러. 파마머리의 꼬마 아이가 피자를 집어먹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폭풍의 속도로 핥아 먹는 나줄리아 로버츠가 거품이 가득한 욕조로 빨려 들어가는 의 트레일러를 보고'이 영화 정말 너무 보고 싶어요' 라고 느끼게 하던 90년대의 티비 영화 광고들이 떠오른다. 극장가서 돈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트레일러는 분명 마트 시식 코너 같은 유익한 존재이지만실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해야 하는 트레일러의 특성상 속았다고 느끼는 관객이 존재하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을 캡쳐해놓고 갑자기 트레일러 얘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아주 ..
<밤과 낮> 홍상수 (2007) 과 까지 이번달에 우연찮게 홍상수의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다. 수년간 인터넷 사이트에 띄엄띄엄 올라오던 그의 영화들을 운좋게 놓치지 않았던것인데 어쩌다보니 최신작인 를 빼놓고 그의 모든 영화를 본 셈이 되었다. 매번 거기서 거기인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이 그 캐릭터들 사이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는 느낌을 준다는것은 퍽이나 웃기다. 예를 들어 잠들어 있는 유정(박은혜)의 발가락을 빨다 핀잔을 듣는 김성남(김영호)의 모습에 에서 김의성이 이응경의 발가락을 빠는 장면이 오버랩되는것처럼 어떤 지점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느냐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 따위는 없지만 혹시 그런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머릿속에 따끈하게 남은 전작의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현재 감상중인 영화의 캐릭터를 대입시켜 몰입하는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들처럼 한때는..
Bergen 2_베르겐의 룬데마넨(Rundemanen) 저렴한 비행기 티켓덕에 매우 충동적으로 계획한 베르겐 여행.여행전부터 왠지 이 여행이 몹시 마음에 들것같은 예감이 들었다.내 짐은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 책가방 정도의 무게였고 머물곳은 순조롭게 정해졌으며두달 여의 시간동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빌니우스와 베르겐의 날씨를 번갈아 확인하면서내가 좀 더 북쪽으로 하지만 조금 더 따뜻한 곳을 향한다는 생각이 들자 미묘한 안도감이 들었다.큰 아버지와 큰 고모가 살고 계시는 강원도 양양과 경상도 통영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기대도 있었다.물에 빠졌거나 배멀미를 한 기억 때문에 바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던 장소들이지만어찌보면 내가 아무런 편견없이 가장 처음으로 바다를 접했던 곳도 그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리워 할 만한 바..
[여행단상] 파리에서 베르겐까지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 놓고 처음으로 숙소를 나설 때의 기분은 짜릿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장소였는데 해가 지면 돌아 올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 때문일까?잊혀지는지도 모르는 채 잊혀지는게 기억이지만 보통 그 첫날의 기분은 기억이 난다.모든 첫 기억들은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로 남는다. 델리에 도착한 다음 날 뉴델리의 코넛 플레이스를 향하는 길에 샀던 노르스름한 편지지.지금도 어렴풋이 여행 도중에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들과 엽서들의 모습이 기억난다..여행 중의 내 소중한 인상이 기록된 엽서들은 누군가에게로 떠나가고 나에게는 엽서를 썼다는 기억만이 남는다.어른들이 항상 똑같은 옛 얘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 남은 아름다운 기억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난 내가 참 행복한 삶..
<히든 Caché> Michael Haneke (2005) 을 고등학생때 친구랑 비디오를 빌려서 같이 봤는데. 뭐지? 저 달걀 빌리러 다니는 남자애들 정말 웃기다 이러면서 그 '묻지마 폭력'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더랬다.이런 참신한 소재들을 기다렸다는듯이 리메이크하는 헐리우드 덕분에 유럽이든 아시아든 재능있는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어떤식의 다른 느낌으로 탈바꿈하는지 구경 할 기회를 얻지만 리메이크작을 기다리는 원작자의 마음은 어떨까. 더 멋진 작품이 나올까 초조할까.예술가들은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더 나은 창작물이 탄생하기를 고무되서 응원할까. 관객의 입장에서 제발 더 재밌어라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이 명불허전으로 남길 기대한다.그런데 독어가 주었던 투박함과 생경함이 결여된 나오미 왓츠와 팀 로스가 출연한 헐리우드 판 도 헐리우드로 간 와 도 대부분은..
<아이 엠 러브 I am love> Luca Guadagnino (2009) 제목을 보고 일부러 찾아 보았고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를 찾아보게 되었다. 격조있는 이탈리아 명문가의 분주한 저녁 만찬 준비로 영화는 시작되고 만찬을 총 지휘하는 안주인, 이탈리아어를 하는 틸다 스윈튼의 모습은 다소 낯설었다.몸에 딱 떨어지는 각 잡힌 바지 정장을 입고 절도있게 사람을 다루는 모습이었다면 시중드는 사람 입장에선 옮기던 접시도 떨어뜨리게 하는 카리스마 였겠지만 틸다 스윈튼은 자신이 지금까지 지어오던 모든 표정의 역사를 삭제한 듯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온전히 사랑하기는 힘든 색깔의 실들로 전혀 다른 감정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 머릿속에 서로 다른 두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것은 신기하고도 복잡한 감정이다.가끔은 생각을 멈추고 내가 방금전에 어떤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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