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 (69) 썸네일형 리스트형 커피들 이 카페에는 파묻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커다란 소파가 있다. 빌니우스에서 소파 감자가 아니라 소파 커피가 될 수 있는 흔치 않은 카페이다. 책이든 잡지든 이만큼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가면 보통은 다 읽어내게 하는 마법의 소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소파 자리를 항상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때엔 높은 의자가 놓여진 창가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 구경을 할 수 있다. 한국과 리투아니아의 시차가 6시간에서 7시간으로 늘어난 어제, 항상 그렇듯 온 종일 비가 내렸다. 커피 빛깔 만큼이나 익숙해진 어두컴컴한 낮의 빛깔, 어찌됐든 리투아니아의 이런 날씨를 사랑한다. 카페에 자리가 없어서 혼자서 앉기엔 좀 미안한 가장 넓은 자리에 앉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동석한 낯선 이들과 짧게 나마 대화를.. 남겨진 커피 불안은 오히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혼자서 커피를 두 잔을 마신다. 인류 평화의 정점이다. 문 근처에서 끽연을 마친 카페 직원이 멀리서부터 내 얼굴과 커피잔을 번갈아 보며 다가온다. 불안함이 존 트라볼타처럼 스테이지로 미끄러진다. 당연한 표정으로 빈 잔 하나를 치워주려는 행동을 취한다. 불안함이 칸첸중가 즈음에 머문다. 나는 전혀 설득력없는 어조로 나지막히 그냥 놔둬도 된다고 말한다. 너무나 사려깊고 칭찬 받아야 마땅한 그의 행동인데 그는 나로 인해 상처를 입고 두번 다시 그 누구의 빈 잔도 치우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멋쩍어져 걸어들어가는 그의 뒤로 앞치마가 민망함에 뒤로 쭈뼛쭈뼛 펄럭인다. 그제서야 불안함이 깍아지른 크레바스로 빨려 들어간다. 나를 떠나도 될 것들은 테이블 귀퉁이에 슬쩍 밀어.. Vilnius 58_맑아진 10월 Vilnius_2017 환해진 10월의 하늘. 1년 365일 보초서는 마트의 크리스마스 전구위로. Vilnius 57_햇살은 신상 휘둥그레진 모두의 눈빛을 쏘아보며 포장도 채 뜯지 못한 햇살이 그렇게 지나갔다. 10월의 처음이자 마지막 태양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건물은 조금 새 것이 되기도 하지만 흐리든 화창하든 날씨는 항상 새 것. Vilnius 55_발 있는 새 주말에 큰 도매 시장에 다녀왔는데 바다를 꿈꾼 것 같다. 갈매기가 되고 싶었던 까마귀는 아니었기를. 누군가의 커피 2 농축된 인스턴트커피 속에서 거침없이 녹아내리는 빙하들은 혀를 데일 위험이 없는 상냥한 온도의 커피를 남겨놓고 사라지곤 한다. 한 꺼풀 한 꺼풀 시간을 두고 덧입혀지는 옷들은 좀 더 웅크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고 서서히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은 생각만큼 급진적이지 않다. 오히려 앙칼진 바람은 아직 난방이 시작되지 않은 이 시기의 방구석으로부터 불어온다. 자비롭지 못한 것은 한겨울의 눈보라라기보다는 인기척 없는 한밤중에 정체되어 있던 10월의 실내 공기이다. 언제나 좀 더 쌀쌀맞은 것은 스카프를 잊은 초가을이고 장갑을 포기한 늦봄이다. 겨울은 결백하다. 겨울의 유배지는 그래서 겨울 그 자신이다. 10월의 방구석은 아직 늦여름에 멈춰져 있는 잠옷을 탓한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겨울 니트를 꺼내 입는.. 누군가의 커피 어느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서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카드를 놔두고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현금 카드랑 마트 카드만 들고 마트에 갈 때가 많다 보니 쓰고 나서도 종종 다시 지갑에 집어 넣는 것을 깜박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잡아 타고 대성당 근처에 내려서 어느 상점 계산대 앞에 섰을 때에야 동전도 카드도 없어서 오늘의 나는 커피 한 잔도 사 먹을 수 없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전을 탈탈 털어도 1유로가 모아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마신 이 커피 사진들은 그 날 집을 나와서 걷다가 자전거를 타기 직전 찍은 사진이다. 빌니우스의 모던 아트 뮤지엄 건설이 한창인 그 거리의 자전거 스탠드 앞에 카페 세 곳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의 이런 풍경들은 기분 좋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가 마시고 간 커피 만큼 아.. Vilnius 52_여름의 끝 2 여름이 짧은 리투아니아에도 덥고 습한 시기가 일이주간은 지속되기 마련인데 이번 여름은 마치 예고된 태풍처럼 '여름'이라고 명명된 '8호 더위'와 같은 느낌으로 하루 이틀간의 온도 상승만 보여주고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행성의 지위를 상실해버린 명왕성처럼 리투아니아에서 여름이 계절의 지위를 잃어버리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학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8월의 어느날. 구시가지의 보키에치우 Vokiečių 거리에 위치한 학교 창문밖에서 분주히 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오랜 여름 휴가를 끝내고 가까스로 직장에 복귀했는지도 모른다. 방학내내 사용되지 않아 꾸덕꾸덕해진 브러쉬를 거품낸 물이 담긴 양동이에 담근채 불꺼진 복도를 지나 오후의 태양이 한껏 팔을 뻗고 들어오는 창으로 다가서는 그를 상상해본다.. 이전 1 ···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