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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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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커피 월초에 팀빌딩으로 1박 2일 하이킹에 다녀왔던 친구가 나름 재밌었다고 비가 오지 않는 주말에 언제든 한번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었다. 친구와는 당일치기로 짧은 거리의 하이킹을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챙길 것 많은 캠핑은 둘 다 늘 망설였다. 여행을 갈 때면 먹을 일이 생길까 봐 약도 안 챙기고 붙일 일이 생길까 봐 밴드 같은 것도 챙기지 않게 된다. 그렇게 짐을 챙기는 것은 물론 무겁게 드는 것도 싫어하는 나로선 캠핑은 늘 모든 귀찮음의 전시장처럼 다가왔지만 고향집에 다 있으니 몸만 오라는 말에 솔깃했다. 나는 최소한의 옷과 아이와 함께 당일 먹을 도시락과 일회용 커피와 차만 넣고 친구의 고향집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리투아니아에서의 캠핑은 더울 때마다 수시로 뛰어들 수 있는 호수와 젖은 옷이 저절로 마를..
Vilnius 86_장터 풍경 매 월 3월 첫째주 금요일에 열리는 카지우코 장날. 11년 전, 첫 장터에서 받은 인상이 참 강렬했다. 특별한 계획없이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들러가는 어떤 여행지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아주 큰 행사에 엉겁결에 빨려 들어가서는 뜻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의도한 것 처럼 가슴 속에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올 해도 습관적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해가 더 할수록 뭔가 규모는 커지지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제 별로 재미없다 하고 돌아선다면 좀 쓸쓸한 마음이 들것 같아 최대한 처음 그 기분을 되새김질하며 걷는다. 가끔은 지난 해에 망설이다 결국 사지 않은 것들이 올 해에도 있으면 살까 하고 생각한다. 얇게 잘라 빵에 얹어 먹으면 스르르 녹..
Vilnius 84_옛 주차장 구청사에서 새벽의 문을 향하는 짧은 길목. 이곳은 종파가 다른 여러 개의 성당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러시아 정교와 카톨릭 성당, 우크라이나 정교 성당을 등지고 섰을때 보이는 볼록 솟아오른 쿠폴은 바로크 양식의 카톨릭 성당이지만 화려한 제단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내부 장식이 남아있지 않은 성 카시미르 성당의 것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 러시아 정교 성당으로 바뀌며 양파돔이 얹어지고 내부의 화려한 바로크 장식을 걷어내야 했던 이 성당은 소비에트 연방시절엔 급기야 무신론 박물관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평범한 건물도 세월이 흐르면서 소유주가 바뀌고 상점으로 쓰였다가 여관이 되기도 하고 카페가 되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듯 점령자의 필요에 의해 때로는 와인창고가 되고 원정에 나선 군대의 병영으로 쓰여졌던 교회의..
리투아니아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한 한국어 캠프 지난 여름. 인구 50만 가량의 빌니우스에서 7명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했던 소박한 캠프. 여름 방학이 세 달 가까이 되는 리투아니아에서 학생들이 여름을 보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가족 친지의 여름 별장으로 바다로 호수로 숲으로 놀러가는 것.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일하는 학부형들에게 긴 여름방학은 큰 고민거리이다. 그렇게 여름 휴가를 꽉 채워서 쓰고도 남는 아이들의 방학은 이런 저런 캠프 참여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리투아니아에서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체험 학습과 학교를 가듯 등학교를 하며 만났다 헤어지는 단기 사설 학원과 같은 것들을 통틀어 모두 Stovykla 라고 부른다. 출근 전의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침 8시 경에 모였다가 오후 5시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종의 놀이방..
리투아니아의 빵집에서 유용한 단어들 가끔 들춰보는 11년 전 나의 리투아니아어 교과서. 나의 선생님이 매일 아침 프린트해서 주신 것을 제본해서 간직하고 있다. 스승의 대학 강의가 시작되기 전 아침 7시에 1시간 정도 진행되었던 18번의 수업. 지금 생각해도 그 수업은 굉장히 명료했고 유익하고 즐거웠다. 대학에서 어학당 선생님도 겸하고 계셔서 외국인을 많이 상대해 본 스승의 노하우도 있었겠지만 현지에 지내면서 현지어를 알파벳부터 배운다는 첫 경험은 짜릿한 일이었기에. 리투아니아어 수업이 끝나고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일 중 하나는 빌니우스 대학 근처의 빵집에서 빵을 고르는 일이었다. 그곳은 지금 중국식당으로 바뀌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이름을 몰리도 사기야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빵들에 잼이나 크림이 들어가있는 경우가 많아서 빵 속에 무..
도서관 커피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던 아이리쉬 카푸치노. 다음에는 도서관 1층 카페에서 치즈 케익을 사서 이것과 함께 먹어야겠다. 빌니우스 카페들의 커피 가격은 1.5-3 유로 선인데. 한국의 자판기 커피가 고급 커피 버튼을 눌러도 300원 정도인것을 생각하면 이곳의 자판기 물가는 비싸다. 자판기 자체도 별로 흔하지 않다. 상업 은행 (구 우리 은행..) 자판기 야채 스프 먹고 싶다.
생강 커피 Fortas 라는 리투아니아 식당 체인이 있다. 동네에도 한 군데 있고 보통 대형 쇼핑몰이나 멀티플렉스 같은 곳에 입점해 있고 관광객이 가장 많은 대성당 근처에도 몇 군데 있다. 나쁘지 않고 너그럽고 평균적인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이 식당에 가면 된다. 동네에 있는 이 식당은 한적한 주택가에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에 주차공간도 확보하고 있어서 만나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목적의 30, 40대 정도의 빌니우스 사람들이 정말 자주 간다. 정말 그런 사람들이 보통 앉아 있다. 남자셋이 차에서 내려 똑같은 커피 세잔을 주문하고 한시간 가량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다 마치 피타고라스 정리에 견줄만한 결론이라도 얻었다는듯 다같이 악수를 하고 한명이 시동을 걸고 있을때 다른 한명은 계산을 하고 한명..
Vilnius 52_여름의 끝 2 여름이 짧은 리투아니아에도 덥고 습한 시기가 일이주간은 지속되기 마련인데 이번 여름은 마치 예고된 태풍처럼 '여름'이라고 명명된 '8호 더위'와 같은 느낌으로 하루 이틀간의 온도 상승만 보여주고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행성의 지위를 상실해버린 명왕성처럼 리투아니아에서 여름이 계절의 지위를 잃어버리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학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8월의 어느날. 구시가지의 보키에치우 Vokiečių 거리에 위치한 학교 창문밖에서 분주히 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오랜 여름 휴가를 끝내고 가까스로 직장에 복귀했는지도 모른다. 방학내내 사용되지 않아 꾸덕꾸덕해진 브러쉬를 거품낸 물이 담긴 양동이에 담근채 불꺼진 복도를 지나 오후의 태양이 한껏 팔을 뻗고 들어오는 창으로 다가서는 그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