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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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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_빌니우스의 롱샹성당 (Vilnius_2017) 가장 자주 걷는 길인데 항상 보던 이 건물이 오늘은 퍽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어딜봐서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 눈엔 매우 몹시 그렇다. 실제 롱샹성당의 둥그스름하고도 오묘한 카리스마는 분명 없지만 그것을 누그러뜨린 직선의 형태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가게 될것 같은 공간. 가야하는 공간. 매일 지나다니면서 이곳에서 묵념을 해야겠다.
리투아니아어 21_힘, 강인함 Stiprybė 벌써 160년째 벌을 서고 있는 아틀라스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것이 항상 얼마나 미안하던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자리에. 오늘 구시가지를 걷는 내내 6개월동안 변한것과 변하지 않은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된 건물 하나는 엎어졌고 집 앞 마트에는 우체국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60년후에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Stiprybė 스티프리베. 이 단어가 이렇게 잔혹하게 느껴진적이 없었다. '힘내, 아틀라스' 애정어린 격려의 메세지라기 보다는. '강인해져. 넌 버텨내야되. 넌 항상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래야지' 라는 강요의 메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랬다. Stiprybės 는 복수형이다. 힘, 강인함, 강점 등등의 뜻이 있다. ė 로 끝나는 여성형명사에는 아름다운 단어들..
Slowdive_Machine gun 하루에 하루를 더하는 삶속에 반복되는것들이 여러가지 있다. 예를들어 지속적으로 구멍이 나는 고무장갑 같은것들. 오늘은 표면히 거칠거칠한 철제 찜기용 삼발이(?)를 닦다가 이렇게 세게 닦다간 새로 산 고무 장갑에 구멍이 나지 않을까 살짝 겁이났다. 그런데 왠지 조심해서 닦고 싶지가 않았다. 구멍이 나려치면 작은 생선 가시조차도 감당해 내지 못하는 이 장갑들에 그렇게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날 구멍이라면 지금이든 나중이든 차이가 있을까. 차라리 이런 일상적인 배반들을 저당잡아 요즘의 나를 사로잡은 강렬한 감정을 영원으로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절대권력 같은것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 그게 안된다면 그 감정에 대한 기억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슬로우 다이브의 이 노래는 슈게이징 명반 souvlaki 중 ..
카페 메타포 (Seoul_2017)어제 티비에서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라오스의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은 체구의 사람들이 질퍽한 진흙탕길을 걸어 들어가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빽빽한 커피 나무 숲에서 허리춤에 큰 광주리를 차고 하루종일 커피 열매를 딴다. 여인들은 울긋불긋한 커피 열매를 채반에 넣고 근처 개울에서 흔들어 씻으면서 쓸만한 콩들을 분류해 햇볕 아래에서 말렸다. 골고루 잘 마를 수 있도록 몇십번을 뒤집으며 또 분류해서는 자루에 담아 작은 트럭에 싣는다. 갑자기 내린 비로 여기저기 움푹 패인 1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움직이는데 다들 밀고 끌며 급기야는 바퀴가 걸린 트럭을 견인하러 다른 트럭이 도착해서야 긴긴 작업은 끝이났다. 말린 콩은 장작위의 커다란 드럼통속에 넣고 ..
Blue is the warmest color_Abdellatif Kechiche_2013 (Blue is the warmest color_2013) 꽤나 이슈가 되었던 영화이던데 이 영화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다가 얼마전에 크라이테리언 인스타계정에 영화 포스터가 몇번 계속 등장하길래 호기심에 적어놨다가 찾아 보았다. 이 계정에는 크라이테리언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이나 어떤 배우의 생일이나 기일을 기념하면서 배우의 출연작 포스터가 올라오거나 가끔씩 오늘 어떤 영화를 보겠냐는 살가운 질문들도 올라온다. 환호와 애정 일색의 짧은 코멘트들을 읽고 있으면 동호회같은 기분이 들어 재미있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런다. 이 영화의 포스터속에는 눈부시게 밝은 파랑 머리를 한 레아 세이두가 있었다. 고개를 약간 들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듯 반쯤 감긴 눈은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완..
가장 많이 갔던 곳, 종각 (Seoul_2017) 서울에 사는동안 가장 많이 내렸던 지하철역은 1호선 종각역이다. 처음에는 주로 역에서 연결된 서점에 가기 위해서였지만 그 후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학원을 다닌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의 여러가지 목적들이 추가되었다. 아주 이른 새벽의 종각도 늦은 밤의 현란한 종각도 평일 오전의 한산했던 종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이번에 와서도 가장 많이 내리게 된 지하철역은 종각역이었다.  주요 장소로의 접근성이 좋아서 유모차때문에 환승을 최소화 하고 싶었던 우리에게 내려서 걷기 가장 좋은 역이었다.  어느틈으로 파고들어도 마치 일부러 찾아온듯한 느낌을 주는 장소들이 많아 별다른 목적지 없이 걸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한 정거장씩이라도 갈아타서 가던 장소들을 이번엔 거의..
Maggie's plan_ Rebecca Miller_2015 출연 배우들의 조합에 혹해서 보게 된 영화. 의 그레타 거윅이 예술 경영을 전공한 젊은 대학 강사로, 앞서 많은 영화속에서 소설가를 연기했던 에단 호크가 또 다시 어딘지모르게 궁색한 소설가로, 무슨 배역을 맡아도 배역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능청스러운 줄리안 무어가 보호 본능 자극하는 에단 호크의 까칠한 인텔리 부인으로, 미드 의 주인공 라그나르역의 트래비스 힘멜은 뜬금없이 수제피클에 페티쉬를 가진 피클 가게 사장님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감독인 레베카 밀러가 특정 배우들의 전작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들이 연기한 배역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은 생생했다. 영화는 몹시 수다스럽고 마치 많은 영화들을 거쳐오면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존재의 ..
고로케 매순간들은 돌아가면 그리워질것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하지만 돌아가면 오히려 생각나지 않을거다. 그리워질법한것들은 어디에나 있기때문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