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상들이 전부 따로 노는 느낌의 풍경이다. 오랜만에 은사님은 만나러 빌니우스 대학을 향했다. 빌니우스 대학의 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리투아니아어를 가르치는 그녀에게서 이곳에 처음 여행을 왔던 그 시기에 18시간 정도의 개인 교습을 받았다. 정확히 딱 18번, 이 정원을 지나 저 높다란 아치를 통과해서 멋들어진 천장 벽화를 지닌 어문학부 사무실에서 이른 아침 꿈 같은 시간을 가졌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빵집에 들러 그날 배운 과일 이름이 들어간 빵과 마트의 홍차 티백을 골라 사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때가 이른 5월이었다. 분수와 광합성용 의자(?)가 무색하게 요즘의 날씨는 오히려 여름에 들어서기 직전의 쌀쌀한 그 해 5월을 연상케 한다.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는 저 색색의 의자들은 얹가도 항상 비에 젖어 있다. 기다리는 동안 들를까 했던 대학내 서점은 공사중으로 문이 닫혀 있었다. 구시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통령궁 근처의 빌니우스 대학은 어문학부와 역사학부가 주를 이룬다. 의대, 공대 같은 학부들은 빌니우스 곳곳에 흩어져 있다. 대학 기숙사조차도 멀리 떨어져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어를 배우는 어떤 학생들은 한국의 대학교 내에 기숙사가 있다는 것에 어리둥절해 한다. 빌니우스 대학은 현재의 로마 교황을 배출한 예수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440년 전에 지어졌다. 빌니우스 구시가의 알짜배기 건물들은 보통 예수회 재산이라는 말도 있다. 교회는 항상 돈이 많다. 그 시기 빌니우스에 고등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명문가 자제들은 프라하나 크라코프 같은 대도시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곤 했다. 유학 갔다가 현지에 정착하는 바람에 인재들이 유출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되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신교에 홀려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예수회는 부랴부랴 대학을 세운다. 빌니우스의 바로크식 성당들도 예수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어진다. 웅장한 내부, 평범한 사람들이 완전히 압도되고 경도될 수 있는 화려한 연극과 음악들로 성당들은 가득 채워졌다. 중간에 문을 닫고 소유자가 바뀌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는 어찌됐든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이름있는 대학으로 남았다. 빌니우스 대학과 성 요한 성당과 종탑이 전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같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선생님을 만나서 근처 카페로 차를 마시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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