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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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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_빌니우스의 롱샹성당 (Vilnius_2017) 가장 자주 걷는 길인데 항상 보던 이 건물이 오늘은 퍽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어딜봐서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 눈엔 매우 몹시 그렇다. 실제 롱샹성당의 둥그스름하고도 오묘한 카리스마는 분명 없지만 그것을 누그러뜨린 직선의 형태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가게 될것 같은 공간. 가야하는 공간. 매일 지나다니면서 이곳에서 묵념을 해야겠다.
Vilnius Sculpture 02_빌니우스의 사냥개 동상 작년 8월 즈음. 대성당이 자리잡은 게디미나스 언덕 아래 공원을 걷다가 발견한 개들. 언제부터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었지? 자주 걷던 구역인데 못보던 친구들이다. 보자마자 지나치게 흥겨운 노래 한 곡 떠오름. Who let the dogs out! 어디서 뛰쳐 나온 개들이지. 멀리서 어렴풋이 봤더라면 살아있는 개라고 생각했을것 같다. 금세라도 달려 나갈것처럼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음. 으르렁거리고 있진 않음. 빌니우스에 동상 하나가 더 생긴게 너무 기뻐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 봄. 이 근처에 봄되면 졸졸졸 강물이 흐르는데 1년후에 아기가 걷게되서 함께 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국가의 주도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세워지는 인물 동상을 제외하면 특정 동..
Vilnius 20_거리의 미니 도서관 주말에는 첫눈이 내렸다. 물론 내리면서 녹아 버리는 눈이었지만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에 한 겨울에 펑펑 내리는 눈보다 오히려 더 춥게 느껴졌다. 토요일 오전이면 집 근처의 상점들도 둘러 볼겸 혼자 나선다. 거리를 걷다가 빌니우스 중앙역에서 갈라져서 나와 구시가지로 연결되는 가장 큰 대로인 V. Šopeno 거리에서 재밌는 상자를 발견했다. 이 거리는 일전에 소개한 스트리트 아트가 그려진 건물이 있는 거리이고 그 스트리트 아트의 건너편에 이 상자가 붙어 있었다. 스트리트 아트 관련 글 보러가기 멀리서 봤을땐 건물의 전기 단자 같은것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상자에 임대 광고나 구인 광고 따위가 붙여져 있는 걸로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럴싸하게 색칠도 되어있었다. 알고보니 누구나 열어서 책을 빌..
Vilnius Sculpture 01_로맹 개리 조각상 이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둔탁해지고 밤은 조금 더 깊어지겠지. 이제 곧 썸머타임도 해제되니 한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물론 모두가 만능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시간도 알아서 자동으로 바뀐다. '시계바늘 돌리는것을 깜빡해서 지각했어요' 같은 소리는 창피해서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된것이다. 이런식으로 많은 아날로그적 실수들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행복은 점점 디지털화 되어간다. 지난 토요일 아침, 텅빈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은 최근 경험한 감정 중 가장 시적이고 정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의 정적만큼 아날로그적인것이 또 있을까. 잠든 가족을 남겨두고 정해진 시간에 빠뜨리지 않고 수행해야 할 미션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되내..
Vilnius 13_우주피스 (Užupis)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
Vilnius 09_빌니우스의 겨울 빌니우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고개를 치켜들면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들이 일방통행인곳이 많아서 보도블럭보다 차도로 걸어다니는게 더 나을정도이다. 두툼한 털 양말속에 바지를 집어넣고 묵직한 등산화를 신어야 그나마 녹아서 질퍽해진 눈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혹한과 폭설에 길들여진 유전자들이라 높은 겨울 부츠를 신고도 별 문제없이 잘 걸어다니는것 같다. 곳곳이 진흙탕 물인 거리를 마구 뛰어다녀도 종아리에 꾸정물 하나 안묻히던 인도인들의 유전자처럼 말이다.
Vilnius 01_빌니우스 걷기 재작년 말에 새해 선물로 받은 다이애나 미니. 두번째 필름을 현상한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바꿔말하면 1년 반 동안 고작 필름 두개를 썼다는 소리다. 매번 헛도는 필름때문에 깜깜한 욕실에서 필름을 다시 끼워넣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우연처럼 현상되어 나오는 이런 사진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한컷에 두장을 담는 기능으로 36장짜리 필름이면 72컷이 찍히는 논리인데 제대로된 72컷의 사진을 가지기위해선 아마 대여섯통의 필름을 더 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빛이 들어갔고 한번은 필름을 되감을때 리와인드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것을 깜박 잊는 바람에 이미 한번 돌아간 필름위에 한번을 더 찍었더랬다. 그런 경우에도 솔직히 노출 조절만 잘하면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지만 당연히 노출 조절에도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